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시네필 몰라, 그러나 취향은 변하는 법
2011-04-14
글 : 강병진
사진 : 최성열
그들은 어떤 영화를 좋아하고 소비하나
영화과 신입생들에게 매달 평균 예술영화전용관 혹은 시네마테크를 찾은 횟수를 물었을 때, 1~3회가 41%, '없다'가 40.1%로 나왔다.

이와이 순지의 <러브레터>는 지난 1999년 11월, 한국 개봉했다. 마지막으로 국내에 개봉한 이와이 순지의 장편 연출작은 <하나와 앨리스>로, 개봉 시기는 2006년 11월이었다. 사실 그의 <러브레터>는 한국에 개봉하기 2년 전부터 당시 국내 시네필들이 열광한 영화였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지금, 2011년 영화과 신입생들에게 한국과 미국외의 나라에서 활동하는 영화감독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도 그는 여전히 가장 많이 손꼽힌 감독이었다. 하지만 가장 많이 꼽힌 감독일 뿐 지금의 신입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감독군에서 이와이 순지의 존재감을 느끼기는 어렵다. 이와이 순지를 꼽은 신입생은 설문조사에 응한 421명의 학생들 가운에 4%에 해당하는 17명이다. 그리고 미셸 공드리와 기타노 다케시, 이누도 잇신, 왕가위 등이모두 1.9%에 해당하는 8명에게 선택됐다. 사실 이 질문에 가장 많이 나온 답변은 전체의 66.2%를 차지한 ‘무응답’이다. 이와이 순지의 이름은 왜 아직도 거론되는가. 그리고 대다수 영화과 신입생들은 왜 이 질문에 답변하지 못할까. 이 두 가지 질문을 통해 지금 그들이 보고 있는 영화의 흐름과 영화 소비환경을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아직도 언급되는 이와이 순지, 66%의 ‘무응답’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영화과 신입생들이 입학 전에 경험한 영화의 양적인 수준은 상당한 편이다. 한달 평균 3~5편 정도의 영화를 본 신입생이 48.2%, 5~10편 가까이 본 학생이 29.7% 정도이며 10편 이상의 영화를 본 학생도 약 20%에 달했다. 조사 결과를 검토한 영화과 교수들 또한 양적인 면에서는 10년 전의 신입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만약 영화과 외의 전공을 선택한 신입생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을 것인지는 생각해볼 필요가있다. ‘가장 높게 평가하는 영화감독은 누구인가’라는 설문에 한국 영화감독으로는 봉준호 감독(21.4%)과 박찬욱 감독(16.4%)이, 외국 영화 감독 중에는 크리스토퍼 놀란(15.1%)과 스티븐 스필버그(10.7%), 제임스 카메론(7.1%)이 꼽혔다. 모두 동시대 감독들이며 특히 크리스토퍼 놀란은 지난해 개봉한 <인셉션>의 영향이 큰 듯 보인다. 한국과 할리우드의 주류영화들을 선호하는 건 영화과 신입생이나 일반 관객이나 다를 게 없다. 경희대학교 이효인 교수는 “영화적, 문화적 경험의 양에서는 큰 차이가 없으리라고 보지만, 좋아하는 감독들을 고려하면 고전영화의 시대나 감독에 대한 관심이 극히 적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명지대학교 김영진 교수 또한 “영화를 좋아하는 학생들의 설문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하며 “성공의 아이콘으로 부각되는 감독들이다. 과연 그들의 영화에 영화적으로 감화를 받아 나온 명단인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그런가 하면 중앙대학교 이충직 교수는 “취향의 흐름에 맥락이 없어 보인다”고 안타까워했다. “외국 감독은 최근 흥행작 중심인 반면, 한국 감독은 예전부터 손꼽힌 대표 감독들이다. 한국 영화감독 중 최근 흥행 감독인 김용화 감독이나 최동훈 감독을 꼽은 학생은 거의 없는 걸 보면, 정말 좋아하는 영화감독을 선택했다기 보다는 많이 들어본 이름을 적은 느낌이다.”

섭취량은 10년 전과 비슷, 취향은 주류에 편식

이에 대해 동국대학교 유지나 교수는 “영화 저널리즘에서 중계되는 감독과 영화만을 따르는 경향이 큰데, 이건 단지 취향의 문제만이 아니라 저널리즘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꼬집었다. 영화과에 들어오기 전, 주로 접한 영화 관련 매체의 종류에 대해 신입생들은 <출발! 비디오 여행> 같은 영화 관련 TV프로그램(44.4%), <씨네21> 같은 영화잡지(33.2%), 포털사이트의 뉴스 페이지(22.6%)와 블로그(22%) 순으로 꼽았다(중복 답변 허용).

또 영화를 볼 때 가장 많이 이용하는 경로로는 역시 멀티플렉스(51.3%)와 온라인 다운로드(45.8%)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주류 매체가 소개하는 영화들은 주류영화에 편중되어 있고, 그곳에서 정보를 얻는 신입생들은 역시 멀티플렉스에서 주류영화를 보는 패턴이다. 건국대학교 송기형 교수는 “영화자본의 비중이 커지고, 멀티플렉스가 극장산업을 독점하면서 큰 영화만 영화라는 인식을 갖게 되는 것같다”고 평가했다. 이제는 어떤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가는 게 아니라, 일단 극장에 가서 영화를 고른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영화 선택 형태는 한달 평균 예술영화전용관이나 시네마테크를 찾는 횟수를 묻는 설문 결과에도 나타난다. 약 40%에 달하는 신입생이 가본 적이 없다고 답했고, 41%는 1회에서 3회 정도 그곳에 가서 영화를 봤다고 답했다. 한국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에 참석해 영화를 관람한 횟수를 묻는 설문에는 약 72%의 학생이 ‘없다’고 답했다.

접근 경로는 멀티플렉스와 다운로드가 압도적

영화과 신입생의 영화적 취향의 문제는 영화 소비문화에 관한 잣대인 한편, 한국의 입시시스템이 낳은 결과이기도 하다. 송기형 교수는 “지금 같은 초·중·고등학교의 교육환경에서 취향을 가진다는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영화과도 수능 점수로 들어가는 학과다. 이 사실은 자신의 취향을 정립할 정도로 영화를 많이 보는 학생들은 오히려 영화과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아이러니를 낳는다. 영화과를 지망한 시기를 묻는 설문에서 가장 많이 나온 시기는 고등학교 3학년(32.1%)이고, 그 다음이 고등학교 2학년(18.8%)이었다. 용인대학교의 이상인 교수는 “지망 시기를 보면 사실상 아직까지 남아 있는 영화산업의 거품에 혹해 영화과를 선택한 건데, 그런 학생들이 이 정도로 영화를 봤다는 건 나름대로 고무적인 수치”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요즘에는 미디어 특성화 학교를 나오거나, 고등학생 때 방송반 경험을 통해 이미 여러 편의 단편영화를 찍어본 신입생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 숫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영화에 대해 많이 알거나, 연출 능력을 인정받아서 들어오는 학생은 거의 없지 않나. 그에 비하면 나쁘지 않은 거다.”

조사 결과만으로는 지금 영화과 신입생의 영화적 취향과 경험이 주류에 편중되어 있거나, 맥락이 없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흐름이 시네필 문화를 경험하고 들어온 과거의 신입생에 비해 아쉬운 점이라고 지적할 수 있을까? 영상원 오명훈 교수는 “신입생에게 취향이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영화를 좀더 알게 되면 취향은 변하게 되어 있다. 어쩌면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오는 학생이 더 나을 수도 있다. 학교에서 발견해나가야 하는 거다. 단국대학교 박지홍 교수는 “만약에 학생의 50%가 제3세계 영화를 선호한다고 하면 그것도 문제일 것”이라며 “예술을 무시해서는 안되겠지만, 학생들이 졸업한 뒤 현장에 나가 먹고살기 위해서는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이 잘 구현된 할리우드영화를 좋아하는 취향이 더 바람직하다고 할 수도 있다”라는 견해를 보이기도 했다.

영화교육의 중심 또한 자신이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지보다 관객이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에 맞춰진 지 오래다. 그럼에도 고전영화 관람과 토론을 비롯한 다양한 영화적 경험이 영화교육의 기본적인 조건이라는 데는 교수들 사이에 이견이 없었다. 이효인 교수는 “이들을, 이들 세대에 맞는 방식으로 설득하고 끌어들이는 방법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입생들로서는 아직 왜 그런 재미없는 영화를 봐야 하고 연구해야 하는지 당위성이 없다. 진실로 설득하고 토론하고 같이 감탄하는 교육과정이 절실하다.” 지금의 신입생들이 더 많은 영화를 보고 지식을 습득하게 될 3, 4학년 즈음에, 그들은 어떤 영화적 취향을 갖고 있을까. 이와이 순지는 그때도 한국의 영화과 학생들의 취향일 것인가. 앞으로 변하게 될 진로 선택의 추이만큼이나 이 또한 주의 깊은 관찰이 필요한 흐름이다.

기타답변

인도의 라지쿠마르 히라니 감독을 안다고?

영화과 신입생들이 가장 높이 평가하는 영화감독의 기타 리스트도 어느 정도는 예상할 수 있는 이름들이다. 한국 감독으로는 김기덕(3.8%)과 이준익(3.8%), 장진(3.6%), 홍상수(2.4%), 김지운(1.6%) 등이 꼽혔다. 6명 이하의 신입생이 선택한 외국감독들은 대부분 흥행 성과와 별개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감독이거나 고전영화의 감독이었다. 대런 애로노프스키, 로만 폴란스키, 구스 반 산트, 코언 형제를 꼽은 신입생이 4명 이상이고, 장 뤽 고다르, 잉마르 베리만, 에릭 로메르 등은 모두 1표씩을 받았다.

한국과 미국, 그리고 그외 다른 나라에서 활동하는 감독을 선택해달라는 모든 설문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인도 감독인 라지쿠마르 히라니다. 그를 선택한 신입생은 전체의 1.9%인 8명으로 미셸 공드리, 기타노 다케시, 이누도 잇신, 왕가위와 동률이며 이는 미야자키 하야오(1%)나 리안(1.2%) 등 유명 감독보다도 높은 수치다. 라지쿠마르 히라니는 지난해부터 여러 영화 커뮤니티와 블로그를 통해 화제가 된 영화 <세 얼간이>(2009)의 감독이다. 인도의 유명한 공과대학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대학 내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는 학생들의 갈등을 유머와 인도영화 특유의 유쾌한 춤과 노래로 묘사한 영화다. <세 얼간이>는 신입생들의 영화 관람 방식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로 보인다. 이번 설문조사 결과에도 드러나듯 인터넷 커뮤니티와 블로그를 통해 국내 미개봉작에 대한 정보를 얻고, 이를 다운로드 해 본 뒤 다시 블로그와 트위터를 통해 영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패턴이다.

◆ 영화과에 들어오기 전, 매달 평균 관람한 영화의 편수

· 3~5편: 48.2%
· 5~10편: 29.7%
· 10~15편: 12.8%
· 15편 이상: 9.3%

◆ 영화를 볼 때 가장 많이 이용하는 경로 (중복 답변 허용)

·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프리머스, 씨너스 등의 멀티플렉스: 51.3%
· 온라인 다운로드: 45.8%
· DVD: 6.9%
· IPTV: 2.9%
· 기타: 3.6%

◆ 영화과에 들어오기 전, 매달 평균 예술영화전용관 혹은 시네마테크를 찾은 횟수

· 없음: 40.1%
· 1~3회: 41.0%
· 3~5회: 12.6%
· 5~7회: 2.9%
· 7~10회: 0.5%
· 10회 이상: 2.9%

◆ 영화과를 지망한 시기

· 초등학교 1학년~3학년: 1.4%
· 초등학교 4학년~6학년: 3.1%
· 중학교 1학년~3학년: 19%
· 고등학교 1학년: 13%
· 고등학교 2학년: 18.8%
· 고등학교 3학년: 32.1%
· 재수 시절: 11.1%
· 군 입대 전: 0.5%
· 군 제대 후: 1%

◆ 영화과에 들어오기 전, 주로 접했던 영화 관련 매체의 종류 (중복 답변 허용)

· <출발! 비디오 여행> <영화가 좋다> 등 영화 관련 방송프로그램: 44.4%
· <씨네21> <무비위크>와 같은 영화잡지: 33.2%
· 각 포털 사이트의 영화페이지 혹은 뉴스페이지: 22.6%
· 영화 관련 파워블로거의 블로그: 22%
· 없음: 2.4%
· 그외: 1.2%

◆ 한국의 영화감독 가운데 가장 높게 평가하는 감독

· 기타: 23.5%
· 봉준호: 21.4%
· 무응답: 20.9%
· 박찬욱: 16.4%
· 이창동: 10%
· 임권택: 7.8%

◆ 외국의 영화감독 가운데 가장 높게 평가하는 감독

· 기타: 33.6%
· 무응답: 29.7%
· 크리스토퍼 놀란: 15.1%
· 스티븐 스필버그: 10.7%
· 제임스 카메론: 7.1%
· 앨프리드 히치콕: 3.8%

◆ 한국, 미국 외의 나라에서 활동하는 영화감독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감독

· 무응답: 66.2%
· 기타: 24.1%
· 이와이 순지: 4%
· 미셸공드리, 기타노 다케시, 이누도 잇신: 각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