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
<미츠코, 출산하다> Mitsuko Delivers
이시이 유야 / 일본 / 2011년 / 109분 / 아시아영화의 창
일본 독립영화의 최고 기대주 이시이 유야의 블랙 코미디. 임신했고, 빈털터리이며, 뱃속 아이의 아빠와 헤어진 24살의 미츠코는 자신이 예전에 세들어 살았던 다세대 주택으로 돌아간다. 미츠코는 그 곳에서 침울한 분위기를 바꾸기 시작한다.
프로그래머 TIP 이시이 유야는 독립영화 제작자들이 함께 일하고 싶어하는 1순위 감독으로 일본영화계의 새로운 블루칩이다. 올해만 해도 그는 두 편의 작품을 완성했다. <논두렁길의 댄디>와 <미츠코, 출산하다>가 그것이다. 올해 부산영화제는 <미츠코, 출산하다>를 초청했다. 특유의 유머, 강인한 여성상 등이 이시이 유야의 개성이다. 그는 올해 자신의 주연 여배우와 함께 부산을 찾는다.
<소리없는 여행> Mourning
모르테자 파르샤바프 / 이란 / 2011년 / 84분 / 뉴 커런츠
수수께끼 같은 영화 <소리없는 여행>은 한 쌍의 농아인 부부가 동생의 아들을 테헤란으로 데려가는 긴 여정의 과정에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언니 집을 찾아온 동생 부부는 늦은 밤 격렬한 말다툼을 하게 되고, 말도 없이 아들을 남겨두고 떠나버린다. 농아인 언니 부부는 동생의 아들을 데려다 주는데, 이미 동생부부는 불행한 사고를 당한 뒤이다. 그들은 동생의 아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될까 노심초사한다.
프로그래머 TIP 농아인 부부가 주인공인 특별한 시도의 영화. 모르테자 파르샤바프의 <소리없는 여행>은 매우 도전적인 작품이다. 농아인 부부가 어린 조카를 데리고 동생부부를 찾아가는 로드무비이다. 영화는 농아인 부부의 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자막이 그들의 대화를 대신하고 있지만, 자주 사용되는 롱 숏이 안정적인 영화적 리듬을 만들어내고 있다.
<눈 먼 말을 위한 동냥> Alms for a Blind Horse
거빈더 싱 / 인도 / 2011년 / 112분 / 아시아영화의 창
동명의 소설을 각색한 <눈 먼 말을 위한 동냥>은 인도 펀자브 지역에 거주하는 소수의 소외계층 다리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그들 계층의 무력함이 세대를 거듭하며 한 가정을 절망과 분노, 두려움과 불안 속에 가둬버린 현상을 잘 관찰해 보여주고 있다.
프로그래머 TIP 거빈더 싱은 반드시 눈여겨봐야 할 인물로, 펀자브지방에서 오랜만에 등장한 유망감독이다. <눈 먼 말을 위한 동냥>은 부자가 다 함께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핍박 받는 현실을 그린 작품으로, 영화 전편을 감싸고 있는 암울한 분위기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상용 월드 시네마 프로그래머
<세 자매> Three Sisters
마체이 코와레브스키 / 폴란드 / 2011년 / 85분 / 월드 시네마
실화에 바탕을 둔 싸이코 스릴러. 미친 세 자매와 장애를 가진 남자(세 자매 중 한 명의 들)가 그들의 도심 아파트에서 고문, 학대, 살인이라는 끔찍한 게임을 벌인다. 체홉의 명희곡의 하드코어 버전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인간의 광기와 욕망의 드라마다.
프로그래머 TIP 폴란드 영화 <세 자매>를 만든 마체이 코와레브스키(1969)는 영화감독, 연극감독, 극작가, 시나리오작가이자 배우이다. 크라코브 국립연극학교를 졸업한 후 그는 20여 편의 드라마를 썼다. 코와레브스키는 폴란드에서 미국 TV시트콤 <쓰리 컴퍼니>에 바탕을 둔 유명 TV시리즈인 <로카토르지>의 배우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다른 TV시리즈에도 출연했으며, <쉰들러리스트> <피아니스트> 등 장편영화에도 출연했다. <세 자매>를 보면 중년 여성들의 연기가 번뜩이는데, 아무래도 배우 출신 감독의 능력 덕분이 아닌가 싶다.
<티라노소어> Tyrannosaur
패디 콘시다인 / 영국 / 2011년 / 89분 / 월드 시네마
조셉은 자신의 폭력과 광기로 인해 괴로움에 빠진다. 그의 하루하루는 점점 더 혼란 속으로 빠져들어가면서 파국을 맞이한다. 그런 조셉 앞에 기독교 자선가게에서 일하는 한나가 구원의 여인으로 등장한다. 두 사람은 행복한 일상을 시작하지만 어느 날 한나가 자신의 어두운 비밀을 꺼내어 든다. 배우 출신의 감독이 만들어 낸 빛나는 캐릭터의 영화.
프로그래머 TIP 영국 영화 <티라노소어>를 만든 패디 콘시다인은 국내에서는 주로 ‘패디 코시딘’이라고 소개가 되는데, 콘시다인이 더 정확한 이름이다. <신데렐라맨>과 <본 얼티메이텀>에 출연했다. 한국에서도 화제가 된 영국 코미디 <뜨거운 녀석들>에서 그의 얼굴이 또렷하게 새겨졌으며, <썸머린>에서는 주연을 맡기도 했다. 배우로서도 유망주인 콘시다인은 <티라노소어>에서 화려하지는 않지만 걸출한 배우들을 대거 출연시켰다. <티라노소어> 역시 출중한 캐릭터들이 돋보이는 영화다.
<숨결> Breathing
칼 마르코비치 / 오스트리아 / 2011년 / 93분 / 월드 시네마
살인범으로 유죄 선고를 받고 복역 중인 19세의 로만 코글러는 지방자치제에서 운영하는 장례기관에서 일하며 새로운 삶을 꾸려간다. 그러나, 직장의 동료는 그를 믿지 않는다. 로만은 시신들 중에 자신과 같은 성을 가진 시체가 있는 것을 본 후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궁금증이 일기 시작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프로그래머 TIP 부산영화제에 숨어있는 걸작 <숨결>을 만든 칼 마르코비치(1863) 역시 유명한 배우다. 연극에서 유명한 그는 슈테판 루조비츠키의 2007년작 <카운터페이터>(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수상작이다)에서 주인공 살로몬 소로비치 역을 연기했다. 나찌 정권 아래에서 위폐범 연기를 한 그의 모습은 아마 생생할 것이다. 최근에는 <신원 미상>에 출연했다. <숨결>은 그가 각본을 쓰고 감독한 최초의 장편영화이며, 올해 칸에 소개가 되어 화제를 모았다.
이수원 월드 시네마 프로그래머
<테라페르마> Terraferma
에마누엘레 크리알레세 / 이탈리아 / 2011년 / 88분 / 월드 시네마
<골든 도어>로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크리알레세가 4년 만에 내놓은 올해 최고의 이탈리아 영화. 섬에 사는 필리포는 아버지가 바다에서 실종된 후 어머니와 민박을 운영한다. 할아버지는 고집스럽게 뱃사람으로 남고자 한다. 그들 가족은 리비아 감옥에서 탈출해 도착한 불법이민자를 숨겨준다.
프로그래머 TIP 국내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세계적인 이탈리아 감독 소개. 작가감독 에마누엘레 크리알레세의 최신작이자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수상. 올해 이탈리아영화 최대 화두인 불법이민 문제를 뛰어난 영상미와 함께 보여준다.
<야타스토> Yatasto Hermes PARALLUELO
에르메스 파랄루엘로 / 아르헨티나 / 2011년 / 98분 / 월드 시네마
중남미 영화의 저력을 보여주는 뛰어난 데뷔작. 10대의 리카르도, 베보, 파타는 코르도바 외곽의 ‘빌라 우르퀴자’에서 상자와 폐병 등을 모아 되팔며 살아가는 ‘카레로’들이다. 마차와 말은 그들의 소중한 활동수단이다. 친구이자 동업자인 세 청소년의 삶이 극히 리얼리즘적이고 가슴 아프게 펼쳐진다.
프로그래머 TIP 부에노스아이레스독립영화제(BAFICI)에서 건진 수작. 멀리 아르헨티나에서 온 독립영화로 놀라운 재능을 가진 신인감독의 탄생을 알리는 영화. 소년들의 일상을 관찰자적 시선으로 따라가는 연출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카르트 블랑쉬> Carte Blanche
하이디 스페코냐 / 스위스, 독일 / 2011년 / 91분 / 와이드 앵글
전쟁터의 군인들 못지않게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국제사법재판소 검사들의 도전을 다루는 중견 스위스 다큐멘터리감독의 신작. 2002년 중앙 아프리카 공화국을 뒤흔들었던 대량 학살과 약탈, 강간을 일으킨 장본인 장 피에르 벰바를 법정에 세우려는 검사들의 노력을 담아낸다.
프로그래머 TIP 다큐멘터리의 정신을 제대로 살린 역작. 아프리카 대량학살의 전범을 국제사법재판소 법정에 회부하고자 치열하게 투쟁하는 법조인들의 활약, 아프리카의 실상 등을 4-5년에 걸쳐 힘겹게 찍은 스위스 중견감독의 수작 다큐.
조영정 아시아영화의 창 프로그래머
<청원> Guzaarish
산자이 릴라 반살리 / 인도 / 2011년 / 126분 / 아시아 영화의 창
<블랙>의 산자이 릴라 반살리의 감동 대작. 위대한 마술사인 에단은 전신마비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헌신적인 간호사 소피아의 도움으로 영감을 받으면서 나름대로 행복하게 14년 동안 살아왔다. 그러나 그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하자 에단은 법정, 그리고 소피아에게 자신이 죽을 권리를 요구한다.
프로그래머 TIP <블랙>의 산제이 릴라 반살리 감독의 신작이다. 노년의 선생님과 시각장애를 갖고 있는 젊은 여성간의 사랑을 그렸던 <블랙>처럼, 신작 <청원> 역시 전신마비라는 장애를 지닌 마술사와 아름다운 아내 사이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그린다. 발리우드 최고의 춤꾼으로 불리는 리틱 로샨의 카리스마 넘치는 화려함과 전신마비를 겪고 있는 마술사를 연기하는 진지한 모습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다. 여기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으로 불리는 아이시와이라 레이까지 합세하여 발리우드의 진면목을 보여줄 작품!
<사랑스런 남자> Lovely Man
테디 소리앗마쟈 / 인도네시아 / 2011년 / 76분 / 아시아 영화의 창
인도네시아에서 온 놀랍지만 따뜻한 퀴어시네마. 독실한 무슬림 소녀 카하야는 낡은 한 장의 사진과 주소만을 들고 아빠를 찾기 위해 자카르타에 도착한다. 낯선 도시에서 방황하던 그녀는 결국 아빠를 찾게 되지만, 그녀의 인생을 통째로 뒤흔들만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프로그래머 TIP 이혼으로 인해 헤어졌던 아버지와 딸이 다시 만났다. 독실한 이슬람교인으로 성장한 딸은 아버지와 재회하지만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다. 아버지가 여자인 것이다! 과연 딸은 성장하면서 키워왔던 종교적 신념과 삶의 방식을 극복할 수 있을까? 아버지는 과연 자신을 혐오에 찬 눈으로 바라보는 딸의 편견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진지한 주제이지만 잔잔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사랑스런 가족 영화이다.
<의란정미> Double Fixation
욘판 / 홍콩, 중국 / 1994년 / 111분 / 특별전: 감성의 속삭임
알프레드 히치콕에게 바치는 욘판의 헌사. <현기증>을 기본 틀로 삼고 <이창>과 <나는 결백하다> 등 1950년대 히치콕 영화의 요소들을 가져와 욘판식의 멜로드라마로 완성한다. ‘비밀’이라 불리는 신비한 구슬을 둘러싸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치명적인 매력의 팜므파탈(종초홍)과‘ 비밀’의 사진을 소유한 사진기자(장학우)의 모험과 로맨스를 그린다.
프로그래머 TIP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서스펜스의 대가이지만 동시에 ‘뒤틀린 사랑’에 정점을 찍은 감독이기도 하다. 욘판 감독은 히치콕에게 바치는 이 오마주 작품에서 동물적 이끌림과 미스터리를 버무리며 홍콩판 히치콕식 사랑이야기를 선사한다. <현기증>의 기본 틀에 <이창>과 <나는 결백하다>가 섞여있고, 고전 스릴러로 널리 알려진 <샤레이드>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욕망>까지 슬쩍 끼워넣으며 욘판 감독의 영화사랑까지 동시에 느낄 수 있는 흥미진진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