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많은 편수를 제작하는 국가, 영화 관객 수가 가장 많은 나라, 세계에서 티켓 값이 가장 싼 나라 중 하나,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스튜디오(라모지필름시티)를 보유한 나라. 인도영화를 이야기할 때 ‘규모’는 빠지지 않는다. 이미 50년대 이후부터 서아시아는 물론, 동남아시아, 영국을 중심으로 한 일부 유럽국가에서는 인도에서와 다름없는 인기를 구가해왔지만 인기의 중심에 있는 이른바 발리우드영화는 세계로부터 B급영화 취급을 받아왔다. 하지만 최근 칸, 베를린, 베니스 등 메이저급 국제영화제에서 인도의 대작영화들을 소개하고 인도의 최고 스타들을 초청하면서 발리우드영화의 위상은 격상되었다. 산업적 측면에서도 인도의 거대자본이 속속 발리우드에 합류하면서 할리우드와의 제휴는 물론 세계시장 진출을 위한 거대 프로젝트들을 하나하나 추진해나가고 있다.
그러나 인도영화의 이러한 화려한 비상에는 그림자도 있다. 이른바 ‘작가영화’나 ‘예술영화’의 존재 자체가 미미해져버린 것이다. ‘인도 뉴웨이브’라 불린 인도 예술영화의 전통은 60년대에서 80년대에 이르기까지 화려한 꽃을 피웠다. 샤티야지트 레이, 므리날 센, 리트윅 가탁, G. 아라빈단 등 세계 영화사에 기록되는 수많은 거장들을 배출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러한 화려한 전통의 맥은 2000년대 접어들면서 거의 끊어지고 말았다. 1999년 데뷔작 <사좌>로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한 무랄리 나이르 이후 주목할 만한 예술영화감독은 찾기가 힘들어졌다. 이처럼 한때 세계의 주요 영화제를 주름잡았던 인도의 작가영화는 자취를 감추었고, 그 자리는 화려한 발리우드영화가 대신하고 있다. 작가감독으로 추앙받았던 샴 베네갈, 아두르 고팔라크리슈난, 기리쉬 카사라발리, 부다뎁 다스굽타등은 작품 활동을 거의 하지 못하고 있거나 범작을 만들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젊은 작가감독이 사라진 가장 큰 이유는 주변 환경 때문이다. 60년대 인도 뉴웨이브영화의 부상에는 각 지역의 제작지원제도가 큰 힘이 되었었다. 주정부는 그 지역 언어와 문화 창달을 목적으로, 작가영화의 제작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이러한 지원제도가 점차 사라지면서 재능 있는 작가의 등장이 뜸해진 것이다. 그러나 인도영화의 저력은 작가영화의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 최근 몇년 사이, 주목할 만한 신인감독이 대거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로 세계화의 그늘에 드리워진 인도인의 어두운 일상에 카메라의 초점을 맞춘다.
1993년의 뭄바이 폭탄테러사건을 재조명한 <검은 금요일>(2004)의 아누락 카시압, 아버지의 억압적 그늘을 과감히 벗어나는 청소년 성장영화 <로한의 비상>(2010)의 비크라마디티야 모와네, 인도 퀴어시네마의 새로운 지평을 연 <아들의 연인>(2010)의 산조이 낙, 쓰나미의 트라우마를 독특한 영상미로 풀어낸 <노인의 바다> (2008)의 라제쉬 쉐라 등이 최근 주목받는 대표적인 젊은 감독들이다. 올해도 인도영화는 새로운 피가 넘쳐흐른다. 지주의 횡포에 힘없이 동조하는 아버지와 파업에 동참하는 릭샤 운전사 아들간의 미묘한 갈등을 통해 펀자브 지방의 피지배계층의 삶을 그려낸 <눈먼 말을 위한 구호품>의 거빈더 싱, 신을 보았다는 한 남자의 주장에 따르는 소동을 그린 <사원>(두 번째 작품)의 우메쉬 비나약 쿨카르니 등 그야말로 쟁쟁한 젊은 감독들이 인도 작가영화의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정부의 도움보다는 독립영화 제작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선배 감독들과 차별화된다. 2011년 인도영화의 젊은 피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