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맨 강우석에게 묻는다
-한국영화계에서 최고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걸 실감할 때는 어떤 순간인가.
=캐스팅할 때와 이 영화 해보자 했을 때 주변에서 오는 자신감. 아, 그리고 돈을 집행하는 속도다. 내가 의사결정 전권을 가지고 있으니까 한번 결정하면 논스톱이다.
-그렇다면 ‘파워1위’라는 위치가 부담스러울 때는 언제인가.
=내가 워낙 지르고 시작하는 놈이니까, 어? 내가 왜 질렀지, 할 때다. 지금이야 돈 집행을 내가 안 하지만 옛날에는 사람욕심이 많아서 돈 날린 게 수십억 된다. 누가 와서 생활비 떨어졌다, 돈 필요하다고 하면 왜 나만 돈버나, 에이 같이 먹고 살자, 했던 적이 많았다. 결국 그것이 워버그핀커스 들어오기 전까지 회사에 돈이 없었던 이유이기도 했고.
-집행사항 중 제일 후회되고 마음에 짐으로 남았던 결정은 뭔가.
=후회라고 한다면, 편하게 할 수도 있는 일을 대기업 하고는 절대 손 안 잡는다는 고집 때문에 삥 돌아서 간 거다. 삼성이나 대우랑 했으면 편하게 했을 텐데 너네들 꺾는다는 마음이 있었다. 실제로 어떤 놈이 돈만 가지고 영화판 들어와서 파워1위 한다면 나는 영화인 안 할 거다, 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고 다녔으니까. 사실 그때 조금만 양보했으면 돈 많이 벌었을 텐데 하는 거지. 그리고 다른 하나는 사람은 돈으로 안 된다는 거다. 사람은 애정과 함께 가야 되더라. 한때는 파워게임 때문에 감독 9명을 감독료 먼저 주고 묶어두려고 했다. 남들이 먼저 데려갈까봐 못하게 돈부터 지른 거지. 그런데 결국엔 다 다른 데서 일하더라고. 그렇게 얻은 교훈은 돈만 가지고 뭔가를 도모하지 말자는 거다.
-초대 1위를 굉장히 오래 고수하고 있는데….
=그래서 내가 건강이 얼마나 나빠졌는데, 그거 유지하느라고. (웃음)
-항상 1위한텐 적이 많고, 나쁜 소리도 많이 나오게 마련이다.
=대부분 적이지. 대부분.
-그동안 들었던 비난 중에 정말 부당한 것과 정말 뜨끔한 건 뭔가.
=뜨끔한 걸 먼저 얘기하자면, 강우석이한테는 웬만하면 좋게 가라, 안 좋아도 당신 좋아합니다, 하는 척해라, 그 사람이 도와주는 건 잘 못하는데 해코지는 전문이다, 이런 거지. 어떤 사람이 이유도 모르게 망가지고 있어. 이건 분명 강우석이가 한 짓인데 전혀 티도 안 나고 이런 거 있지 않나. 내가 정정당당하게 일하자고 했는데 뒤에서 뒤통수친 놈치고 그냥 넘어간 놈이 한놈도 없다. 물론 킬러고용하고 그런건 아니지만. (웃음) 이런 경우엔 그놈 영화가 나오면 같은 날 흥행될 영화 앞뒤로 붙여서 아예 죽여버렸다. 몇년 전에 정말 있었다. 그런 일과 관련된 이야기 들으면 뜨끔하지. 하지만 요 근래는 없었고. 지금은 많이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부당하다고 한다면, 1위라고 해서 그런지 인신공격이 너무 심해. 결국 어느 순간 내가 귀를 딱 막아버렸다. 가장 심하게 매도한다고 생각한 거는 돈에 대한 헛소문날 때 진짜 섭섭하더라. 무슨 영화에서 강우석이가 30억, 50억원 벌었다더라 하면, 정말 같이 일해 보지 않으면 내가 그 돈을 다 사유재산화한 줄 안다. 하지만 김미희, 김상진이나 장윤현이나 다 안다. 내가 돈에 대해 얼마만큼 나약한 놈이고 얼마만큼 마음을 비웠는지. 시네마서비스는 연간 ‘똔똔’만 해라, 남는 돈 가지고 내 밑에서 망하든 벌든 끊임없이 영화찍어라, 그 대신 너네 중에 부자가 나와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아니, 자기 새끼도 못 먹이는 오야붕이 무슨 오야붕이냐고. 나는 편당 얼마 챙긴다거나 이런 건 생각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10억원을 막으려면 100억원짜릴 저지르는 스타일이다고 하던데, 공격적 경영 스타일은 선천적인 것인가.
=욕심이 많아서 그렇다. 내 경영의 가장 큰 장점은 망할 거에 대해선 미리 포기하고, 망한 거에 대해선 후회 안 한다는 거다. 공격적인 경영은 지르는 게 빠르다는 것일 거고 다른 의미는 뒤를 절대로 안 돌아본다는 거다. 회사 망해도 나는 언제나 맨몸으로 돌아갈 자신이 있단 말이다. 감독으로 돌아갈 거라는 거. 또 하나 오버하자면 떠벌려놓고 내가 그걸 지키려고 노력하는 거, 그게 내 가장 큰 장점이다. 예를들어 어떤 기사를 통해 올해 나 영화 15편 만든다 말해놨으면, 야, 너 기사봤지? 2편만 찍어주라, 식으로 안 되더라도 맞추려고 노력하는 거지. 그런 스타일이 아마 공격적으로 보인 이유일 거다.
-강 감독이 본격적으로 영화비즈니스맨이 된 계기가 서울극장 곽정환 회장의 권유라고 하던데.
=그건 절대 아니고 과정으로 선택했던 것뿐이다. <마누라 죽이기>를 끝내고 나니 내 앞에 제법 큰돈이 있더라고. 물론 내가 돈에 대한 한이 있었던 놈은 아니지만 돈 때문에 불편한 적은 많았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이 돈을 가지고 어떻게 할 것인가. 자, 내가 지금 이걸 먹고 말 것인가, 아니다, 내가 이 돈을 종잣돈으로 해서 간다, 극장 배급과 편수 늘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네마서비스를 만들었고 극장 체인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서울극장은 내 발로 찾아들어간 거다.
-서울극장과 무관한 회사가 된 계기는 외자유치라고 보면 되나.
=밀월관계 유지하는 게 과거엔 나하고 곽 회장이었는데 이제 김정상 사장과 곽회장으로 바뀐 거지. 서로 무시못할 관계니까. 우린 영화편수가 너무 많고 우리 입장에선 서울극장이 꼭 필요한 거니까. 나하고 곽 회장은 일을 떠나서 선배고 동료고 곽 회장은 나에게 아버지 같은 분이다. 이건 끝까지 가는 거다. 다만 곽 회장은 늘, 우석아 너무 멀리 가지 마라, 너무 크게 벌리지 마라, 영화는 언제나 망할 수 있는 사업이다, 걱정한 거고 나는 한번 해볼게요 했던 거다. 이제 곽 회장은, 야! 넌 이미 너무 크게 벌려서 강 건너 간 놈이니까 네 길로 가, 그런다. 분배 이런 거랑은 아무 상관없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어려웠던 순간들이 많이 있었을 것이다. 돌이켜 볼때 정말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 어떻게 그런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나.
=97년은 그래도 <투캅스2>가 워낙 돈을 많이 벌어놔서 괜찮았지만 98년, 99년은 정말 어려웠다. 아, 진짜 어려웠다. 시네마서비스 만든 이후 부도날 위기를 3번 겪었는데 중소기업 사장들이 왜 자살하는지 이해가 되더라. 12시까지 술이 떡이 되게 먹고 들어와도 새벽 1시에 거실에 앉아서 아침 7시까지 담배피우고 있는 거야. 입이 다 헐게 담배 한갑 다 피우고 앉아 있으면서 이건 감독만 하라는 뜻인가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참 다행히도 그때마다 살아남을 만큼의 영화가 뒤에서 받쳐줬다. <투캅스> 만들고 교만에 넘쳐 만든 영화들은 다 깨졌다. 18억원 부채 안고 <투캅스2> 찍고 살아났지. 그 이후 또 까분다고 이것저것 찍다보니 또 부도가 닥쳐. 그때 <편지> <여고괴담>이 살려. 마지막 어려움이 닥친 게 99년이었는데 이번엔 <인정사정…>이 살렸다. 이게 망했으면 <텔미썸딩> <주유소…> 개봉도 못했을 거다. 해마다 2달 웃고 10달을 울었다.
-처음 그렸던 시네마서비스의 청사진에 얼마나 가까워졌나.
=70% 정도? 지금 같은 모습은 배급을 모르던 시절부터 그려왔던 거다. 스튜디오 만드는 것도 즉흥적인 게 아니다. 돈이 들어온다면 편집실, 녹음실까지 들여오고 싶다. 마지막 목표는 감독들이 시나리오만 들고 들어와도 캐스팅부터 유통까지 끝내는 시스템이다.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고 하지만 투자·배급할 영화를 결정하는 건 여전히 강 감독의 몫이다. 그런 면에선 여전히 경영의 제일선에 있는 것 아닌가.
=돈에 대한 투자 외에, 즉 작품선택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한다면 아직 그렇다.
-강 감독의 영화투자 스타일은 대기업이나 금융자본과 다르다. 어떤 때는 시나리오도 안 보고 투자한다. 어떤 생각으로 시나리오도 안 보고 투자하는 모험을 하는가.
=시나리오 보고 앞뒤 다 잰 뒤에 영화하면 1년에 1, 2편밖에 못한다. 대신 가능성을 보는 거다. 박기형은 단편영화 하나 보고 <여고괴담> 감독시켰다. 절대 배신하지 않더라. 나도 그렇게 커왔는데 뭐. 누가 시나리오만 보고 흥행을 예상할 수 있나? 그런 사람 데려오면, 내가 연봉 10억 주겠다. 흥행에는 도사 없다는 거다. 그래서 안 되는 놈도 또 시켜보는 거고 되는 놈도 너 가라, 할 수 있는 거지.
-강 감독은 영화인과 비영화인에 대한 구분이 확고하다. 대기업 자본, 금융자본 등 외부 투자자에 대해 자주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초록물고기>나 <이재수의 난>에 이어 이번에 <취화선>에 투자한 것을 보면 나는 그들과 다른 영화인이라는 자존심의 표현 같다.
=지금의 내 논리는 그 차이보다는 이거다. 돈을 번다면 그 돈을 예술영화에 환원해야 된단 말이다. 상업영화가 안 되면 예술영화가 죽는다는 거지. 나 홍상수 감독 영화 별로 안 좋아해. 그래도 같이 일하고 싶어. 왜? 그 사람이 대외적으로 한국영화의 위상을 높이는 데 뭔가 할 것 같으니까. 그렇다면 일해야지. 만약에 올해 시네마서비스 라인업이 <취화선>이나 <생활의 발견>이 없다면 얼마나 답답하나. 구색맞추기가 아니라 영화를 여러 가지 형태로 만들고 싶은 거지. 까먹는 영화가 나온다면 의미있는 영화를 까먹어야지. 솔직히 <취화선>은 회사에 여유가 있으니까 들어갈 수 있었지만 이제보니 장사도 될 것 같다. 만약에 칸 가서 본상받으면 또 얼마나 좋은가. 물론 내가 붉은 계단은 못 밟겠지만 와, 저놈은 예술영화의 흥행도 알아본다, 신문에는, 강우석 타고난 흥행감각…, 뭐 이럴 거 아니겠나. 그러면 그 덕에 파워1위 더할 거 아닌가. (웃음)
-29살에 데뷔했는데 그 당시 강 감독의 꿈과 지금 현실은 어떤 차이가 있나.
=데뷔 때 꿈은 정말 재미있는 영화 한편 만들겠다는 거였다. 내가 감독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결정적인 계기는 <바람불어 좋은날>이었는데, 그거 보고 나니까 나도 살아남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더이상 학교 못 다니겠더라. 그만두고 충무로로 들어갔다. 그때는 참, 영화찍는 게 즐거웠다. 장가도 안 갔으니 생활을 책임져야 하는 것도 아니고 감독료 받은 돈으로 술먹고, 배만 안 고프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가 망하면서 내가 찍은 영화 때문에 영화사들이 힘들어져가는 거 보니까 어이구, 이거 남의 돈으로 영화 함부로 찍는 게 아니다 하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 선택이라고 생각했던 게 제작·감독을 겸해보자 하는 거였지. 그렇게 <미스터 맘마>로 스타트를 끊었던 거고. 본격적으로 지금 같은 배급의 꿈을 키운 거는 <투캅스2> 찍고 나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