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젊은 베르테르의 ‘지랄’ 로맨스
2011-06-16
글 : 이화정
사진 : 백종헌
전계수 감독의 <러브픽션>

“솔직히 이건 남자들의 연애담이다!” 미리 돌 맞을 각오를 다지기나 하듯, 전계수 감독이 작품의 취지에 대한 일단의 고백부터 하고 본다. <러브픽션>은 연애의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을 모두 보여주는, 이른바 보통 사람의 연애담이지만 이 보통 사람의 시각이 다름 아닌 ‘남자’에 의해서 재단된다는 차별점이 존재한다. 여자는 당연히 ‘남자’의 판타지가 만들어낸 어쩌면 오해로 가득 찬 이상생명체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제대로 남성 중심적인, 감독의 말대로라면 ‘페미니즘에 입각해서 보자면 아주 괘씸한’ 작품이다. 내용으로나마 단서를 찾아보자면 이렇다. 잘 안 풀리는 소설가 주월(하정우)은 출판박람회 때 만난 영화수입사 직원 희진(공효진)에게 첫눈에 반한다. 그럴듯한 구애 과정이 진행된 뒤 둘은 수순처럼 연인이 되지만 남자의 마음은 여자의 일거수일투족에 요동치며 아주 주관적이고 때로 절대적이기까지 한 연애의 역사를 써내려간다. 결국 사랑스런 희진의 행동이 짜증으로, 의심으로, 분노로 치환되는 동안 주월은 그걸 또 자신의 작품에 반영하는 만용까지 서슴지 않는다. <500일의 썸머>에서 주도권을 가진 ‘썸머’가 심하게 얄미웠던 이들에게, 복수의 칼날을 쥐어준 셈이랄까.

<러브픽션>은 이 모든 순간에 대한 아주 상세한 연애학 보고서이자 커플의 흥망성쇠를 기록하는 과정에서의 코믹함, 짠함, 애틋함의 감정을 리얼하고 감칠맛 나는 대사로 기술한다는 점에서 로맨틱코미디의 틀에 딱 맞게 부합하는 작품이다. 물론 기상천외한 실험으로 출사표를 던졌던 뮤지컬영화 <삼거리 극장>과 홍상수 감독의 리얼한 연애담에 기반했다는 평가를 받은 전작 <뭘 또 그렇게까지> 이후 연출작이란 점에서 일말의 의심을 던지게 된다. “주변에서 이젠 상업영화를 하라는 권유가 많았다. 대중성을 얻으려면 로맨스와 코믹만한 재료가 또 있을까.” 재료는 그렇고, 정작 복안은 좀 다르다. “새로운 리듬을 찾는 것이 과제다. 그런 점에서 화법을 조금 달리하고 싶었다.” <러브픽션>의 화법을 표현해줄 장치는 그래서 조금 특별하다. 주월은 자신의 복잡다단한 내면을 가상의 인물 ‘M’과 대화로 풀어나가며, 자신이 쓰는 소설의 인물에게 순간순간의 위기를 토해낸다. 주월의 상태를 극명하게 표현해줄 시시콜콜한 내레이션 사용도 이 영화에서 눈여겨볼 만한 시도다. “물론 균형잡힌 시각은 아니지만 내 연애의 경험상 이거야말로 가장 잘 쓸 수 있는 이야기기도 했다. 내가 늘 연애에 실패해왔으니까. (웃음) 남자들이 연애를 할 때 이런 문제적 시각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아주 편협한 남성 중심적 연애 이야기는 지금까지 없지 않았나. 독문학을 전공한 주월이 영화에서 괴테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이를테면 이건 <젊은 베르테르의 사랑>이 아니라 <젊은 베르테르의 ‘지랄’>쯤 되는 거다.”

여성의 시각에서 보자면 한심한 측면도 많고 이기적이기까지 한 주월은 하정우가 맡는다. 코믹도 해보고 멜로도 해봤지만 정작 본격적인 로맨틱코믹물은 한번도 하지 않았던 배우다. “애초 하정우씨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추격자>의 연쇄살인범 ‘지영민’의 얼굴을 보면서 주월의 스펙트럼이 다 들어 있다고 봤다.” 드라마 커리어를 제외하고 영화에서 로맨틱코믹물이 처음이긴 상대배우인 희진 역의 공효진도 마찬가지다. 주월의 바라봄의 대상이지만 그 바라봄이 워낙 변화무쌍하다는 점에서 희진의 역할에 요구되는 것도 엄청나다. “두 배우 모두 이 장르는 처음이라 화학작용이 더 기대된다. 캐스팅으로 보자면 난 복권 당첨된 기분이다.” 7월 중순, 크랭크인, 선선한 바람이 부는 9월 중 코믹 연애의 종지부를 찍을 예정이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