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겠어요.” <Mr. 아이돌>에 대해 물으면 박재범의 거의 모든 대답은 “모르겠어요”로 시작했다. 처음엔 습관적인 말투인가 싶었다. 하지만 음악과 춤에 대해 물을 때면 이와 같은 표현을 쓰지 않았으니 습관은 아니다. 박재범은 첫 한국영화 출연작에서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나왔을지 전혀 짐작할 수 없다고 했다. 영화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 캐릭터에 집중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연기했는지, 시나리오에 아이돌로서의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반영되었는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고도 했다. 많은 신인배우들이 잘 몰라도 아는 것처럼 인터뷰 답변을 포장하기 바쁘지만 박재범은 이처럼 거침없고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냈다. “완성된 영화를 빨리 보고 싶어요. 그래야 제가 이 영화를 찍으며 어땠는지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함께 인터뷰를 하던 지현우가 “난 첫 영화 가슴 떨려서 못 보겠던데, 괜찮겠어?”라고 농담 섞인 말을 건네도 박재범에겐 첫 영화의 두려움보다 스크린에 새롭게 아로새겨질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은 호기심이 먼저다.
잘 알려졌듯 지난해 박재범은 미국영화 <하이프네이션 3D>의 다크니스 역을 맡아 연기자 신고식을 치렀다. 하지만 이 영화가 제작상의 문제로 개봉 여부가 불투명해지면서 10월 말 개봉하는 <Mr. 아이돌>이 관객에게 선보이는 그의 첫 작품이 될 예정이다. 게다가 <Mr. 아이돌>은 2주 동안의 짧은 촬영으로 마무리지었던 <하이프네이션 3D>와 달리 박재범에게 영화 촬영현장의 진수를 맛보게 해준 작품이다. 그가 연기하는 지오는 영화 속 그룹 ‘미스터 칠드런’의 퍼포먼스를 담당하는 무뚝뚝하고 강렬한 이미지의 인물이다. 대사가 적고 말보다 몸으로 표현해야 하는 장면이 많음에도 미국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박재범에겐 한국어 대사의 뉘앙스와 감정을 익히는 게 쉽지만은 않은 과제였다. “촬영 들어가기 두달 전부터 감독님과 둘이서 대사를 연습했다. 결국 나중에 내 대사가 많이 잘리긴 했는데. (웃음) 적게 나오더라도 창피한 것보다야 잘하는 게 나으니까 정말 열심히 해보자는 마음으로 연습했다.” 배운 건 또 있다. 현장에서 몇달을 보내야 하고 촬영 스케줄에 맞춰 자신의 컨디션을 조절해야 하는, 영화배우의 길고 차분한 호흡을 익히는 일이다. 3~4분 내에 보여줘야 하는 모든 것을 압축해 표현하고, 녹음 또한 정해진 기간 안에 신속하게 끝내는 가수의 짧은 호흡으로 살아왔던 박재범에게 촬영장에서의 3개월은 영원처럼 느껴졌다. 그랬기에 라희찬 감독에게 “정말 힘들다”고, “<Mr. 아이돌>이 마지막 영화가 될 것 같다”며 종종 투정도 부렸단다. 하지만 라희찬 감독의 말을 들으니 3개월 동안 꾹 참고 촬영한 보람이 있는 것 같다. “재범이가 다른 멤버를 기다리며 ‘올까?’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모니터를 보는데 이 친구가 정말 제대로 한국 사람처럼 말하는 게 느껴져서 좋더라.”
박재범의 행보를 관심있게 지켜봐온 관객이라면 <Mr. 아이돌>의 줄거리를 보고 그냥 넘어갈 순 없을 것이다. 미스터 칠드런은 정상의 인기를 누리던 도중 리더 유진(지현우)이 과거에 무심코 던진 말로 논란에 휩싸인다. 언론은 재빨리 기사를 띄워 유진의 탈퇴에 대해 왈가왈부한다. 2년 전 2PM 활동 시절 한국 비하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그에겐 이 영화의 줄거리가 남 일 같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박재범은 “이제 모두 지난 일이고, 아픈 감정은 예전에 다 잊었다”고 말한다. 9월 중순 우승한 뉴욕의 비보이대회 얘기를 하며, 11월에 발매 예정인 정규 앨범을 위해 작사를 하고 곡을 쓰는 일이 정말 즐겁다고 하는 그의 얼굴이 진심으로 밝아 보여서 다행이다. 일순간의 논란으로 등을 돌리는 연예계의 냉정함과 누군가가 생각없이 던졌을 괴로운 말들도 이 청년의 순수를 훼손하지 못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