비틀스는 여러 국면으로 나누어 바라볼 수 있다. 리버풀에서 막 로큰롤과 맞닥뜨리던 질풍노도의 시기, 함부르크로 떠나 클럽에서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던 시기, 꿈에 그리던 미국시장을 정복하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기, 존 레넌과 오노 요코의 만남 등 멤버들의 개별적인 활동이 도드라지던 시기, 그리고 인도에서의 명상수업과 겹치며 해체에 이르기까지의 시기다. <존 레논 비긴즈: 노웨어 보이>(이하 <노웨어 보이>)는 바로 그 첫 번째 시기에 집중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존 레넌이 있다. <노웨어 보이>는 멤버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밴드를 꾸리게 되는 초기 비틀스의 이모저모를 살피는 전기영화이면서 오노 요코와의 만남만큼이나 존 레넌 개인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어머니의 죽음을 겪는 존 레넌 개인의 성장영화이기도 하다. 어머니를 잃고, 엘비스 프레슬리를 알게 되고, 폴 매카트니를 만나면서 그렇게 존 레넌은 세상과 음악에 눈을 뜨게 됐다.
십대의 존 레넌을 보여주다
리버풀의 가난한 항구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존 레넌(아론 존슨)은 부모의 불화로 이모 미미(크리스틴 스콧 토머스)의 손에서 자라난다. 아버지처럼 든든하던 이모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상실감에 빠진 존은 미미 몰래 엄마 줄리아(앤 마리 더프)를 만난다. 줄리아를 따르며 로큰롤에 빠져들고 밴조를 배우며 음악에 눈뜨기 시작한다. 하지만 미미는 존이 줄리아로 인해 다시 상처받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 사람이 만나는 것을 반대한다. 그렇게 이모와 엄마 사이의 불편한 관계 속에서 존은 더욱더 음악에 빠져들게 되고, 1956년 드디어 피트 쇼튼(조시 볼트) 등 쿼리뱅크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밴드 ‘쿼리멘’(The Quarry Men)을 결성한다. 이후 폴 매카트니(토머스 생스터), 조지 해리슨(샘 벨) 등이 차례로 영입되는데 특히 어머니를 잃은 폴과는 친구 이상의 우정을 나눈다. 그렇게 그들은 리버풀의 작은 클럽에서 연주를 시작해 더 큰 꿈을 꾸기 시작한다.
1957년 7월6일, 쿼리멘이 울튼 패리시 교회 가든파티에서 공연을 하기까지 40여분의 시간이 흐른다(이 공연이 끝나고 존과 폴이 무대 뒤에서 역사적인 첫 만남을 갖게 된다). 그 이전까지는 여학생들 앞에서 장난스레 성기를 꺼내 보이려 하고 버스 지붕에 올라타 돌아다니는 불량학생 존 레넌의 일상, 그리고 줄리아를 통해 음악에 빠져들기까지의 옛 이야기들이다. 좀더 자세히 들어가서, 비틀스에 대한 유일한 공인 전기인 헌터 데이비스의 <비틀스>에 따르면 쿼리뱅크 고교에 부임한 새로운 교장 폽조이는 “그 아이(존)는 심각할 정도였다. 언제나 짓궂은 장난만 했다”며 심지어 “때린 적도 있다”고 고백했을 정도다(폽조이 교장은 존을 리버풀 예술학교로 진학하도록 이끈 인물이기도 하다). 또한 자신이 즐겨 치던 밴조를 통해 존에게 처음으로 악기 연주를 가르쳐준 사람이 바로 줄리아였는데, <비틀스>에 따르면 줄리아에게 밴조를 가르쳐준 사람이 바로 아버지 프레드 레넌이었고 그 커플은 밴조를 함께 치곤 했다 한다.
그런 가운데 <노웨어 보이>는 존 레넌을 두고 벌어지는 엄마와 이모의 삼각관계라 할 수 있다. 우아하게 차이코프스키를 듣는 것이 취미인 이모는 ‘로큰롤은 그저 거칠고 단순한 사람들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그와 정반대로 ‘로큰롤은 섹스’라 말하는 줄리아는 존을 데리고 간 바에서 외간남자의 음흉한 시선에는 아랑곳없이 주크박스의 음악에 맞춰 마구 몸을 흔든다. 분명 이후의 존 레넌을 형성하는 데는 이모의 클래식도 엄마의 로큰롤도 모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줄리아를 따라가 극장에서 엘비스 프레슬리의 투펠로 공연 실황을 함께 보며 소리 지르는 존과 자신의 2층 방까지 스피커 전선을 쭉 이어와 설치해서는 미미가 듣는 음악을 함께 듣는 존은 결국 같은 인물이다. 물론 엘비스 스타일로 앞머리를 넘기고 꼭 끼는 청바지에 알록달록한 양말과 굽 두꺼운 구두의 ‘테디 보이’ 스타일을 따르는 것을 이해하고 바라봐준 사람은 줄리아뿐이었다. 그렇게 그 삼각관계는 언제나 일촉즉발의 상황을 동반했다. 하지만 미미가 줄리아의 과거를 폭로하는 단계로 나아가 갈등하면서도 결국 두 사람이 화해에 이르는, 그러니까 존의 뒤틀린 에너지로 가득한 영화에서 가장 평화로운 순간이라 할 수 있는 미미와 줄리아의 일광욕신에서 보듯 존은 그 조화 속에서 마음의 안식을 얻는다. 줄리아와의 숨겨진 이야기가 드러나는 장면들도 흥미롭지만, 자신의 남편이자 존에게는 이모부인 조지가 세상을 떴을 때 울고 있는 존에게 “바보같이 굴지 말자”며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는 미미의 모습도 충분히 인상적이다. 그렇게 존 레넌은 두 여자 사이에서 어른으로 커갔다.
실화와 영화 사이
아마도 존 레넌과 비틀스의 팬들이라면 <노웨어 보이>가 얼마나 사실을 충실히 재현하고 있는지 궁금할 것이다. 먼저 미미는 존이 외출할 때마다 안경을 쓰라고 지적하는데 그건 실제로 존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지독한 근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속 존은 집에서만 멀어지면 곧장 안경을 벗는다. 코린네 울리히가 존 레넌에 대해 쓴 책 <목 마른 영혼의 외침, 존 레넌>에 따르면 존이 ‘안경은 약해빠진 애들이나 끼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경을 쓰고 다니느니 차라리 안 보이는 불편한 쪽을 택했고 그리하여 “자기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제대로 볼 수 없던 상황은 심리상태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어, 불안을 감추기 위해 더욱 험상궂은 표정을 하고 다녔다”고까지 유추한다.
듬직한 이모부 조지도 중요한 인물이다. 영화에서는 마루에 있는 라디오에 기다란 선을 연결해 존의 2층 방까지 연결해주고 함께 놀다가 쓰러진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함께 있다가 숨을 거둔 것이 아니라 1955년 존이 스코틀랜드에 있는 친척 집에 놀러갔을 때 사망해 존은 집에 돌아오고 나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된다. 인상적인 당시 흑백 사진들과 더불어 비틀마니아(Beatlemania)인 저자 존 블래니의 또 다른 존 레넌 전기 <존 레넌: In His Life>는 “조지 이모부는 저녁마다 존에게 신문 읽어주기를 즐겼다. 신문을 읽으며 독서 능력을 키운 존은 평생 신문 읽는 습관을 가졌고 그가 쓴 뛰어난 가사들은 종종 신문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쓰고 있다. 또한 영화에서는 이모부의 장례식 날 줄리아가 나타나 존이 처음 본 것으로 나오는데, 실제로는 이모부가 죽기 훨씬 전에 줄리아의 집을 방문했었다.
아마도 팬이라면 가장 관심을 곧추세울 장면이 존 레넌이 폴 매카트니를 때리는 장면이다. 1958년 7월15일 줄리아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뜨고 영화 속 존은 감정을 통제하기 힘든 상태로 나아가는데, 급기야 자신을 말리는 피트 쇼턴(폴 매카트니를 만나기 이전의 가장 ‘절친’)의 코피를 터트리고 폴도 때려서 쓰러트린다. 헌터 데이비스의 <비틀스>에 따르면 실제로 존 레넌의 멤버 구타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오히려 한 친구는 “어떻게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지?”라고 회고했을 정도다. 오히려 속으로 그 상처를 삭였고 굉장히 시니컬하게 변했다고 한다. 실제로 영화를 본 폴 매카트니도 감독에게 저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고 얘기했고 감독은 허구임을 양해해달라고 부탁했다. 그것은 어쩌면 <노웨어 보이>가 얼마나 ‘어머니’라는 존재에 크게 기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폴 매카트니와의 만남
<노웨어 보이>에서 어머니와 이모 못지않게 중요한 인물은 역시(!) 폴 매카트니다. 고교 동창인 피트 쇼턴의 비중이 미미하고, 리버풀 예술학교에서 만나게 되는 스튜어트 서트클리프나 나중에 첫 번째 아내가 되는, 역시 리버풀 예술학교에서 만난 신시아 파웰의 존재를 지워버리면서까지 영화는 어머니와 이모 외에 폴 매카트니에게 집중하고 있다. 영화 속 시제로 보자면 폴 매카트니를 만난 이후 1957년 대학에 들어가 조지 해리슨을 만난 것이고, 함부르크로 떠난 것이 1960년이기에 다룰 수 있는 여지는 많았지만 의도적으로 생략된 셈이다. 초기 함부르크 시절 비틀스에 관한 영화인 이언 소프틀리의 <백비트>(1993)에서 스튜어트 서트클리프(이를 연기한 스티븐 도프와는 거의 100%의 싱크로율을 보인다)는 실질적인 주인공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이 시기 존 레넌을 설명하는 데 있어 무척 중요한 인물 중 하나다. 파웰이 어머니나 이모라는 다른 여성 캐릭터를 부각시키기 위해 희생된 것이라면 그 역시 폴 매카트니에게 그 자리를 전적으로 양보하고 있는 셈이다.
영화 속 첫 만남부터 인상적이다. 맥주 마시겠냐는 존의 물음에 ‘샌님’ 같은 폴은 차를 달라고 한다. 그리고 폴은 에디 코크런의 <Twenty Flight Rock>을 연주해 보인다. 존이 당시 가장 좋아하는 곡을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코드로 연주해 보였으니 술에 취한 존은 정신이 번쩍 든다. 이후 둘은 음악적, 정신적으로 깊은 교분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 그리고 적당히 라이벌 관계를 드러내고 존의 은근한 열등감이 끼어드는 지점도 흥미롭다. 무엇보다 폴은 ‘작곡을 해야 한다’고 자극을 줬던 친구이고 존이 자신만이 리더라고 생각하던 찰나,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잡고 자기소개를 하며 이른바 ‘진행’을 보면서 존을 긴장시키기도 한다. 결정적으로 존은 줄리아와 너무 가깝게 지내는 폴에 대해 질투심을 느낀다(반면 실제로 미미는 폴을 너무나 싫어했다고 한다). 그것은 살짝, 아주 살짝 두 사람의 퀴어적인 포옹장면으로도 이어진다. 어머니가 세상을 뜨고 폴을 홧김에 주먹으로 쓰러트린 뒤 존은 너무나 미안한 마음에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워 부둥켜안는다. 영화에서 주관적인 익스트림 롱숏으로 담아낸 몇 안되는 장면이다. 때린 것 자체가 허구이기에 그 포옹 역시 감독의 의도 안에 있다.
그렇게 쿼리멘이 비틀스라는 새로운 간판을 달고서 함부르크로 음악 여정을 떠나기 이전 <노웨어 보이>를 마무리하는 것은 역시 줄리아의 죽음이다. <존 레넌 컨피덴셜>(2006)에 출연한 존의 오랜 친구 엘리엇 민츠는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어머니의 죽음 이후 존은 완전히 변했다”고 말한다. 그렇게 존 레넌은 어른이 되었고 비틀스의 역사는 시작됐다. 비틀마니아의 입장에서도 <노웨어 보이>는 뭉클한 감동과 함께 묘하게 설레는 기분을 안겨준다. 비틀스 멤버 중 가장 일찍 세상을 뜬 존이지만 더 많은 날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노웨어 보이>의 존 레넌은 함부르크로 가서 프레루딘(각성제)을 접하기 이전이고, 미국으로 떠나는 것도 한참 뒤이며, 멤버들간의 불화가 생기기에도 까마득한 초창기의 풋풋한 모습이다. <키즈 리턴>(1996)의 마지막 대사처럼 말하자면 “아직 시작도 안 했는걸.”
PS. 존 레넌 역으로는 공연장면 등을 위해 실제 뮤지션을 캐스팅하려 했으나, 1990년생 아론 존슨(<킥 애스: 영웅의 탄생> 출연 이전)이 6개월간 보컬과 기타 트레이닝을 받는 열의를 불태워 제작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심지어 그는 샘 테일러 우드 감독의 마음까지 사로잡아 두 사람은 23살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약혼을 발표했고 2세까지 출산했다. 여기서 떠오르는 건 영화에서 미미 집으로 들어온 하숙생 마이클 피쉬윅(앤드루 버천)이다. 당시 24살이었던 그는 50살의 이모 미미와 무려 26살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사랑에 빠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