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과욕`의 승부사 강우석 연구 [4] - 인터뷰 ①
2002-01-11
글 :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정리 : 백은하 ( <매거진t> 편집장)
“조폭코미디의 색깔없는 웃음, 엎어주고 싶었다”

유통기한 지난 채 수북이 쌓여 있는 연하장. 전화기 근처 덕지덕지 붙어 있는 노란 포스트잇. 대니얼 디포의 문고판 <로빈슨 크루소>. 10여년간 제작·감독했던 영화의 포스터 패널들이 사방으로 에워싼 채 촬영현장으로 그의 등을 떠밀었음이 분명한 사무실. “아이고, 이렇게 긴 인터뷰는 처음이네, 목이 다 쉬겠다.” 자고 나니 몇십억 벌었더라는 소문이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나오는 회사의 회장 사무실치고는 검소한 공간에서 커다란 생수통 하나를 앞에 두고, 시네마서비스 회장이자 <공공의 적>으로 감독이란 칭호를 다시 찾은 강우석 감독과 나눈 인터뷰는 210분간의 긴 마라톤이었다. 경제지가 아니라 오랜만에 영화지와의 만남이라는 즐거운 비명을 신호탄으로 시작해 신작 <공공의 적>에 대한 이야기와 충무로 부동의 파워1위를 고수하기 위한 비하인드 스토리로 반환점을 돌아, 항간에 떠돌았던 소문과 진실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르락내리락, 그렇게 결승점에 도달하고 보니 어느덧 창문 밖은 깜깜하게 어두워져 있었다.

-<공공의 적> 시사회 끝나고 나서 비판도 있지만 <투캅스> 이후 강 감독의 최고작이라는 평가가 많다.

=글쎄, 그렇게 말한다면 고마운 일이다. 사실 강원도에서 크랭크인하던 날, 기자들과 술 한잔 마시면서 이런 이야길 했다. 정말 두 마리 토끼가 있다면 이번엔 한 마리만 쫓겠다, 완성도로 가보겠다, 원래 시나리오가 누아르적이라 유머는 있었지만 웃음이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여기에다 웃음을 실어보겠다, 완성도와 결부되어 평가받는다면 그만한 거 없고, 흥행은 나중에 쫓게 되면 쫓는 거라고. 사실 흥행을 다시 해보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면, 막말로 <신라의 달밤>을 내가 찍었지. 결국 완성도로 가보겠다는 거였는데 찍으면서 <투캅스> 1편의 유머에 눌려 진짜 애를 먹었다. 만약 <공공의 적>의 웃음의 코드가 <투캅스>보다 못하다면, 의미가 없다면, 사람들이 극장에서 실컷 웃고 나와서, 내가 왜 웃었지, 비아냥거린다면, 이건 정말 죽는 거라고 생각했다. 또 하나, 지금 같이 일하는 감독들이 날 짓누르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상상도 못할 스트레스였다. 장윤현, 장진, 김상진, 한지승, 지금 다 나름대로 잘 나가는 감독들인데 자기들 편집할 때 이거 붙여라, 저거 보충하자, 간섭하고 설득했던 놈이 정작 자기 영화는 개판으로 만들면, ‘어나더(another) 생과부(<생과부위자료 청구소송>)’만들면, 누가 믿고 따르겠냐 이 말이야. 그러다보니 반쯤 찍으면서, 나 이거 왜 시작했지, 하는 생각이 한두번 든 게 아니었다. 그래도 옛날에는 잘 나갔던 감독이었는데, 그냥 그거 가지고 울어먹고 살지…. 안 그랬겠냐 말이야. 하루는 녹음실에 임권택 감독이 오셔서, 그분이 워낙 유머가 좋으신 분이니까, “강 감독, 이번 영화엔 옛날에 빤짝빤짝하는 거 하나도 없지?” 하시더라고. 이거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거야. 야 죽었다, 큰일났다 그랬지. 김상진은 노골적으로 “감독님 <공공의 적> 제가 20분만 잘라드리겠습니다”라고, 장진은 <킬러들의 수다> 편집 끝내는 날 “편집 걱정마십시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이러는데 오죽했겠나. 감독들끼리 모여서 어떻게 만드는지 한번 보자, 그랬다고 하더라. 그렇게 계속해서 <투캅스> 1편에 대한 강박, 코미디를 넣되 웃음이 허하면 안 된다, 머리 나빠 보이면 안 된다는 강박을 안고 찍어나갔다. 솔직히 지금은 마음이 편하다. 시사 끝나고 김미희, 김상진, 장진 같은 친구들이 “흥행에 상관없이 작품이 잘 나와서 정말 기분좋습니다’면서 좋아하더라. 결국 최소한 얘들한테는 욕 안 먹겠다는 안도가 들고나니 그날부터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지금 가장 큰 즐거움은 <공공의 적>이 강우석 대표작이다, 이게 <투캅스>보다 낫다, 그런 게 아니라 적어도 내가 그 영화의 웃음에 짓눌리지 않았다는 확신이다.

-<투캅스>도 그렇고 형사액션코미디 장르에서 강 감독 특유의 유머와 에너지가 발휘된다. <공공의 적>을 보면 강 감독이 물 만난 고기처럼 판을 장악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강 감독이 잘 아는 세계이기 때문일까.

=그건 아니고, <공공의 적>을 만들기까지 3년반 동안 40여편의 한국영화를 제작했다. 그 영화들을 일일이 편집실 찾아가고, 시사하고, 개봉 붙여봤던 과정이 직접 영화를 한두편 만들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공부였다. 뭐, 감독들이야 편집실에서 나한테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하지만, 사실 난 걔들에게 배운 게 너무 많았다. 그 사람들의 시행착오를, 아! 저거 시행착오야, 라고 판단하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공부였다. <킬러…> 편집하면서 야, 여기서 왜 호흡을 길게 가냐, 며 간섭했던 게 내 영화에서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었던 이유였고, 김상진의 닭살 코미디보면서 저러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코미디를 만들 수 있었다. 마치 동계훈련 열심히 한 야구선수 기분으로 타석에 섰던 거다. 다들 <공공의 적> 시나리오를 어둡게 봤지만 난 달랐다. 작가들이 <공공의 적>의 시나리오를 아무리 누아르 느낌으로 끈끈하게 써와도 나는 그 안에 있는 유머가 보였다. 일부러 억지 코미디를 넣은 게 아니라는 거다. 내 나름대로 편집실에서 남의 작품가지고 열변토하고 흥망을 같이 겪으면서 했던 공부가 정말 값지다는 걸 알았다.

-강 감독의 영화에는 사회풍자가 좀처럼 빠지지 않는다. 영화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사명감이나 강박관념 같은 게 있나.

=솔직히 과거의 내 영화에서의 사회풍자는 웃음을 경박하게 가지 않겠다는 강박으로 끌어들인 게 사실이다. 하지만 <공공의 적>은 사회에 대한 나의 시각이 달라진 거다. 그 사이 비즈니스를 하면서 변한 게 많았다. 어쩌면 나도 영화쪽에서 보면 지탄의 대상이 되는 사람인데, 왜냐. 너무 설쳐대니까 당연하지, 주변에 돈 때문에 일어나는 많은 일들, 돈이 충무로에 들어와서 어떻게 사람을 망가뜨려가는지를 봤다. 나라도 확실하게 어떤 게 나쁜 거고 어떤 게 덜 나쁜 건지 그려야겠다. 나 역시 내 영화를 통해서 나빠지지 않겠다는 의지랄까. 그게 만약 보수라면, 난 앞으로 보수다. 이런 시각의 변화가 생겼을 때 <공공의 적> 같은 시나리오를 만났으니 바로 이 영화 찍겠다고 생각한 거다. 그동안 돈 속에 들어가서 영화를 제작하고 배급해왔다. 그러다보니 얼마나 사회가 돈에 병들어 있는지 알겠더라. 돈 가지고 사람을 해코지 할 수 있고, 돈 때문에 어떤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 등을. 돈 때문에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이게 선이고 이게 악이야 하는 것을 <공공의 적>을 통해 쉽게 뱉어버릴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강 감독은 무엇보다 코미디에 강한 감독이다. 그러나 2001년 한국영화에서 상당수의 조폭 소재 코미디가 보여준 웃음에 대해선 비판적이었는데.

=<주유소…> 때나 <신라…> 때 김상진 감독한테 내가 이랬다고. 극장 들어가서 보니까 네 영화보고 관객이 많이 웃더라, 그런데 관객에게 진짜 재미있어서, 진짜 통쾌해서 웃는 건지 한번 물어봐라. 정말 그렇다면 네가 생명력이 있는 거고, 아니라면 그 다음에 너 어떻게 웃길래? 내가 과거에 웃음에 강박을 가졌던 것과 똑같은 스트레스를 너도 갖게 될 거다. 너도 길지 않겠지만 관객도 금방 싫증을 낼 거다, 그런 말을 했다고. 지난해, 일련의 영화들을 보면서 정말 짜증나고 화가 났다. 영화가 <개그콘서트>보다 훨씬 낮은 수준으로, 머리 비게 간단 말야. 소재는 신선하고 좋은데, 아, 여자 조폭, 소재는 얼마나 좋냔 말이야. 다 좋은데 꼭 영화를 그렇게 끌고 가야 하는 건지, 적어도 웃음을 주는 순간만이라도 웃음에 대한 색깔을 가져야 하지 않느냐는 거지. <…JSA>에서 <친구>까지 잘 만든 영화들이 넘어오면서 이제 한국영화 볼 만하다 했는데 연말쯤 되니 주변의 일반인들까지 이렇게 가도 되는 거야, 물어보더라고. 물론 나는 거품론에 한번도 동조한 적 없지만 이렇게 가다간 큰일나겠다 싶더라고. 심지어 우리와 일하는 영화사들도 이상한 영화하겠다고 들고 들어오는데…. 물론 오는 족족 내가 다 엎어줬지. 퀼리티 없는 영화들 만드는 쪽하곤 일 안 해, 그랬다고. 내가 결론을 내린 게 이래. 이상한 가수가 이상한 노래불러도 100만장 팔리는 경우는 어느 시대나 있는 거니까 무시하자. 우리라도 헷갈리지 말자. 엄한 게 된다고 그것만 만들지 말자. 내 스스로 그렇게 다짐하고 그러고 있는 거야.

-<공공의 적>의 웃음은 지나친 과장을 배제하고 있다. ‘내가 진짜 영화적 웃음이 뭔지 보여주지’ 하는 마음으로 만들었다는 느낌도 든다. 그런 건가.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그런 마음이 가장 큰 부담이 었다. 장윤현이 나한테 침뱉는 날, 장진이 돌아서는 날, 야, 너 앞으로 내 영화 간섭하지 마! 자기 영화는 개판으로 만들어놓고 어딜 끼어들어, 그럴 수 있잖아. 그러면 내가 그걸 어떻게 견디냐고. 내가 김상진보다 코미디를 잘 만들 텐데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지만 그게 안 되면 어쩌냐고. 그렇다고, 아이 상진아, 나 바빴던 거 네가 알잖아, 관객에게 영화 중간에 “죄송합니다, 제가 좀 바빴거든요” 하고 자막을 넣을 수도 없는 일 아닌가. 그게 제일 무서웠다고 정말.

-지금부터 5년 전의 인터뷰를 찾아보면 강 감독은 “무조건 재미있는 영화가 최고”라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최근엔 부쩍 작품성, 완성도를 강조하고 있다. 두 입장의 차이가 강 감독 내적의 어떤 변화를 의미하는지 환경의 변화 때문인지 궁금하다.

=그때 재미있는 영화라고 말했던 건 다른 영화들이 재미를 무시하고 너무 작품성만 추구하니까 한 말이고. 그때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는 건 재미는 완성도가 있다는 전제하에 있다는 거다. 무조건 재미만 있어라 하는 건 아니라는 거지. 그러니까 <미스터 맘마> 같은 영화에 대해서는 나, 입도 뻥끗 안 하잖아. 물론 흥행요소가 충분했던 영화였지만 그 영화 완성도로는 내가 말도 못한다.

-<투캅스>는 98년까지 <서편제>에 이어 역대 흥행 2위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역대 흥행 10위 밖으로 밀려났다. 빨리 연출을 다시 해야겠다고 생각한 데는 흥행 랭킹에 다시 들어가야 한다는 부담도 작용했던 것 아닌가.

=그건 없었다. 진짜 없었다. 그 시절하고 지금하고 잣대가 다른데 그걸 지금 와서 어떻게 비교를 하나. 내가 죽은 다음에서 누가 내 기록 깼다고 하면 관 속에서 벌떡 일어나서 다시 영화찍게?

-그렇다면 거꾸로 스필버그 이야기를 해보자. 스필버그는 오랫동안 아카데미를 받고 싶어했고 작가로 평가받고 싶어했다. 당신도 작가로 평가받고 싶은 것인가.

=아예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사실 채플린처럼 돼보고 싶다. 그게 아니라면 이타미 주조만큼은 되고 싶다. <마루사의 여인>을 보고는 약이 올랐어. 한국의 작가들은 뭐하느라 저런 아이디어 하나 안주나, 그랬다고. 사실 나는 <피아노> 같은 영화 보고 감동이 없다. 하지만 <마루사의 여인>이나 <시티 라이트> 같은 영화를 보면 좌절하거든. 그렇지만 작가주의에 대한 욕심이나 스필버그가 <쉰들러 리스트> 찍으면서 가졌던 욕망 같은 건 50살 이전까진 안 가지게 될 것 같다. 시네마서비스가 돈이 너무 많아가지고 한 2년 기획하고 2년 찍으라면 모를까. 하지만 작가가 되고 싶어 영화에 다른 장치한다든지 테크닉을 부리는 건 못한다. 안 한다. <봄날은 간다>나 <미술관 옆 동물원> 같은 영화는 내가 못 찍는 영화다. <접속>도 마찬가지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영화를 계속 찍어나갈 거다.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강 감독은 승부욕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공공의 적>을 연출한 계기도 그런 승부욕의 산물이 아닐까 싶다.

=아이, 아니라니까. 나는 앞으로도 젊은 감독들하고 작품을 찍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 20대 후반의 젊은 감독을 찾고 있다. 내가 가장 빛나던 시절이 바로 20대 후반에서 서른한두살까지였다. 몸도 가장 튼튼했고 5박6일 밤새도 두렵지 않은 때도 그때였다. 지금 스물두세살짜리 놈을 찾아서 ‘한국의 천재감독’ 만들어내는 게 솔직히 내 꿈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그 아이들을 설득하는 데 내 영화가 무리가 없어야 한다는 거다. 물론 감독으로 잊혀져간다는 것에 대해 쫓기는 느낌도 있었겠지만, 그 아이들과 또다시 몇년을 살아남으려면 계속 찍어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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