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당신의 악몽이 들릴까봐 늘 두려운 천사
2010-12-07
글 : 김경주 (시인)
비틀스를 추억하며

‘혼자 꾸는 꿈은 그냥 꿈에 불과하다. 하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 - 오노 요코

비틀스는 생명체다. 이방인들은 비틀스라는 이 외계를 받아들이고 궁극적인 수수께끼를 하나씩 갖고 살아간다. 그들은 어디서 비롯되었는가? 그들은 나에게 왜 이런 우연성을 제공해주고 자신들의 고유한 점유율을 나누어 주었는가? 그들은 이방인인가? 그들은 자연인인가? 비틀스는 우리에게 맹목적이라기보다는 완벽한 무력감을 가능하게 한다. 비틀스는 오노 요코의 어느 날 작품 스케치의 한 구절처럼 ‘하늘을 관찰하기 위한 하나의 그림’이었다가, 어느 서정적인 날 ‘불조심 강조의 달’에 어울릴 법한 맹랑한 포스터였다가, 갈레아노의 <거울 너머의 역사>에나 등장할 법한 인물들의 요염함을 가졌다. 비틀스는 자신들의 여정을 기억하도록 음악 속에 ‘숨겨진 차원’을 마련해 두었고 우리는 그 속에서 우리 자신의 눈을 찾기 위해 수많은 음들을 떠돈다.

그들의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우리의 어느 한때가 시절을 회복하는 일이고, 비틀스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기억의 계획을-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 행하는 도전적인 분위기 속에서- 다시 세워가야 할 것 같은 충동이 든다. 이쪽의 감정을 고려해서 조금 위급하게 이야기하면,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분명 하나의 환경을 갖는다는 것이고 비틀스는 음악 속이라는 하나의 환경을 갖고 사는 사람들에게 현상의 역사로는 설명 곤란한 개별자들의 역사에 고유한 습속을 가능케 한다. 마치 성냥불을 켜고 그것이 다 타들어갈 때까지 쳐다보고 있는 동안 누구의 회상도 끼어들어오지 않을 때처럼, 세계가 꿈꾸었던 방랑을 비틀스는 자신들의 최면상태를 팔아 치우면서 보냈다.

자신의 눈 속에 떠 있는 둥근 동공이 저 세상 바깥 하나의 행성처럼 외로워지는 날, 우리는 누구나 어두운 방에 누워 자신의 습속으로 몸을 구부리고 자야 한다. 천사는 잠든 당신의 옆에서 귀를 막은 채 누워 있다. 당신의 악몽이 들릴까봐 늘 두려운 천사가 있다. 그것이 비틀스를(두 동정녀 unfinished music no.1: two virgins) 이해하는 나의 방식이다. 이야기되어질 수 없는 곤란한 사태에 직면할 때, 당신이 대리자를 세울 수 없는 자연에서 야행성이 되어갈 때, 당신의 냉소적인 환상이 드디어 석방의 시간을 가지고자 할 때, 비틀스는 스키플(재즈 밴드 스타일의 음악에 포크, 컨트리적 요소를 첨가한 음악)을 시작한다. 그들은 비틀비틀 걸어와서 툭 치고 간다. ‘이봐 거기!, 콧털은 의외로 빨리 자란다고!’

비틀스는 우리에게 공존재다. 비틀스는 지젝의 표현을 빌리면 자기 자신의 시간적 기원에 선행하는 어떤 세계 공식을 갖고 있다. 런던의 소호지구를 걸으며 ‘스윙잉 식스티스’(swinging sixties)의 시절을 회상한 적이 있다. 야드버즈, 클링츠, 애니멀스, 롤링스톤, 그리고 비틀스가 ‘영국의 침공’을 역사에 기록하기 위해 거리를 걸으며 비트를 흥얼거리곤 했을 시절을, 단단하고 캄캄한 미국식 세계 앞에서 그들의 달랑거리던 야문 고환을.

1968년 ‘파괴예술의 심포지엄’ 창시자였던 구스타프 메츠거가 추진한 한 프로젝트에서 비틀스는 자신들은 좀더 나은 세상을 위해 포기하지 않는 자들이라기보다는 자신들의 음악을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아기의 심장 박동’(Baby’s Heartbeat)을 다시 선물해주고 싶다고 했다.

비틀스는 세상의 불편한 분위기를 예감했다. 비틀스는 자신들에게 다가올 위험을 예감했다.

비틀스는 자신들의 음악이 스스로 사교성을 가질 때마다 ‘카프카의 <심판>’을 뒤적거렸다. 그들은 자신들의 감각자료를 여전히 ‘나눌 수 없는 잔여’로 남겨 두었다. 비틀스의 음반을 모으며 나는 이런 것들을 수도 없이 통과해야 했던 시절이 있다. 전월 미결제금액, 연체료, 연회비, 일시불, 할부, 현금서비스, 리볼빙, 할인, 총이용한도, 미리 입금하신 금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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