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완벽한 DC 히어로와 소시민적 마블 히어로
2011-08-10
글 : 김도훈

DC도 가만있지는 않았다. 그들의 가장 거대한 고민은 70년대부터 여러 번 영화화된 자사의 메인 히어로 슈퍼맨과 배트맨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었다. 고민 끝에 찾아낸 결론은, 아예 예전 영화들을 깡그리 무시해버리는 방법이다. 2005년작 <배트맨 비긴즈>는 아예 배트맨의 탄생설화를 다시 썼고, 2006년작 <수퍼맨 리턴즈>는 예전 시리즈의 실패한 3, 4편을 무시하고 리처드 도너가 참여한 2편에서 이어지도록 설계했다. 마블이 마블 엔터테인먼트를 창립하자 DC 코믹스 역시 워너브러더스와 함께 ‘DC 엔터테인먼트’를 지난 2009년 설립했다. 이같은 전략적 제휴가 월트디즈니가 마블 엔터테인먼트를 40억달러에 인수하자마자 발표된 것도 의미심장하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를 제외하고는 마블에 상업적, 비평적으로 지난 몇년간 수세에 몰려온 DC의 자산을 보다 공격적으로 이용하겠다는 결의다.

사업적으로 따지자면 여러모로 비슷한 길을 걷고 있지만 DC와 마블이 자사의 슈퍼히어로를 영화적으로 다루는 방식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근본적인 차이점은 두 회사가 보유한 히어로들의 차이점에서 나온다. DC 히어로들이 거의 완벽한 힘을 지닌 신에 가깝다면 마블 히어로들은 보다 소시민적이다. 21세기의 본격적인 슈퍼히어로 대전에서 마블이 선제권을 획득했던 것도 그 덕분이다. 프랭크 밀러 이후 DC 히어로들 역시 자기쇄신의 길을 걸어왔다고는 하지만 현대적인 캐릭터로 쉬이 개조할 수 있는 건 역시 마블의 히어로들이다. 브루스 웨인이 피터 파커처럼 밀린 집세를 내지 못해 고민할 일은 없다. 클라크 켄트가 울버린처럼 자신의 힘을 저주하며 방황하는 일은 거의 없다. 당연히 DC와 마블이 자신의 히어로들을 영화화하는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

21세기의 영화로 만들기에는 지나치게 고전적인 히어로들을 보유한 DC는 비교적 자신들이 선택한 작가들의 비전을 믿고 따르는 편이다. 반면 마블은 모든 것을 스스로 통제하고 싶어 한다. DC가 크리스토퍼 놀란, 브라이언 싱어 같은 할리우드의 진중한 재능들과 협업하는 걸 좋아한다면 마블은 자신들이 인형처럼 부릴 수 있는 감독을 선택한다. 마블이 왜 하필 신인 존 파브로(<아이언맨>)와 루이스 레테리에(<인크레더블 헐크>), 이미 전성기를 지나친 케네스 브래너(<토르: 천둥의 신>)와 조 존스턴(<퍼스트 어벤져>)을 선택했는지를 생각해보라.

게다가 마블에게 감독이나 배우는 믿고 함께 간다기보다는 코믹스 캐릭터처럼 손쉽게 갈아치울 수 있는 도구에 가깝다. 정말이냐고? <인크레더블 헐크>를 한번 예로 들어보자. 에드워드 노튼이 특유의 깐깐한 성격으로 제작사와 충돌을 벌이자 마블은 아예 노튼을 잘라버리고 <어벤저스>의 헐크 역을 마크 러팔로에게 넘겨버렸다. 또한 우리는 마블이 <아이언맨> 1편에서 워머신 역을 맡았던 테렌스 하워드를 어떻게 쫓아내고 돈 치들을 기용했는지 잘 알고 있다. 마블은 마치 코믹스 신간을 내는 것처럼 영화를 만든다. 코믹스 매권마다 캐릭터 디자인이 조금씩 달라져도 괜찮은 것처럼 마블에 헐크는 에드워드 노튼이 하든 마크 러팔로가 하든 그저 헐크일 따름이다. 여전히 스타파워와 감독에게 기대고, 거액을 지불해서라도 오리지널 캐스팅을 유지하려고 하는 전통적인 할리우드 제작사들에게 마블은 기묘한 존재다. 마블은 코믹스영화의 세계뿐만 아니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전략 자체를 지금 바꾸고 있다.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