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정재영] 몸통으로 밀고 나간 우직한 확실성
2011-10-03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진 : 백종헌
<카운트다운>의 정재영

정재영은 악인도 연기하고 선인도 연기한다. 하나마나한 말을 지금 이렇게 하고 있다. 이유가 있다. 선인을 하건 악인을 하건 간에 정재영이 연기하는 인물들은 한 가지 인상만큼은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끼>의 그 교활한 노인이 <나의 결혼원정기>의 그 순진무구한 시골 총각과 공유하는 바가 있다고 말하고 있는 중인데, 그렇다면 그건 무엇일까. 확실성이다. 두 사람은 자기의 방식으로 확실하다. 정재영이 악인을 할 때 그 악인은 자기의 악함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의 악함은 확실하다. 정재영이 선한 인물을 할 때 그 선함은 얼마나 확실한지 심지어 바보 천치처럼 보일 정도다. 어느 쪽이건 모두 확실함에 그 존재를 건다. 그렇다면 그가 특별히 악인도 선인도 아닌 일상의 인간으로 나오는 경우라면 혹은 <카운트다운>의 태건호라면? 영화 속 태건호에게도 우직한 확실성이 있다. 그건 만사를 제치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본능이다.

태건호는 채권추심원이다. 그는 가족도 없고 아무도 없다. 아내는 일찌감치 떠났고 하나밖에 없던 아들은 죽었고 그날의 충격으로 그는 아들이 죽었던 날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가 간암 말기 판정을 받는데, 마치 죽기만을 바랄 것 같았던 그가 살려고 발버둥친다. 아들의 장기를 이식받은 사람들을 만나 자신에게 간 이식을 부탁하려 한다. 그때에 아들이 심장을 기증한 차하연(전도연)을 찾게 되고 우여곡절을 겪는다. “정교한 상업영화 안에서는 불확실해 보이기도 하겠지만 그게 오히려 진짜가 아닌가. 감독님하고 회의하는 과정에 살아야 하는 특별한 영화적 이유를 넣어보기도 했다. 그런데 오히려 더 지저분했다. 그래서 다 뺐다.”

정재영의 다음 말이 진실에 더 가까울 것이다. “너, 수술하지 않으면 죽는다, 그 말 듣고, 아 그럼 내가 죽을게, 하는 사람은 없다. 물론 태건호의 경우에 그렇게 살아남아서 행복한 삶인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긴 하다. 태건호에게는, 내가 절실하게 느껴서 살아야겠다고 하는 마음도 없다. 찾으러 다니면서도 애걸복걸하지 않는다. 오기로 산다. 죽기는 싫으니까. 죽는 게 억울하니까. 지금까지 내가 한 역할 중에서는 가장 웃음기를 뺀 인물이고 가장 무미건조하고 희로애락이 없는 인물이다.” 영화 속 태건호를 설명하는 말로 이보다 더 적확할 수 없다. 정재영은 그 인물을 몸통으로 밀고 나간다. 그는 잔기술을 가진 배우가 아닌 것 같다. 그의 연기는 늘 몸통으로 부딪친다는 인상을 강렬하게 준다. “내가 기질상 그렇고 그런 사람들을 또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스스로 짐작하지만 그 이상을 말하라고 하면 설명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니까 삶이 망가진 남자, 웃지 않는 남자, 그러나 살고자 하는 남자, 이 남자의 속내를 비추기 위해 그는 잔기술을 발휘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하여 정재영이 맡은 이 인물은 우직한 매력을 발산한다.

영화 속 태건호의 삶의 집착을 따라가다 보면 마침내 어떤 중요한 과거가 등장한다. 그리고 정재영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과 중요하게 접속하는 그 과거 장면에 신경을 많이 썼다. “현재에서 벌어지는 장면이 상당히 중요하지만 조금밖에 나오지 않는 그 과거 회상 장면이 전체를 커버할 수도 있다고 봤다. 그래서 현재와 과거를 어떻게 대비시킬 것인가, 그리고 과거를 마지막 장면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생각했다.” 그렇게 하여 태건호의 과거와 현재를 다 보고 마지막 장면에 이르게 되면 우리는 이제 이 남자 태건호의 확실한 슬픔까지도 알게 된다.

스타일리스트 신래영·헤어 제니하우스 도산점 임서원·메이크업 제니하우스 도산점 김영주 원장·의상협찬 유고보스, 타임옴므, 아메리칸어페럴, 반하트옴므, 씨피컴퍼니(스톤아일랜드), 네오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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