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아메리칸 코믹스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2011-08-10
글 : 김도훈

마블과 DC의 격정적인 라이벌 대전은 대체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그걸 알기 위해서는 먼저 아메리칸 코믹스의 태동부터 알 필요가 있다. 코믹스의 세상을 열어젖힌 건 DC였다. 1934년 DC의 전신이 된 <뉴 펀>의 발간과 함께 코믹스의 역사는 시작됐고, DC는 슈퍼맨과 배트맨 같은 고전 슈퍼히어로를 창조하면서 30~40년대를 ‘코믹스의 황금시대’로 만들었다. 2차대전이 끝나자 황금시대는 저물었다. 전쟁과 대학살을 두눈으로 목도한 미국인들에게 DC의 슈퍼히어로들은 지나칠 정도로 순진무구하던 시대의 환상에 불과했다. 침체되어가던 코믹스 시장은 후발주자 마블과 함께 되살아났다. 마블의 전속작가 스탠 리는 좀더 현실적인 히어로인 스파이더맨과 엑스맨을 창조하며 DC에 질려버린 팬들을 코믹스의 세계로 되돌려놓았다. 하지만 DC와 마블을 기성세대와 새로운 세대로 나누는 건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 DC 역시 프랭크 밀러라는 걸출한 작가를 영입한 이후 끊임없이 스스로를 쇄신해왔다. 프랭크 밀러는 DC의 전통적인 아이콘 중 하나였던 배트맨마저 완벽하게 파괴한 뒤 재조립했다. 그러니까 코믹스의 세계는 DC의 태동, 마블의 역습, DC의 자기쇄신으로 이어지며 위대한 라이벌의 역사를 만들어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DC와 마블 코믹스가 내놓은 영화의 역사는? 60년대 이후 DC와 마블은 저마다 배트맨이나 스파이더맨을 활용한 TV시리즈를 내놓으며 자사 히어로를 적극적으로 팔아먹었다. 하지만 두 회사 모두 코믹스의 진정한 장편영화는 꿈도 꾸지 못했다. 문제는 코믹스의 세계를 영상으로 재현할 기술의 부족이었다. 아날로그 특수효과가 점점 발전하던 1978년에야 DC는 마침내 영화 역사상 첫 번째 진정한 슈퍼히어로영화를 내놓았다. 리처드 도너의 <슈퍼맨>이었다. <슈퍼맨>은 할리우드가 코믹스의 아이콘을 성인 관객도 즐길 수 있는 장편영화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최초의 증거였다. 게다가 DC는 1989년에 팀 버튼을 영입해 <배트맨>을 만들어냄으로써 슈퍼히어로영화로 성취할 수 있는 최상의 비평적 찬사를 받아냈다. DC가 연속 홈런을 치는 동안 마블은 뭘 하고 있었냐고? 그들은 기껏해야 캡틴 아메리카의 판권을 헐값에 팔아넘긴 뒤 <캡틴 아메리카>(1990) 같은 졸작의 탄생에 기여하고 있었다.

자, 여기서 한번 마블과 DC 영화의 초기 역사를 정리해보자. 슈퍼히어로영화의 1기는 리처드 도너의 <슈퍼맨>이 열었다. 2기는 팀 버튼의 <배트맨>이 열어젖혔다(슈퍼히어로 코믹스를 영화로 만들면서 예술까지 하는 게 가능하구나!). 그렇다면 진정으로 현대적인 슈퍼히어로영화의 3기를 열어젖힌 건? 그건 당연히 마블과 이십세기 폭스가 제작한 브라이언 싱어의 <엑스맨>이다. <슈퍼맨>과 <배트맨>은 현대적인 코믹스 각색영화였지만 사실상 코믹스의 세계에 머물러 있는 작품들이었다. 팀 버튼이 만든 두편의 배트맨 영화는 원작의 현대화라기보다는 팀 버튼 특유의 수공예적 우화 속에 머무르는 걸작이었다고 하는 게 좋을지 모른다. 브라이언 싱어의 <엑스맨>은 달랐다. 싱어는 지금 우리 곁에 존재하더라도 아무런 이질감이 없는 현대적 캐릭터로서 슈퍼히어로를 묘사해내는 데 성공했다. 물론 거기에는 또 한 가지 시대적 선물이 더해졌다. 바로 CG 테크놀로지의 발전이었다.

DC는 워너브러더스와 손잡고, 마블은 이십세기 폭스와 소니와 함께 자사 슈퍼히어로들을 보다 체계적으로 스크린에 옮기기 시작했다. DC보다 모험심이 강한 마블은 마블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며 자사 히어로들을 직접 영화화하기로 결심했다. 무슨 이유로? 마블 엔터테인먼트가 설립되기 전까지 마블 코믹스는 단순히 판권 장사를 했을 뿐이다. <엑스맨> 시리즈의 수익은 이십세기 폭스가,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수익은 소니가 가져갔다. 마블이 그걸 참아낼 배포는 당연히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마블이 자체적인 영화 제작사를 설립했던 2005년을 되돌아보자. 모두가 마블을 비웃었다. 이미 마블은 자사의 인기 아이콘들을 이용할 대로 이용해먹은 이후였다. <스파이더맨>과 <엑스맨> <헐크>를 이미 다른 제작사들과 협업으로 팔아먹었는데 뭐가 더 남았단 말인가? 마블은 업계의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인기가 낮은 히어로들을 차례차례 블록버스터로 만들었고, 한편도 빠짐없이 성공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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