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작 우디 알렌의 <미드나잇 인 파리>를 시작으로 64회 칸 영화제가 막을 올렸다. 시놉시스 조차 철저히 비공개를 고수했던 <미드나잇 인 파리>는 75세 감독의 여전한 사랑예찬가다. 시작부터 영화는 세느강, 에펠탑, 퐁네프, 루브르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파리의 명소들을 관광엽서세트처럼 늘어놓는다. 글이 좀체 잘 안 써지는 소설가는 약혼녀와 그 부모를 따라 파리에 왔다가 자신의 우상인 헤밍웨이와 F.W 피츠제럴드, 그리고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모든 예술가들을 만나는 시간여행을 하게 된다. <에브리원 세즈 아이러브 유> 이후 다시 찾은 파리. 우디 알렌은 단순히 현재의 파리 예찬이 아닌, 시간을 거슬러, 또 거슬러 올라가며 파리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온갖 판타지의 집대성을 감행한다. 전작들의 편집증적인, 심기 불편한 이야기들은 죄다 빼 버린 로맨틱코미디다. 현실을 망각한 듯한 우디 알렌의 시선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평가는 양호하다. 특히 환상적인 노스탤지어를 구축, 영화제를 붐 업 시키는데 일조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프랑스의 피가로지는 “영화를 보면 모두들 우디 앨런식 동화와 재즈 선율에 미소를 머금고 극장을 나올 수 있게 된다.”고 전했다.
아이슬란드 화산폭발로 영화제 초반을 잠식당한데다, 경기불황의 여파로 변변한 기대작도 없었던 작년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올해 칸느는 작년의 부진을 한꺼번에 만회하려는 듯, 애초 단단히 벼른 태세다. 작년 19편의 경쟁작은 영화제 시작 직전 20편으로 늘어났다. 다르덴 형제와 난니 모레티, 아키 카우리마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누리 빌게 세일란 등 칸느에 연례적으로 오는 감독들의 신작이 일단 선보인다. 올해의 모토는 역시 ‘다양성’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평소라면 경쟁작 입성이 불가능한 작품들도 모두 끌어안는 모양새다. 니콜라스 윈딩레이픈의 <드라이브>나 미이케 다카시의 <이치메이> 같은 장르영화가 경쟁에 진입했으며, 비경쟁 부문에 있던 무성영화 미셀 아자나비시우스의 <더 아티스트>도 경쟁작에 진입했다.
국가별로 보자면 작년에 이어 올해도 단연 프랑스영화가 두드러진다. 경쟁부문에 마이 웬의 <폴리스> 알랑 까발리에 <파테르> 베르트랑드 보넬로의 <매음굴의 기억> 미셀 아자나비시우스의 <더 아티스트>로 총 4작품이 프랑스 영화다. 올 최고의 화제작은 테렌스 멜릭의 <트리 오브 라이프>다. 특히 주연을 맡은 숀 펜은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디스 머스트 비 더 플레이스> 까지 두 편의 경쟁작으로 참석, 강력한 남우주연상 후보로 점쳐지고 있다. 더불어 올해는 여성감독이 약진이 두드러지는 해이기도 하다. 경쟁작 출품작으로는 가와세 나오미의 <하네주 노 츠키> 줄리아 리 <슬리핑 뷰티>, 린 램지의 <위 니드 토크 어바웃 케빈>, 마이 웬의 <폴리스> 이렇게 4명의 여성감독으로 역대 영화제 중 여성감독의 출품작 수가 가장 많은 해이기도 하다.
올 경쟁작엔 한국영화가 단 한편도 없다. 홍상수 감독의 신작 <북촌방향>과 김기덕 감독의 자전작 세미 다큐멘터리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아리랑>, 또 나홍진 감독의 <황해>가 칸느 버전으로 새롭게 편집되어 주목할 만한 시선에서 상영된다. 상영작 외에도 비평가주간 심사위원으로 이창동 감독이 황금카메라상의 심사위원으로 봉준호 감독이 위촉되 화제를 모으고 있다.
심사위원장 로버트 드니로 인터뷰
-이번 영화제의 작품들에서 무엇을 찾으려하는가.
=내가 뭘 찾는지 모른다 여기왔고, 영화들을 볼 것이다. 빨리 보는 게 목표다. 이렇게 짧은 기간에 20편의 영화를 보는 건 내게 생소한 일이다. 어쩌면 휴가 같은 것이다. 방해 없이 영화만 보는 거니까 내겐 일종의 특혜다.-다른 심사위원에게 제시하고 싶은 심사 가이드라인은 무엇인가.
=질 자콥과 티에리 프레모에게 오히려 가이드 라인을 달라고 했다. 지금은 감을 잡아가는 과정이다. 지난 칸느 영화제 경험해 기초해서 준수할 사항들은 가지고 있다.-공식 경쟁작 수상자로 참여한 경험이 있다. 경쟁작들의 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상은 양날의 칼이다. 상을 받을 만한 사람이 못 받게 된 경우도 있다. 특정영화를 주목하게 만들어주고 공식적인 방법으로 주목받는데 도움을 준다. 수상자가 무슨 얘기를 하든 그것이 뭔가 의미를 가지게 된다. 상이라는 게 결국 그런 거 아닌가.-개인적 친분관계 같은 이유로 완전히 객관적이지 않을 위험이 생길 수 있다.
=우린 각자 영화에 대해 토론을 할 거다. 누군가 특정 영화를 좋아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설득할 수 있을 지는 잘 모르겠다.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우리가 스스로 느끼는 것에 대해 표현하는 것이다. 어쩌면 정치적인 일이 될 지도 모르지만, 어떻게 될지 두고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