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5일 CGV상암. <씨네21> 16주년 창간 기념 토크쇼 두 번째 행사. <카페 느와르>의 15분짜리 요약 동영상이 상영된 뒤 오늘의 주인공인 정성일 감독과 진행을 맡은 허문영 평론가의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됐는데, 동영상을 본 정성일 감독이 문득 의외의 사실 한 가지를 말해주었다. “저 동영상을 보니 생각난 게 있다. <카페 느와르>는 세 가지 버전이 있다. 하나는 3시간55분 버전이다. 두 번째는 여러분이 극장에서 본 3시간17분 버전이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시나리오 장면을 다 무시하고 오케이가 된 편집장면만 보고 그날부터 시나리오를 다시 써서 편집한 1시간55분짜리 버전이다. 그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편집실에만 보관되어 있는데 오늘 동영상 상영하는 걸 알았다면 어쩌면 내 마음이 (그걸 보여주고 싶어) 흔들렸을지도 모르겠다. (웃음)”
<카페 느와르>의 한 장면으로 시작한 대화는 정성일 감독의 영화적 기원으로 곧장 이어졌다. “이 영화를 만들며 마음속으로 기준을 삼은 최초의 혹은 최고의 감독은 누구인가” 하는 허문영 평론가의 질문에 정성일 감독은 로베르토 로셀리니였다고 답한 뒤 이렇게 설명했다. “<카페 느와르>를 찍으면서 나의 믿음은 한 가지였다. 장소에 대한 믿음. 장소에 대해 절대적으로 순종할 것. (로셀리니에게 배운) 장소에 대한 유물론적 사고를 믿을 것. <카페 느와르>를 만드는 3년 반 동안 내 책상에 놓여 있었던 것도 로셀리니의 <나의 방법론>이라는 책이었다. 로셀리니는 영화는 결국 모럴의 문제라고 말했다. 영화는 결국 세상에 대한 태도의 문제다. 나는 그 영화가 얼마나 완성도가 있는가 하는 문제보다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이 세상에 어떤 태도를 가졌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하나의 계단이 되면 누군가 또 다른 계단을 쌓겠지
대화의 화제는 자연스럽게 인간 정성일로 옮겨갔다. “르네상스적인 인간, 말하자면 분업과 체제가 성립하기 이전의 시대에나 가능한 종합 인문인이자 종합 교양인” 혹은 “40년을 군인정신으로 살아온 이상한 사람”이라며 존경과 농담이 섞인 표현으로 정성일 감독을 칭한 허문영 평론가는 영화 <하하하> 현장에 함께 놀러가서 목격한 일화 하나를 전하며 물었다. “아주 이른 아침이었다. 정성일 감독이 팬티 바람으로 뭔가를 읽고 있었는데, 불어로 된 장 외스타슈의 평전이었다. 묻고 싶다. 도대체 잠은 언제 자나? (웃음)” 이어지는 정성일 감독의 대답. “많이 잔다. (웃음을 띠며) 물론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잠이 안 오긴 한다. 다음날 마뇰 드 올리베이라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새 영화를 보게 되는 거라면 그 설레는 느낌 때문에 그런 심정이 되는 것 같다. 다만 그런 영화들이 내게는 좀 많을 뿐이다. (웃음)”
뒤이어 정성일 감독은 그의 저 유명한 영화에 관한 사랑과 방어에 대하여 청년기를 돌아보며 자세하고 감동적으로 첨언했다. “이 자리에서 처음 드리는 이야기다. 하기 싫은 표현이긴 하지만 이 자리에 계신 분들과 나는 분명 세대 차이가 있을 것이다. 지금 여러분은 영화가 대접받는, 지식인 카페에서 논쟁을 일으키고 기꺼이 많은 사람이 여기에 참여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78학번인 내가 대학 다니던 시절에 영화를 하겠다고 말하는 건 대체로 학업을 포기했다는 뜻으로 남들은 들었다. 스캔들을 일으킨다는 뜻으로 통했다. 학문적으로 유명하다는 선생님들의 강의를 많이 들으러 다녔는데 그분들이 내게 뭘 하고 싶은가 물을 때, 영화를 하고 싶습니다, 하고 답하면, 단 한번도 예외없이 그들은 경멸의 시선을 보냈다. 그것이 그 시절의 영화의 자리였고 위치였다. 나는 나 자신과 상관없이 영화를 방어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단숨에 그것을 끌어올리지는 못하겠지만 나보다 더 훌륭하고 명민하고 통찰력있는 후배들이 더 좋은 글을 쓰도록 영화에 대한 생각을 적어도 한국사회에서 문학이나 그 어떤 예술장르의 수준으로 대등하게 끌어올려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그 때문에 문학평론, 철학, 미술 등 사람들이 읽었다는 책은 다 읽고 싶었다. 그걸 알아야 영화에 대한 생각을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혹자는 지난 나의 글을 보고 어지간히 잘난 척했다고 말하지만 그건 영화담론이 당시에 받았던 멸시적 눈길과 그 속에서 내가 수행해야 했던 전투의 과정을 생략하고 말하는 것이다. 내가 하나의 계단이 되면 누군가 또 다른 계단이 되지 않겠는가 하고 나는 생각했던 거다.”
관객과의 대화가 시작되자 첫 번째 나온 건 감독과 평론가에 대한 그의 생각을 묻는 질문이었다. 당신은 평론가와 감독 중 무엇이 더 좋은가, 오피니언 리더인 평론가는 관객과 눈높이를 맞춰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두 가지 다 좋다. 평론가라는 건 내게 정체성 같은 것이고 감독은 나의 삶의 목표다. 두 가지는 서로 떼놓을 수 없다. 하지만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반론을 제기하고 싶다. 나는 평론가가 사회적으로 오피니언 리더라고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오늘날 블로거 중 평론가 아닌 사람이 있나. 오히려 영화평은 어떻게 활용되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어떤 영화를 봐야 좋은가, 할 때에는 비평가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 영화를 보고 생각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 이 영화에 대해 좀더 알고 싶을 때 기꺼이 토론하고 싶어질 때 그래서 영화평을 찾아보기 시작할 때 그때 영화평과 그 사람과의 대화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어떤 관객은 영화평을 읽기도 전에 적대감을 갖기도 한다. 나는 그 비평과 어떤 식으로 대화할 것인가, 하는 때에 비로소 읽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쁜 유혹을 떨치고 <카페 누아르>를 만들던 과정
감독으로서 “영화 자체를 만드는 게 목적인가,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영화를 보고 남들이 뭔가를 얻고 느끼기를 바라고 만드는가” 하는 미묘하지만 중요한 차이를 묻는 질문도 있었다. 정성일 감독은 <카페 느와르>를 만들며 생겼던 나쁜 유혹을 어떻게 떨치고 자신을 지켰는지에 관한 이야기로 대답을 대신했다. “영화를 만들며 일기장에 수없이 썼던 말 중 하나는 어떤 방식으로건 목적을 가지면 안돼 하는 것이었다. 정직하게 이야기를 하면 나는 첫 영화를 교활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젊은 감독들과 달리 이런저런 경험이 많아서,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영화 언론과 게임을 벌이고 화제를 만들어서 순식간에 이 영화로 담론의 불바다를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다짐이었다. 나에게 정직하자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오로지 충직할 것, 그것이 나의 영화의 순정이다.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내게 순정이다. 오죽하면 끝까지 영화 제목의 후보명으로 남아 있던 것이 ‘카페 느와르’의 다른 제목이 ‘순정’이었겠나.”
이날의 자리에서 마지막을 장식한 한 관객의 질문 그리고 정성일 감독의 태도가 인상적이다. 파주에서 이곳 상암CGV까지 대화를 들으러 온 것이라고 말한 뒤 한참을 본론으로 들어가기를 주저하던 한 관객은 <카페 느와르>를 가리켜 “그런데 사실은 롱테이크 영화는 편하자고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냐”고 조심스럽고 겸손하게 물었다. 정성일 감독이 특유의 웃음을 살며시 지은 다음 망설임없이 대답했다. “사실 해보고 알게 된 것이지만 편집영화가 더 쉽다. 72테이크를 찍은 장면도 있었지만 원하는 촬영에 실패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장면은 편집상에서 다시 넣지 않았다. 그리고 분명한 건 이것이 나의 첫 번째 영화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음에는 더 잘하겠다! (웃음)” 그리고 머리 숙여 관객을 향해 인사했다. 상암에서 파주로 돌아가는 그 관객의 머릿속에 이날의 대화가 한편의 영화처럼 한번 더 떠오르고, 그리고 그것이 그에게 영화에 관한 어떤 또 다른 사유를 일으키기만 할 수 있다면, 그럼 오늘의 내가 할 일은 한 것이라고 아마도 정성일 감독은 겸손하게 말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