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오버2>의 한국계 할리우드 배우 켄 정(Ken Jeong)이 한국을 찾았다. 그는 북미지역 R등급 코미디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행오버> 시리즈의 ‘미스터 차우’ 역할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트랜스포머3>에서 샤이어 라버프의 상사로 출연해 배꼽 잡게 하는 ‘신 스틸러’가 됐음은 물론 드라마 <커뮤니티>의 스페인어 선생 ‘세뇨르 챙’ 캐릭터를 통해 얻은 인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내과의사로 일하다 코미디언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뒤늦게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뛰어든 켄 정을 만났다. 역시 그는 카메라 앞에만 서면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내추럴 본’ 코미디언이었다.
<트랜스포머3>에서 켄 정을 처음 본 사람들이라면 무척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샤이어 라버프의 상사 ‘제리 왕’으로 나온 켄 정은 그에게 디셉티콘의 계획에 대해 정보를 허겁지겁 알려주는데, 한편으로 디셉티콘에게 들키면 안되기 때문에 그를 화장실로 끌고 가 바지 안에서 꺼낸 종이를 전달한다. 충분히 오해를 살 만한 두 남자의 화장실 밀착 포즈를 그만 회사 사장에게까지 들키고 만다. 영화 <행오버>나 드라마 <커뮤니티> 등을 통해 켄 정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더없이 즐거운 장면이지만, 그를 모르는 사람들로서는 느닷없는 동양인 남자의 ‘오버’가 의아했을 것이다. 그렇게 그는 <트랜스포머3>에서 마치 무언가에 빙의된 것처럼 ‘발광’하다 사라진다. 그런데 그것이 켄 정의 트레이드 마크다. <행오버>를 보고 켄 정을 점찍어둔 마이클 베이 감독이 그런 그의 컨벤션을 끌어들여 오직 그만을 위한 장면을 만든 것이다. 당연히 단역이지만 <행오버> 때처럼 그저 한신을 그에게 맡겨버렸다는 말이다. 물론 제리 왕은 등장과 동시에 죽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지만 <행오버>의 미스터 차우, <커뮤니티>의 세뇨르 챙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미친 존재감’을 남겼다. 그 장면은 켄 정에게도 흥미로웠다. <트랜스포머3>라는 엄청난 대작에 출연했다는 것은 물론 “처음으로 CG 캐릭터와 연기를 해본 경험”이기 때문이다. 30대 후반에 등장한 이 희극배우에게 아직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미지의 세계나 다름없다.
의사에서 코미디 배우가 되기까지
1969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난 켄 정은 각각 김천, 대구 출신인 아버지와 어머니를 두고 있다. 1980년대에 부모님과 함께 경상도 지역으로 여행을 다녀온 적 있으니 이번이 거의 25년여 만의 두 번째 방한이다. 어려서부터 워낙 수재였던 그는 고등학교를 2년 만에 졸업하고 명문 듀크 대학으로 진학해 의사가 됐다. 하지만 배우의 꿈을 버리지 못한 그는 1997년 드라마 <The Big Easy> 시즌2로 연기 생활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오디션 전쟁의 시작이었다. 물론 의사 생활을 병행하면서였다. 타고난 유머감각과 끼 덕에 원래부터 인기 많은 의사였다. 참고로 인터뷰에서 그는 이 얘기가 무척 하고 싶었던 듯하다. 평소에도 웃기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덧붙여 이렇게도 얘기한다. “연기자 생활을 병행하면서 오히려 환자들과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늘었다. 그래서라도 계속 연기자의 꿈을 포기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주드 애파토우 감독의 <사고친 후에>(2006)에 산부인과 의사로 출연하게 된 것은 전업 배우가 되는 발판을 마련해줬다. 첫 번째 오디션을 보고 아무런 연락이 없기에 포기했던 순간 두 번째 오디션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고 출연하게 됐다. 비록 코믹한 역할은 아니었지만 이후 주드 애파토우는 자신이 제작한 <스텝 브라더스>(2008), <파인애플 익스프레스>(2008)에 작은 역할이나마 연달아 그를 캐스팅했다. 그의 말마따나 “코미디 배우로 활동하게 되는 데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준” 사람이 바로 주드 애파토우였다. 폴 러드, 크리스토프 민츠 플라세 등 이른바 ‘주드 애파토우 사단’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는 <롤 모델즈>(2008)에 비중있는 조연으로 추천해준 것도 바로 주드 애파토우였다.
<행오버> <커뮤니티>, 켄 정의 두 얼굴
30대 후반이라는 많은 나이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달려가던 켄 정에게 최고의 순간은 바로 2009년 <행오버>와 <커뮤니티>였다. 먼저 <행오버>에서 트렁크에 갇혀 있다 알몸으로 튀어나와 주인공 일행을 공격하던 마피아 보스 미스터 차우의 모습은 2010년 MTV영화제에서 그에게 ‘최고의 황당한 순간상’을 안겨줬다. <행오버>의 민폐 뚱보 ‘앨런’으로 나오는 잭 갈리피아나키스가 ‘악마의 웃음소리’라고 묘사한 가늘고 방정맞은 목소리의 마피아 보스 미스터 차우로 나와, 출연분량은 크게 두신 정도지만 주인공들을 들었다놓고 사라졌다. 두 번째 사막신에서도 주인공들의 인질을 붙잡고 있던 켄 정은 그들을 향해 외친다. 사실 잘못된 인질을 건넨 것임에도 뻔뻔하게 나의 거시기(chinese nut)를 빨면 그 사람을 되가져가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사정하는 모양의 ‘탁탁탁 푸슝~’ 포즈. 미스터 차우는 누가 봐도 웃긴 미친놈이었다. <행오버> DVD 서플먼트에서 잭 갈리피아나키스는 이렇게 말한다. “모두가 그를 겁낸다. 왜냐하면 아무 데서나 발사하니까!” 그리고 그 미스터 차우의 ‘chinese nut’는 <행오버2>에서 원숭이가 빨게 된다.
<커뮤니티>에서 켄 정은 그린데일 칼리지에서 스페인어 수업을 이끄는 교수다. 첫 수업부터 아시아 사람이 스페인어 수업을 진행한다는 것에 대한 인종차별적 시선을 거둬줄 것을 부탁하는 그는 <행오버>의 미스터 차우와는 달리 차분하고 위엄있는 선생이다. 하지만 이후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그는 괴짜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투우사에 멕시칸 남자 분장은 물론 피겨 스케이트 선수, 페기 플레밍 코스프레 등 닥치는 대로 변신하고 춤을 췄다. 그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그 비중은 계속 늘어나 스페인어 스터디 그룹에 속한 주인공들을 능가하는 수준이 된다. 급기야 교수에서 학생으로 전락한 그가 시즌2에서 스터디 그룹에 들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은 중요한 감상포인트다. 그 인기 덕분인지 현재 촬영 중인 시즌3에서 그의 비중은 더욱 늘어났다. 이에 대해 그는 “시즌1에서 그린데일 칼리지 교수였다가 시즌2에서 학생이 됐다면 이번 시즌3에서는 학교 경비가 된다”며 “내가 경비를 서게 되면서 교내에 대소동이 벌어지게 된다. 촬영장에서 웃음을 멈출 수 없다. <커뮤니티>는 갈수록 더 재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나체, 춤, 변장이라는 확고한 개성으로 승부
어려서부터 코미디언이 꿈이었다는 켄 정에게 흠모했던 코미디언들의 계보를 물었다. “<핑크 팬더> 시리즈의 피터 셀러스, 그리고 에디 머피와 빌 코스비를 좋아했다. 최근 활동하는 배우 중에서는 짐 캐리와 윌 페렐, 스티브 카렐을 좋아한다. 감독이라면 단연 주드 애파토우와 토드 필립스다. 그리고 <커뮤니티>의 제작자이자 시나리오작가이기도 한 댄 하먼은 정말 천재다.” 또한 <커뮤니티>에 함께 출연한, 그러니까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엄마의 잔소리에 시달리는 피어스 역할의 체비 체이스에 대해서도 물었다. “체비 체이스는 어렸을 때 나의 영웅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레전드’와 함께 출연한다는 사실 자체가 전율이었다.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는 물론이고 <Vacation>시리즈(국내에는 <OOO 대소동> 식의 제목으로 개봉-편집자)나 변장도 잘하는 재치 넘치는 기자로 출연한 <후레치>(1985) 같은 작품들을 매우 좋아한다. 그와 같은 촬영장에서 얘기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었다.”
켄 정에게 늘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감초’라는 표현이다. 아직 주연급으로 등장한 적은 없기 때문. 그 스스로도 그걸 알지만 딱히 별다른 욕심은 없다. 비중을 떠나 자신의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키고, 짧은 시간이나마 확실한 웃음을 주고 싶다는 코미디언 본연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쨌건 그는 속사포 같은 대사에 이어지는 나체와 춤, 그리고 변장이라는 자기만의 색깔을 확실히 만들었다.
옷을 벗기거나 춤을 추게 하지는 않았지만 마이클 베이가 그를 캐스팅한 것도 그런 확고한 개성 때문일 것이다. 하도 궁금해서 춤 연습을 따로 하는지 물었다. 영화와 드라마, TV쇼를 통해 그의 ‘족보 없는’ 춤이 화제가 된 것이 한두번이 아니기 때문. “그냥 내 맘대로 추는 거다.(웃음) 어디서 배우거나 하지 않았다. 굳이 모델이 있다면 마이클 잭슨의 뮤직비디오다. 내 딴에는 마이클 잭슨과 똑같다고 생각해서 나오는 모양이 그 모양이다. 하하하. 그렇게 나는 지금 마이클 잭슨과 똑같다는 느낌으로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어떻게 추는지는 나도 나중에 TV를 보고서야 안다.”
더불어 그에게는 ‘미스터 차우’와 ‘세뇨르 챙’이라는 서로 다른 캐릭터를 한데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얼핏 두 캐릭터는 비슷해 보이지만 목소리 톤과 제스처부터 다르다. “<행오버>의 미스터 차우가 격하고 무법자 같은 캐릭터라면 <커뮤니티>의 세뇨르 챙은 기본적으로 심약하고 소심한 남자다. 사람들이 그런 차이점을 얘기해주고 내 연기를 즐긴다고 말해줄 때 너무 기쁘다”는 게 그의 얘기다. 그리고 할리우드의 다른 한국계 배우들과도 더 깊은 교류를 하고 싶다는 바람도 건넸다. “존 조와 아론 유는 원래부터 내가 그들의 팬이었다. 지난해에는 직접 만날 기회도 있었고 기분 좋은 친분을 쌓았다. 최근 드라마 <워킹 데드>의 스티븐 연도 참 재능있는 친구다. 우리 모두 스타일도 개성도 다르다. 하지만 할리우드에서 우리 한국계들의 ‘커뮤니티’가 있다는 게 매우 기쁘다. 언젠가 한 작품에서 만날 일이 있겠지?”(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