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에서 뭔가 좀 천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솔직히 모두가 내심 속으로 묻고 있는 질문을 하나 해보자. 그래서? 지금까지는 대체 누구의 승리인가? 양으로 따지자면 마블의 승리다. 21세기 이후 DC가 내놓은 영화는 10여편에 불과하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영화 두편, 싱어의 <수퍼맨 리턴즈>를 제외하자면 <콘스탄틴> <왓치맨> <브이 포 벤데타>처럼 꽤 어둡고 마니악한 각색물들이 많다. 반면 마블은 <엑스맨> <스파이더맨> <판타스틱4> <데어데블> 등 자사의 인기 히어로들을 모두 영화로 데뷔시켰고, <퍼니셔>처럼 리부트에 리부트를 거듭할 만큼 애정을 갖고 계속 지휘하는 프로젝트도 있을 뿐 아니라 <일렉트라> 같은 스핀오프에도 관심을 기울여왔다. 질적으로 따지자면? 만약 이 글을 <다크 나이트>가 개봉한 2008년에 쓰고 있었다면 당연히 승자는 DC였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 <토르: 천둥의 신>과 <퍼스트 어벤져>로 비평과 박스오피스를 모두 거머쥔 마블은 누구도 생각지 않았던 승리를 거두었다.
물론 마블의 전략은 쉽게 피곤해질 수도 있다. 지난 몇년간 마블이 내놓은 영화들은 하나의 독립적인 장편이라기보다는 내년 개봉예정인 <어벤저스>를 위한 일종의 퍼즐 조각들에 가까웠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아이언맨2>는 그저 <어벤저스>와 관련된 떡밥을 관객에게 미리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거대한 예고편 같았다. 마블은 아마도 자사의 슈퍼히어로들이 격돌하는 수많은 원작 코믹스들(국내에도 출간된 <시크릿 워>와 <시빌 워>)을 먼 미래에 지속적으로 제작할 심산이겠지만 그들이 간과하고 있는 건 영화 관객과 코믹스 팬의 성격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관객은 코믹스의 열광적인 마니아들보다 훨씬 변덕스럽고 쉬이 질린다. DC 역시 전략적인 수정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DC는 오로지 슈퍼맨과 배트맨만을 지속적으로 리부트해 팔아먹으며 영화를 누려왔다. 그들은 진정으로 흥미진진한 작가가 될 가능성을 지닌 신인을 알아보는 본능적인 눈이 있다. 거의 무명이었던 팀 버튼과 크리스토퍼 놀란을 선택한 혜안 말이다. 하지만 DC가 조엘 슈마허의 <배트맨> 시리즈를 만들었던 장본인이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 리부트 중인 잭 스나이더의 <슈퍼맨: 맨 오브 스틸>이 새로운 조엘 슈마허의 <배트맨> 시리즈가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는가.
<엑스맨>으로부터 시작된 마블과 DC의 현대전은 아마도 내년에 어떤 절정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마블의 <어벤저스>와 DC의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지금껏 두 회사가 총력을 기울여온, 서로 다른 영화화 전략과 블록버스터 미학의 총합을 보여줄 것이 분명하다. 그 이후에 마블과 DC는 <엑스맨>으로부터 시작된 21세기 슈퍼히어로영화 역사의 한 챕터를 닫고 새로운 챕터를 열어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그들은 잘해낼 것이다. 마블과 DC의 역사는 원래부터 기나긴 자기쇄신의 역사였고, 언제나 거울처럼 마주본 채 서로를 배워나갔다. 무엇보다도 슈퍼히어로의 숫자는 아직도 무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