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퇴물’ 아이돌 분투기
2011-06-16
글 : 신두영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라희찬 감독의

5월22일 오후 6시경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여러 대의 촬영 차량 속에서 단박에 눈길을 끈 승합차가 있다. 노란색 봉고차에는 “Mr. Children”이라고 쓰여 있다. 2007년 <바르게 살자>로 데뷔한 라희찬 감독이 연출하는 <Mr. 아이돌>에서 남자 아이돌 그룹으로 등장하는 미스터 칠드런이 타고 다니는 소품용 차량이다. 주차장 곳곳에는 700여명의 보조출연자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도시락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있다. 이성진 PD의 말에 따르면 이들 보조출연자들 가운데는 미스터 칠드런의 지오 역을 맡은 2PM 출신 재범의 팬들과 미스터 칠드런의 메인 보컬인 유진을 연기하는 지현우의 팬도 많이 섞여 있다고 한다. 식사를 마친 보조출연자들은 공연장 입구 한쪽 벽을 배경으로 팔을 벌리고 사진을 찍는다. 이 사진은 CG팀에서 2천석 규모의 객석을 가득 메우기 위해 관객을 합성할 때 필요한 소스로 사용된다.

“꺄약~.” 미스터 칠드런이 무대에 등장하자 관객이 환호성을 지른다. “지금 소리 지르시면 안돼요.” 마이크를 든 조감독이 관객을 자제시킨다. “지금 여러분은 촬영과 콘서트를 헷갈리시는 것 같아요.” 조감독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극중 미스터 칠드런은 아이돌을 무시하는 발언을 한 유진의 동영상이 유포되어 문제가 된 상황에서 공연을 해야 한다. 관객은 야유를 해야 하는데 함성을 지르고 만 것이다. 이날 공개된 <Mr. 아이돌> 촬영은 로마시대의 원형극장을 연상케 하는 부채꼴 형태의 야외 공연장에는 이뤄졌다. 극중 계절은 겨울이다. 연말 가요대전에 나온 미스터 칠드런이 공연하는 장면을 촬영한다. 라희찬 감독은 “미스터 칠드런이 관객과 호흡하고 소통하는 장면이기 때문에 관객의 리액션이 중요하고 배우들과의 교감이 드러나야 한다”고 이날 촬영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Mr. 아이돌>은 퇴물(?) 아이돌의 성장드라마다. 구주(박예진)라는 실력파 음악 프로듀서가 엔터테인먼트계의 거물인 사희문(김수로)과 대립각을 세우고 회사를 나와 참피온 뮤직을 설립한다. 구주는 홍대 인디밴드 출신인 유진을 영입하면서 한번 실패했던 미스터 칠드런이라는 아이돌 그룹을 다시 만든다. 복싱 체육관을 개조해 만든 연습실 등 열악한 환경에서 미스터 칠드런은 착실히 발전하고 성공하는 듯했지만 사희문의 계략으로 위기에 빠진다.

<헤드>에서 열혈 기자로 출연했던 박예진은 <Mr. 아이돌>이 꿈을 이루면서 각자의 상처를 치유하는 영화라고 말한다. “유진과의 대사 중에 ‘안 이뤄지는 게 꿈이거든’이라는 대사가 있는데, 이 대사는 한번 실패했던 구주의 상처를 얘기하는 것 같다. 다시 꿈꾸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그 꿈이 이뤄지면 구주도 상처를 치유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이돌영화라서 시끌벅적할 것 같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사람 사는 얘기”라는 게 그의 얘기다.

유진 역의 지현우는 5개월째 식단을 조절하면서 안무 연습을 했다. 지현우는 2006년 방영된 ‘홍자매’ 극본의 드라마 <오버 더 레인보우>에서 이미 아이돌 연기를 해본 경험이 있고 더 넛츠라는 밴드 활동도 해왔기 때문에 <Mr. 아이돌>의 유진 역에 딱 어울리는 캐스팅이다. 지현우는 유진이라는 캐릭터가 자신의 실제 삶과 비슷하다고 했다. “문차일드라는 팀에서 객원 기타리스트로 처음 데뷔했다. 1년 동안 공연을 도와주면서 방송 출연료를 제대로 못 받았다. 그런 걸 몰랐다. 그냥 음악하는 게 좋았다. 그래서 이 영화가 더욱 공감이 되더라. 극중 유진은 기획사에서 쫓겨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밤에만 홍대에서 노래를 부른다. 대본을 처음 봤을 때 ‘어 이런 부분은 되게 사실적이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기획사가 어떤 곳인지 대중은 알지 못하는데 이런 부분을 대중이 알면 좋아할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 영화를 통해 아이돌과 기획사간의 불합리한 계약 등이 조금이나마 바뀌었으면 좋겠다.”

박예진과 지현우의 말처럼 <Mr. 아이돌>은 진지한 드라마를 기본으로 하지만 코미디적 요소가 가미될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장진 사단 출신인 라희찬 감독은 그 시절을 빗대 “군대를 다녀왔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라희찬 감독에게 <Mr. 아이돌>이 장진 감독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난 자신만의 홀로서기 무대가 된다. “잘 모르겠다. 장진 감독님과 오랫동안 작업을 같이 했는데 그 가운데 장진 감독 스타일이 묻어 있는 게 있을 테고, 어떤 장면에서든 투영되는 게 있을지 모르겠는데 일부러 쫓아가려고 해도 잘 안될 것 같다.”

미스터 칠드런이 객석의 보조출연자에게 인사를 했다. “연기 잘하시는데요. (웃음)” 지현우가 말문을 열자 객석에서는 또 함성이 터져나온다. 가장 큰 함성을 받은 구성원은 역시 재범이었다. 리키 역의 김랜디와 현이 역의 장서원이 차례로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촬영은 다시 시작됐다. 김수로와 박예진, 미스터 칠드런의 매니저 상식을 연기하는 임원희도 현장에 도착했다. 이제 카메라는 무대에서 객석을 향한다. 음악이 다시 흐른다. 미스터 칠드런은 퇴장했지만 관객은 점점 열기를 더해 함성을 지른다. 카메라는 구주와 상식의 흐믓한 미소를 담고 자신의 계략이 들통나서 황급히 퇴장하는 사희문을 쫓았다. 함성은 점점 더 커지고 “더, 더, 더~”를 주문하는 조감독의 목소리가 관객의 함성에 묻혔다. <Mr. 아이돌>은 지난 2월 촬영을 시작해 전체 분량의 70~80% 촬영을 마쳤다. 개봉은 올해 하반기다.

재범 캐스팅은 플러스알파일뿐

라희찬 감독 인터뷰

라희찬 감독 (가운데)

-오늘 촬영분은 엔딩장면이다.
=엔딩이라고는 하지만 (미스터 칠드런이 갓 성공한 시점이기 때문에) 시작에서 끝나는 거다. 결말은 관객의 몫이다, 그런 말은 아니다. 흐릿하게 끝나는데 관객도 그렇고 노래를 불러젖히는 친구들도 그렇고 촬영하면서 모두 즐거웠으면 좋겠다.

-기획사 내부의 이야기가 많다. 취재를 많이 했나.
=취재는 거의 안 했다. 음악감독이나 재범, 지현우, 래퍼 출신인 김랜디 등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 외에 특별히 조사를 많이 하지는 않았다.

-현장에서 배우들과 대화를 많이 한다고 들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시나리오를 수정하는 편인가.
=계속 의심을 하는 편이다. 좋지 않은 건데, 영화를 촬영하면서 재밌다는 느낌은 별로 없다. 내 영화에 대해 스스로 안 좋게 생각하는 편이고 그러다보니 호기심도 많아지고 고민도 많아지고 질문 거리도 많아진다.

-재범이라는 큰 이슈메이커가 영화에 출연한다. 관객 동원이라는 측면을 미리 고려한 캐스팅인가.
=그런 생각은 안 했다. 어느 정도의 플러스알파다. 재범이라는 친구도 영특하고 속이 깊어서 혼자 이슈가 되면 팀 전체에 좋지 않다는 걸 안다. 그런 면에서 지현우나 재범이 지금까지 잘해왔다. 재범으로 인해 영화가 도움을 받으면 좋겠지만 어떤 계산 때문에 캐스팅하지는 않았다.

-영화에서 코미디 요소가 꽤 있어 보인다.
=뭐 그렇게 웃기진 않는다. 배우들이 땀을 많이 흘렸고 거기서 오는 재미는 있다. 가끔은 안쓰럽기도 하고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일상적인 슬랩스틱 같기도 하다. 언어적인 시추에이션 코미디를 한다고 해도 대놓고 하진 않았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재밌다. (웃음)

-70~80% 촬영했다고 들었는데, 어느 정도 만족스럽게 나온 편인가.
=아까 말씀드렸다. 하면서 재미를 못 느낀다고. (웃음) 감독은 첫 번째 관객인데 내가 생각하는 근사치에 왔다는 느낌을 받을 때는 있다. 지금은 재미없다. 항상 궁금하고 의심이 많다.

-그렇게 의심을 하는 스타일이 연출을 잘할 수 있는 원동력은 아닌가.
=나도 잘하고 싶다. 아직 나에게 스타일은 없다. 몇년 더 쌓여야 할 것 같다. 나중에 이런 자리가 다시 있으면 그때 내 스타일이 어떤지 말해줄 수 있지 않을까. (옆 테이블에 놓인 식혜를 들며) 식혜는 좋아한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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