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미팅을 방불케 하는 열기였다. 4월27일 CGV상암. <씨네21> 창간 16주년 기념 토크쇼 마지막 행사 시작 1시간 전, 극장 안은 티켓을 받기 위해 줄을 선 관객으로 가득 찼다. 이들은 오전 10시부터 자리를 잡고 있었고 자체적으로 (좌석) 배정까지 완료했다고 한다. 소문으로만 듣던 배우 유아인 팬들의 열성을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완득이> 촬영 중 시간을 내 행사에 참석한 유아인과 <씨네21> 김혜리 기자는 약 15분 동안 유아인의 연기장면을 관객과 함께 감상하고 토크쇼를 진행했다.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2006), <좋지 아니한가>(2007),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2008), 드라마 <반올림>과 <성균관 스캔들>(2010)의 주요 장면들을 상영했는데, 김혜리 기자는 “지금 우리는 만들어지고 있고, 성장하고 있는 배우를 지켜보고 있다”라면서 유아인에게 “평소에 본인이 출연했던 작품을 자주 돌이켜보는 편인가요”라고 물었다. 유아인의 대답은 이러했다. “아니요. (웃음) 그런데 무슨 이유에선지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완득이> 촬영 시작하기 전에 다시 한번 봤어요.”
뭐가 자연스러운 연기인지 아직 혼란스러워
유아인은 성장드라마 <반올림>으로 연기 경력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카메라 연기로 시작한 셈이다. 카메라 뒤에서 스탭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상대 배우 없이도 ‘아이 라인’(eye line)을 염두에 두는 인위적인 상황에서 자기를 표현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예능 프로그램 울렁증이 있듯이 당시엔 카메라 울렁증이 있었어요. 감정 하나하나를 표현하기보다는 그저 대사를 외우고 말하는 정도만 신경썼던 것 같아요. 열여덟살의 저는 카메라 메커니즘에 적응하는 데 온 신경을 썼어요. <반올림>은 전적으로 카메라를 의식한 상태에서 한 작품인데 바로 다음 작품인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완전히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았어요. 이상하죠? 제 변화가 이유였는지 단순히 드라마와 영화 매체 차이에서 오는 이유였는지 몰라요.”
화제는 유아인의 연기 주요 장면을 본 김혜리 기자의 생각으로 넘어갔다. “(토크쇼 시작 전 상영했던) 클립을 보고 나니 이상하게도 감독들은 유아인씨에게 슬픈 여운을 남기려는 것 같아요. 유아인씨의 연기가 한 호흡 마무리되면 쓸쓸한 음악이 뒤따라나오는 경우가 많아요. 극단적인 예로 <성균관 스캔들>의 ‘걸오’가 첫 등장하는 장면은 온전한 액션신인데도 한바탕 패고 나서 슬픈 테마가 흐르잖아요. (웃음)” “저로 인해 캐릭터가 그런 방향성을 가지게 된 것은 분명 있어요. 캐릭터 설정 자체가 처음부터 상처를 가지는 경우가 많지만 촬영이 진행되면서 감독님들께서 제가 가진 속성을 캐릭터에 점점 불어넣기도 하세요.”(유아인)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서 종대가 TV 앞에서 귤을 까먹으며 이야기하는 장면을 두고, 지난 인터뷰에서 유아인씨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웠던 순간이라고 말했어요.”(김혜리) “네. 그 장면은 카메라 앞에서 배우 유아인이 그보다 자연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라고 말하는 게 맞는 것 같고. 완전히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연기했던 장면인 것 같고. 아직 혼란스러워요. 뭐가 자연스러운 건지, 과연 그렇게 하는 게 잘하는 연기인지도 모르겠고.”(유아인) “배우는 우리가 일상에서 무의식 중에 하는 행동들에 규칙을 적용해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그런 것이 해제되어 있는 느낌이랄까요?”(김혜리) “그럼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것처럼 카메라와 사람 사이에는 더 가까이 할 수 없는 큰 벽이 있어요. 그 영화는 그걸 완전히 벗은 상태에서 연기한 게 아니라 완전히 벗은 상태에서 나 자신까지도 벗겨내서 보여준 영화였어요.”(유아인)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이후 유아인은 몇몇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다. 지금 촬영 중인 <완득이>는 유아인이 그간의 경험을 안고 백지상태였던 첫 영화 때의 자연스러움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 시험하고자 하는 작품이다. “굉장히 긍정적이에요. 그간 익혀왔던 (연기) 기술, 영화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를 적극적으로 반영해서 작업하고 있어서 현재까지는 굉장히 만족스러워요. 개봉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완득이>는 저 스스로를 시험하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제가 관객을 시험하는 건 아니에요.” 유아인이 연기하는 ‘완득이’는 어떤 인물일까. “대답을 바로 안 해요. 실제 저랑 비슷한데 누군가가 저한테 질문을 하면 약 1초간의 간격을 두고 얘기해요. 자극을 자극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내부에서 한번 걸러요.” <완득이>는 완득이를 연기하는 유아인과 그런 완득이에게 겉으로는 무뚝뚝하게 대하지만 속으로는 아끼는 담임선생님을 맡은 김윤석, 두 사람이 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가는 작품이다. 남성 투톱으로 연기하는 건 이번이 처음인데, 그 점에서 색다른 점은 없을까. “남성 투톱이라 색다르게 느끼는 건 없고요. 상대역이 김윤석 선배님이기에 가지는 마음은 있죠. 연기 경력이 저보다 훨씬 많으셔서… 저를 잘 자극해주세요.”
스스로에게 솔직하고 자유롭고 싶어
<성균관 스캔들> 이후 유아인을 향한 관심은 그가 새로운 유형의 스타라는 점에 쏠리고 있다. 그는 대중의 상식적 기대에 맞건 어긋나건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드러냄으로써 행동반경을 확보하려고 한다. 최근 방영된 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그 정점이었다. 김혜리 기자는 그의 선택이 수반한 위험을 지적했다. “유아인이라는 사람에 대한 논의가 많아지고 이미지가 강렬해지면 그것이 스크린 안으로 치고 들어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유아인은 말한다. “선배들도 비슷한 고민을 해왔던 것 같아요. 예능에 출연하지 않는 선배들도 비단 신비주의 전략이라기보다 불필요한 이미지가 연기에 더해질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을 거예요. 그런데 <완득이>의 완득이는 스크린에서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진 캐릭터가 아니에요. 어느 시점, 타이밍에서 그간 형성된 배우 유아인으로부터 나온 캐릭터예요. 그 안에 제가 있으니 그런 부담감은 없어요. 그리고 모든 사람 안에 다양성이 있지만 저는 그 다양함이 조금 심한 것 같아요. (웃음) 제가 자연스런 저를 드러냄으로써 궁극적으로 전달하고 싶은 건 특정한 강한 이미지가 아니라, 유아인은 규정할 수 없고 뭐든 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거든요. 말하자면 어떤 인물도 될 수 있는.”
토크쇼가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앞으로 연기하고 싶은 역할 중에 실제 유아인과 어울리지 않은 역할이라도 출연하고 싶은 마음이 있나, 라는 한 관객의 질문에 유아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답다, 이런 건 저의 삶의 패턴이나 방식인 것 같고요. 제 성격은 아닌 것 같아요. 캐릭터, 주어진 감정과 상황이 억지스럽지만 않다면 저와 다른 역할이라도 못할 건 없다고 생각해요. 멜로도 하고 싶어요. 저랑 안 어울리죠?”(관객, 어울려요!) 배우로서 당연한 이야기지만 인물의 감정과 행동이 자연스럽다면 어떤 역할이라도 자유롭게 도전하고 싶다는 게 유아인의 생각일 것이다. 독립영화(<우리에겐 내일은 없다>)로 영화 경력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주류(상업영화, 드라마)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아인에게 다시 독립영화에 출연할 마음은 없는지를 묻는 질문도 있었다. “항상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다만 제가 출연하는 건 (독립영화에)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폐가 될 수도 있어요. 나중에 기회가 되고 좋은 작품이 있다면 언제든지 (출연)할 수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약 1시간 동안 관객은 그간 배우 유아인에게 궁금했던 질문들을 던졌는데, 거의 모든 유아인의 대답에서 공통점은 이것이다. “항상 스스로에게 솔직하고 자유롭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