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열정 없음’의 콤플렉스 덕에 지금의 내가 있다
2011-05-12
정리 : 김성훈
사진 : 최성열
김태용 감독과의 토크쇼 현장

역시 사람은 잘생기고 볼 일이다? 4월26일 오후 8시 CGV상암에서 ‘<씨네21> 창간 16주년 기념 토크쇼’ 세 번째 자리가 열렸다. 올해 초 화제를 모은 영화 <만추> 때문일까. 아니면 ‘꽃미남’ 김태용 감독에 대한 팬심 덕분일까. 좌석은 빈자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꽉 찼다. 이날 진행을 맡은 <씨네21> 이화정 기자는 “토크쇼의 제목이 ‘영화, 열정을 말하다’인 만큼 김태용 감독이 어떻게 영화감독이 됐는지에 관해 알아보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면서 “오늘 토크쇼의 컨셉은 ‘무릎팍 도사-김태용 감독편’이라고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데뷔작인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1999)를 시작으로 <가족의 탄생>(2006), <만추>(2011)까지 12년 동안 김태용 감독은 꾸준히 자신의 궤적을 그려왔다. 그러나 충무로에서의 오랜 경력과는 달리 김태용 감독이 처음부터 영화를 염두에 둔 건 아니었다. “남들이 영화에 대해 가지고 있는 열정을 나는 가지지 않았던 것 같다. 성장 과정에서 열정에 대한 콤플렉스가 굉장히 많았던 것도 그래서다. 영화는 내게 먼 일이었고 내가 영화를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원래 전공은 정치외교학이었는데, 그냥 (영화를) 하고 싶은 마음에 28살 때 한국영화아카데미에 입학했다.” 그렇게 들어간 영화학교에서 그가 느낀 건 자신이 생각하는 영화가 다른 친구의 그것과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영화는 소박했다. 내가 가진 생각과 감정을 어떤 곳에 찾아가서 카메라로 찍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이 영화였다. 반면 다른 친구들은 내가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영화와 감독들을 이야기하더라.” 영화광 친구들 사이에서 ‘(영화에) 열정이 없는 아이’라는 인식이 생긴 것도,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희생>(1986)이나 <십계>(1988) 같은 영화들을 찾아보기 시작한 것도 그때다.

초등학생 땐 미스 춘향, 중학생 땐 무협 소년

그러다가 김태용 감독은 학교에서 자신과 마찬가지로 ‘(영화에) 열정이 없는 친구’를 만난다. “그게 최근 개봉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2011)의 민규동 감독이다. (웃음) 나와 성격은 다른데, 열정도 없고 아는 것도 없더라.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꼈냐고? 그렇다. 다른 사람들은 영화 이야기를 하는데 민규동 감독과 나는 어제 신문 봤니, 하면서 정치적인 사건, 사회, 책, 음악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학교 생활을 하다가 김태용 감독은 졸업영화로 단편 <열일곱>(1997)을 찍고 민규동 감독과 함께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1999)를 공동 연출하면서 데뷔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영화를 한다는 게 어떤 건지 잘 몰랐다. 데뷔한 뒤 지금까지 (장편영화를) 세편밖에 못 찍었는데…. 영화 외적인 활동은 많이 한 것 같다. 무성영화 <청춘의 십자로>의 변사 공연을 연출하고 EBS <시네마천국>을 진행했다. 또 이송희일, 이해영 등 다른 감독의 영화에 카메오 및 단역 출연을 하면서 연기도 했다.”

충무로의 몇몇 사람들은 평가했다. 감독을 그만두면 연기로 전향해도 승산이 있겠다는 게 김태용 감독의 연기 실력이다. 혹시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연기’가 숨어 있었던 건 아닐까. “지금도 있는 것 같다. 나와 어울리지 않는 영화를 처음 건드렸을 때 느낌 있잖나. 연기는 그 느낌의 열배 이상의 뭔가를 건드린 듯한 느낌이었다. 언제였던가. 이송희일 감독이 무슨 영화제 개막 영상을 찍는다며 하루 놀면서 찍자고 해서 출연했는데 그렇게 떨리는 것은 살아오면서 경험해보지 못한 것 같다. 눈앞이 깜깜해지고.”

되돌아보면 소심한 성격의 김태용 감독을 변하게 한 건 ‘연기’였다고 한다. 그는 그런 연기를 성장 과정에서 두번 겪었다. 하나는 ‘미스 춘향’을 맡았던 초등학생 때다. “그땐 키가 작고, 얘가 남자야 여자야, 싶을 정도로 귀엽고 예쁘장했다. 당시 차전놀이는 가운데 있는 춘향을 빼앗는 쪽이 이기는 룰이었는데, 내가 여자 한복을 입고 춘향을 맡았다. (웃음) 뭘 잘해서 춘향이를 맡았다기보다 말도 잘 못하고 귀여우니까…. 많은 사람들 앞에 선 기분은 이런 거구나, 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 하나는 우연히 한 무협영화에 엑스트라로 출연했던 중3 때였다. 소심하고 연약한 성격을 바꾸기 위해 김태용 감독은 중학교에 진학하자마자 “태권도 도장을 끊었고 신촌에서 영춘권을, 신도림에서 당랑권을 배웠다. 당시 다니던 태권도 도장에서 단체로 한 영화에 엑스트라 출연했다. 배우라는 생각은 전혀 안 했고 카메라가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몰랐다.” 고등학생 때 김태용 감독은 좋아하는 여학생 따라 교회를 다녔다. 한때 성직자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것도 그 때문이었을까. “당시 학생들이 가졌던 근본적인 고민, 삶과 죽음 그리고 여자(웃음) 등 여러 가지가 혼재된 고민을 했던 것 같다. 그때도 영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연극을 하겠다는 마음은 있었던 것 같다.”

김태용 감독은 스스로 ‘열정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화정 기자는 “감독님은 열정 말고 다른 게 있지 않을까. 김태용 감독의 영화 속 인물들은 소심하지만 하고 싶은 말들을 나름의 방식대로 다 하는 것 같다”면서 “그런 걸 보면 열정이 아닌 감독님만의 다른 성격이 작용하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게 ‘둔함’인 것 같다. 선택과 집중에서 나오는 어떤 힘이 있잖나. 그걸 봐야하는데 나는 중간에 있는 어떤 것도 보이고, 어떤 것이 다른 방향으로 가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를 통해 단순히 전형적인 공포가 아닌 10대들의 우정 혹은 상처, 이와 관련해 아이들이 가진 격렬한 감정을 건드릴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점에서 내가 가진 둔하고 느린 면모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면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최근작 <만추>와 관련한 질문들이 많았다. <만추>에서 무성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연극 시퀀스를 설정한 건 어떤 의미에서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김태용 감독은 답했다. “그 신은 영화가 흘러가다가 정지하는 순간이다. 찍을 때 고민이 많았는데 두 가지를 염두에 둔 것 같다. 하나는 애나(탕웨이)와 훈(현빈) 두 사람이 소통이 가능한가, 가능하지 않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소통은 무조건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소통 방식을 어떻게 할 것인가. 대사와 대사 사이의 길이, 표정과 표정 사이의 길이 등 여러 가지가 동시에 진행되다가 순간 두 사람 모두 숨을 놓는 순간이 있다. 그게 두 사람(애나와 훈)이 연극의 관객이 되는 순간이다. 연극 내용보다 두 사람이 연극을 보는 행위가 중요했던 것도 그래서다. 어쨌든 무리한 장면이긴 하나 시도해보고 싶었다.”

감상, 신파, 약간의 모호함이 <만추>의 핵심

<만추>의 애나 역에 탕웨이가 아닌 다른 배우를 캐스팅한다면 누구를 선택하겠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이랬다. “<만추>의 시작은 서로 가까워질 수 없는 두 남녀가 하루를 함께 보낸다, 였다. 여기에 또 하나의 설정이 더해진 게 서로의 과거를 나눌 시간도 없는, 너무나 다른 두 남녀였다. 그게 (서로 다른 국적의) 현빈과 탕웨이고 장소는 시애틀이다. 같은 목적으로 탕웨이가 아닌 다른 배우를 캐스팅한다면 지금의 <만추>와 전혀 다른 영화를 만들 것 같다. <만추>를 한국에서 만드는 건 어려울 것 같다. 감상, 신파, 약간의 모호함이 원래 <만추>의 핵심인데, 2011년 한국에서 한국 남자와 한국 여자가 길에서 만나 KTX를 타고 가는 여정은 어떤 감상성이 있을까. 쉽지 않을 것 같다.” 이 밖에도 <만추>와 관련한 다양한 질문들이 쏟아진 뒤 세 번째 토크쇼는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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