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영화제 수작들을 만나보고 싶다면 주목하자. 올해 칸을 한바탕 뒤집어놓았던 라스 폰 트리에의 <멜랑콜리아>부터 이름만 들어도 배가 부른 작품들이 부산을 찾는다. 아시아 작품은 없냐고? 지금 일본 영화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름인 소노 시온의 <두더지>와 <사랑의 죄>가 기다리고 있다.
<두더지> ヒミズ
소노 시온 | 일본 | 2011년 | 129분 | 아시아영화의 창
거두절미하고, 지금 일본 영화계에서 소노 시온을 따라갈 자는 없다. 그의 전성기는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 공개된 <차가운 열대어>부터 시작됐다. 거의 고어영화에 가까운 이 범죄극에서 소노 시온은 인간 내부의 광기, 우리 모두가 남몰래 갖고 있는 욕망을 무시무시한 집요함으로 파고든다. 표백제로 씻어낸 것 같은 팬시영화와 지나칠 정도로 재단된 기획영화가 지배하는 지금의 일본 영화계에서 소노 시온은 80년대 이후 현해탄 건너 영화쟁이들이 거의 잃어버린 칼날을 다시 보여주고 있다.
거두절미하고, 지금 일본 만화계에서 후루야 미노루를 따라갈 자는 없다. <이나중 탁구부>로 데뷔한 이 시대의 천재는 이후 <크레이지 군단> <두더지> <시가테라> <심해어> 등 패배한 인생들의 마음속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걸작들을 지속적으로 내놓았다. 더이상 화장실 개그는 없다. 후루야 미노루는 사회적 리얼리즘과 일본 만화 예술의 어떤 불가능한 결합을 완성시키고 있다.
<두더지>는 두 거장 소노 시온과 후루야 미노루의 만남이다. 후루야 미노루의 2001년 동명 만화를 각색한 <두더지>는 일본영화에서 좀처럼 보이지 않는 쓰레기 인생들의 삶을 다룬다. 주인공인 중학생 스미다(소메타니 쇼타)의 꿈은 평범하게 사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스미다에게 그건 망상에 불과하다. 엄마는 가출했고 아빠는 술에 취하면 찾아와 돈을 내놓으라며 스미다를 구타한다. 스미다에게 유일한 가족은 그가 경영하는 보트 대여소 주변의 노숙자, 그리고 약간 정신이 나간 듯한 동급생 차자와(니카이도 후미)뿐이다.
소노 시온의 <두더지>는 원작과는 조금 다르다. 후루야 미노루의 원작이 정말이지 무시무시한 우울증에 빠진 상태로 희망없이 마지막 장을 덮어버린 데 반해 소노 시온은 한줌의 희망을 건져올리는 데 인색하지 않다. 특히 소노 시온은 3·11 동북부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에서 촬영한 장면들을 영화의 시작과 끝, 그리고 주인공의 상상 속에 삽입한다. 이 무시무시한 시퀀스들은 스미다의 마음속 공허를 현대 일본으로 연장시키는 장치인 동시에, 폐허 속에서도 다시 희망을 찾아야 한다는 어떤 절규에 가깝다. 특히 스미다가 차자와의 응원을 받으며 앞으로 앞으로 달려나가는 마지막 장면은 소노 시온의 영화에서도 보기 드문 감동의 순간을 빚어낸다.
<알미에르 가의 광기> Almayer’s Folly
샹탈 애커만 | 벨기에, 프랑스 | 2011년 | 130분 | 월드 시네마
소설을 영화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샹탈 애커만의 진가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갇힌 여인>에서 이미 발휘된 바 있다. 애커만은 복잡다단한 프루스트의 세계를 간소화시키면서도 타자와의 경계를 극복하려 하는 한 남자의 모습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깊이 있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그녀가 7년 만에 연출한 신작 <알마이에르 가의 광기> 또한 조셉 콘래드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다.
말레이시아의 한 백인 가정이 배경이다. 무역업자 가스파르는 일확천금을 노리며 말레이시아에서 사업을 시작하지만 큰 실패를 맛본다. 그의 유일한 희망은 원주민 여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 니나뿐이다. 가스파르는 딸에게 모든 기대를 건 채 그녀를 유럽의 정숙한 기숙학교에 보낸다. 동양인을 멸시하는 기숙학교에서 니나는 서서히 파멸해가고, 그런 그녀를 그리워하는 가스파르 역시 광기에 휩싸인다. 말레이시아의 이국적인 풍경을 배경 삼아 샹탈 애커만은 자신의 장기인 이미지와 사운드의 감각적인 배열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출렁거리는 물결과 비밀스러운 숲, 그 안에서 이성을 잃어가는 인간을 주시하는 애커만의 롱테이크는 여전히 매혹적이다.
<혈육> Blood of My Blood
주아옹 카니조 | 포르투갈 | 2011년 | 139분 | 특별기획 프로그램2
차라리 들어오기 싫은 집도 있다. 리스본 외곽 빈민촌. 중년 여성 마리사에게 집은 지옥이다. 밥상머리에만 앉으면 대화는 어김없이 싸움으로 변질된다. 왜 아니겠나. 마약조직에 연루된 아들, 유부남과 연애를 하는 딸을 보고 있노라면 이 어머니에게 희망은 요원해 보인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그러나 빈민촌의 가장 그럴듯한 모습이 될 한 가족의 일상. 포르투갈 감독 주아옹 카니조는 끈질기게 가족의 일주일을 클로즈업한다. 극도로 좁고 낡은 집은 이들의 현실을 구현하는 가장 큰 극적 장치다. 엄마와 딸이 싸우는 동안 한 프레임 안에 걸린 옆방에선 이모와 조카가 언성을 높이고 있다. 이들의 언쟁은 집 밖의 소음과 한데 섞여 곧 빈민촌 전체의 소음으로 규정된다. 폭력과 가난은 이토록 겹겹이 중첩돼 한 꺼풀 벗겨낼 엄두를 못 내게 만든다. 영화 말미의 충격적 파국이 오히려 당연한 수순처럼 보일 지경이다. 복잡한 가족사 탐구를 통해 가장 콤팩트하게 세계와 지역의 단면을 표출해온 주아옹 카니조 감독. ‘포르투갈 6인의 감독전: 극한의 시네아스트들’ 섹션은 그의 대표작 네편을 볼 수 있는 기회다. 국내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 의아할 정도로 에너지가 풍만한 세계다.
<자전거 타는 소년> The kid with Bike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 벨기에, 프랑스, 이탈리아 | 2011년 | 87분 | 월드 시네마
크레딧을 지우고 보자. 이건 다르덴 형제의 영화가 아니라고 치자. 분명 수긍할 것이다. 비전문배우를 고집하던 이들이 세실 드 프랑스 같은 유명 여배우를 기용했고, 일체의 음악을 배제한 소리만을 채집했던 전작들과 달리 영화음악이 사용됐다. 황량한 풍경을 떠올리지 않아도 된다. 계절도 초록이 우거진 여름이다. 무엇보다 믿기지 않는 것은 영화가 희망적이라는 것이다! 자신들이 피했던 모든 걸 조금씩 수정하면서 형제들은 <자전거 타는 소년>을 만들었다.
<자전거 타는 소년>은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소년이 한 여성을 만나고, 그녀가 아무 조건 없이 소년에게 따뜻한 마음을 선사한다는 내용. 지극히 간소한 내용의 드라마로 러닝타임도 87분에 불과하다. 영화의 상당 부분을 잠식하는 이미지는 다르덴의 인장 같은 불안하게 차도를 달리는 자전거 탄 소년의 이미지지만 말했듯이 천사 같은 여성이 이 흔들림을 꽉 붙들어준다. 오죽하면 다르덴 형제가 직접 “이건 현대의 동화다”라고 했을까. 고아 같던 그의 영화에 등장한 ‘엄마’라는 희망적 존재. 아이러니하지만 지금껏 본 다르덴의 가장 다른 모습으로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
<르 아브르> Le Havre
아키 카우리스마키 | 핀란드, 프랑스, 독일 | 2011년 | 93분 | 월드 시네마
<황혼의 빛> 이후 5년 만. 아키 카우리스마키가 그 사이 아무래도 착한 마음씨 기르기 수양을 한 게 분명하다. 93분 러닝타임을 이끌어가는 동력은 그의 명성도, 화려한 스탭도 아닌 무조건적인 선량함이다. 르 아브르는 프랑스의 항구도시로, 이 영화는 그 도시에서 일어나는 한편의 동화를 재구성한다. 가난한 남자는 엄마를 찾기 위해 밀입국한 흑인 소년을 알게 되고, 그를 전적으로 도와주기로 작정한다. 밀입국자를 숨겨주었다고 의심하는 경찰의 눈을 피해야 하는데다, 건강이 악화된 아내 때문에 남자의 상황은 위기일발이다. 아키 카우리스마키는 이 소동극을 통해 유럽에 만연한 이민자 문제와 가난을 특유의 유머와 익살로 조명해낸다. 규정하기 힘든 독특한 캐릭터, 폭소가 아닌 희한한 웃음을 짓게 만드는 에피소드들은 카우리스마키의 전작 그대로다. 주목할 건 이 영화의 결말이다. 칸국제영화제 공개 당시 기자들을 가장 많이 웃게 하고 가장 행복하게 한 문제의 장면이자, 이 정도면 관객 서비스를 위한 감독의 깜짝선물이라 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도무지 현실에선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련의 과정들을 보고 있노라면 르 아브르 자체가 모두 하나의 거대한 세트가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멜랑콜리아> Melancholia
라스 폰 트리에 | 덴마크, 스웨덴, 프랑스, 독일 | 2011년 | 136분 | 월드 시네마
2012년 지구 멸망에 대한 근심이 블록버스터영화로만 환원될 리 없다. 라스 폰 트리에 역시 종말의 날을 자기 방식으로 스크린에 재현한다. <멜랑콜리아>는 행성간의 충돌로 지구 최후의 날을 보내는 자매의 이야기다. 언니(샬롯 갱스부르)의 저택에서 호화로운 결혼 파티를 갖는 저스틴(커스틴 던스트). 설마, 종말을 앞두고, 지구를 구해보겠다고 동분서주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정서를 기대하는 건 모두들 아닐 테고. 맞다. 조금만 보면 탄로나겠지만 심각한 우울증에 걸린 자매 덕분에 파티의 화려함은 온데간데없어진다. 알다시피 결혼식이니 지구 종말이니 그런 것들 모두가 라스 폰 트리에게는 ‘멜랑콜리아’를 설명할 적절한 구실이었는지 모른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결국 영화는 오로지 인간 개개인에게 스며든 파국의 정서를 설파하는 데 온 열정을 쏟아붓는다. 이 경우, 행성간의 충돌로 일어나는 지구 종말의 시각적 재현은 ‘나치 발언’ 파문에 묻혀버리기엔 아까운 이 영화의 백미다. 칸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만 준 게, 폰 트리에가 나치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것에 대한 책임추궁이라는 수군거림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분명한 건 세계 종말에 관한 한 당분간 이보다 더 독특한 시도는 없을 것이란 점이다.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 We Have a Pope
난니 모레티 | 이탈리아, 프랑스 | 2011년 | 102분 | 월드 시네마
이탈리아 정부에 파일이 있다면 난니 모레티는 ‘꽤 골치 아픈’의 카테고리로 분류되어 마땅하다. 전작 <악어>로 베를루스코니 정권에 정치적 맹공격을 가한 것도 모자라 이번엔 감히 가장 신성한 공간인 교황청을 급습했다. 그가 웃음의 메스를 가한 대상은 바로 가톨릭의 정신적 지주인 교황이다. 영화는 새 교황으로 선출된 멜빌이 극도의 불안 증세를 보이며 대중 앞에 나서기를 꺼려하면서 전개되는 이야기다. 교황의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급기야 정신분석 학자가 비밀리에 바티칸으로 불려오는 등 소동이 끊이질 않는다. 뉴스 화면에서나 봤던 교황이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니 들어는 봤나? 이 웃지 못할 상황을 과감하게 실현시킨 건 분명 난니 모레티의 배짱이다. 컨셉만으로 이미 불경죄 하나 추가다. 영화의 도입부, 추기경들이 한자리에 모여 새 교황을 선출하는 자리. 서로 눈치를 보며 자기가 아니길 바라는 상황을 묘사한 장면은 두고두고 아껴봐도 좋을 이 영화의 명장면이다. 전작 <악어>가 가했던 날 선 비판에선 비켜가지만 중반을 넘어서며 신의 대리인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교황의 속내를 탐구하는 건 꽤 감동적인 울림을 선사한다. 지극히 유럽적인 사고방식에서 도출된 극의 결말은 한번 곰곰이 따져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