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거장의 생각을 훔치다 (3)
2011-11-03
글 : 김혜리
글 : 남민영 (객원기자)
사진 : 씨네21 BIFF 데일리 사진팀
감독 욘판·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여러분, 꿈꾸기를 멈추지 마십시오

감독 욘판

홍콩 영화계의 아웃사이더로 불리는 감독 욘판. 그는 누아르와 코미디영화들이 극장을 점령했던 홍콩의 80년대, 감각적인 영상과 섬세한 감수성이 깊게 밴 영화들로 누구도 돌아보지 않던 비주류들의 삶을 살폈다. 주류영화의 등쌀에 밀려 큰 관심을 받지 못했음에도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걸어왔던 감독 욘판. 그는 자신의 마스터클래스에서 삶이 곧 영화이고 영화가 곧 삶이었던 자신의 일대기를 펼쳤다.

영화는 항상 나눌 수 있다는 점이 좋습니다. 감독이 영화에 심어놓은 감정들을 많은 사람과 공유할 수 있거든요. 스타들과도 그 감정들을 나눌 수 있고요. 옆에 앉아 같이 영화를 보는 관객과도 감정을 공유할 수 있겠네요. 저는 아주 어릴 때 영화에 매혹되었습니다. 제가 10살일 때, 그러니까 50년대부터 저는 영화를 매우 좋아했어요. 10살에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마음도 먹었지요. 그때는 대만에 살았는데 경제가 안 좋을 때였어요. 그래서 아이들은 장난감이나 게임으로 즐길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상상력이 곧 장난감이었는데, 상상력을 계속 발휘할 수 있는 통로가 영화였어요. 저는 어린 시절부터 영화감독을 꿈꿨지만 70년대엔 사진작가로 활동했습니다. 영화잡지에서도 일했었죠. 그런 경험을 통해 지금 감독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네요. 저는 미국에서 공부했습니다. 1년 정도 오클라호마대학에서 보내면서 제 오랜 꿈인 영화감독에 도전하고 싶었습니다. 2년째 되던 해 할리우드로 가서 엑스트라 배우로 활동했어요. 그래서 배우로서 처음 영화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할리우드에 그리 오래 있지 않았어요. 할리우드에는 내가 원하는 것이 없었거든요. 그 이후 영국을 비롯한 전세계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동안 많은 예술가들을 만났어요. 그러면서 그들에게 많은 영감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홍콩에는 70년대에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서 저는 홍콩에 프랑스영화를 배급하는 일을 도왔습니다. 하지만 제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영화를 배급하고 알리는 것이 아니라 ‘감독’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만들기 위한 돈이 충분치 않았어요. 돈을 벌어야 했죠. 물질적인 것 외의 어려움도 많았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4년 동안 이런저런 일을 하며 충분한 돈을 모으고 주변의 도움도 받아서 제 첫 영화 <소녀일기>를 만들었습니다. 소녀가 사랑에 빠지는 얘기지만 홍콩 주류영화와는 완전히 다른 얘기였습니다. 그래서 흥행성적은 좋지 않았죠.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두 번째 영화를 만들었어요. 장만옥, 주윤발과 함께한 <로즈>였죠. 1985년에 이 영화로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신동거시대>를 통해서는 조금 독특한 가족영화 분위기의 영화를 만들기도 했었네요. 실비아 장과 장만옥이 출연했고 제 영화 중 홍콩에서 가장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에요. 여러 영화들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제 최고의 영화는 <도색>입니다. 굉장히 화려한 색을 가지고 만든 영화죠. 관객의 취향도 무시했고 플롯도 간단합니다. 그러나 이것들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도색>에 대해서 항상 감사하고 있어요. <도색>이 개봉하고 난 뒤 일부 관객이 말도 안되는 영화라며 <도색>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지요. 여러 해 동안 이미지를 잘 쌓아놓고 왜 이런 영화를 만들었냐는 뜻이었어요. 하지만 <도색>이야말로 저의 예술과 영화 기술이 잘 표현된 영화입니다. <도색> 이후는 제 어린 시절에 대한 영화 <눈물의 왕자>를 만들었습니다. 내 친구 짜우치에가 겪었던 실화이기도 합니다. 그 친구는 대만에서 발생한 테러의 희생자죠. 이 영화는 동화 같으면서도 공포스러운 분위기로 저의 기억에도 남는 영화예요. 제가 여러분에게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은 제 영화 <도색>에도 나오는 대사입니다. 여러분, 꿈꾸기를 멈추지 마십시오. 여기까지가 내 영화이고 내 삶이네요. (웃음)

연령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영화가 멋진 영화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여덟 번째 장편 극영화 <기적>을 들고 부산영화제를 찾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궤적은 동세대 아오야마 신지나 시노자키 마코토 감독과도 사뭇 다르다. 와세다대학 문학부를 졸업한 그는 영화광 출신은커녕 대학 영화동아리도 거치지 않았고 TV다큐멘터리 프로덕션에 입사하기까지 카메라를 만져본 적도 없었다. <환상의 빛> <원더풀 라이프> <디스턴스> <아무도 모른다> <걸어도 걸어도> 등 전작과 새 영화 <기적>에서 그는 죽음과 유년, 과거와 현재, 기억과 카메라를 이용한 재현 및 기록의 문제를 조금씩 다른 각도로 천착해왔다. 구태여 집요한 티를 내지 않으면서 말이다. 디지털 테크놀로지 보급과 더불어 다큐멘터리와 픽션이 영화 사상 전례없는 속도로 서로를 향해 다가서고 있는 21세기 세계영화의 풍경 앞에서 우리는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진작부터 이 영토를 느긋이 일구어왔음을 불현듯 깨닫게 된다. 시나리오, 양식, 연기연출 등 모든 면에서 그는 극영화와 기록영화 사이에 우리가 설정한 경계야말로 허구임을 착실히 확인해왔다. 유행 따위 아랑곳하지 않는 듯하면서도 바닥부터 도발적인 그의 시선과 방법론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영화적 기초를 스튜디오 도제 시스템이 아닌 TV다큐멘터리에서 닦았기 때문일까? 대학에서 전공한 문학의 그림자일까? 이를 육성으로 ‘해명’하는 10월9일 저녁 부산 영화의 전당 아카데미룸 마스터클래스 단상에 오른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뜻밖에도 유년기부터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자신을 영화의 방향으로, 다음에는 영화의 내부로 한뼘씩 끌어당겼던 고전 5편의 마지막 시퀀스를 통해 관객에게 본인의 영화를 구성하는 유전자를 설명했다. 참으로 그다운 우회로의 선택이었다. 다음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1인칭 화법으로 간추린 10월9일 저녁의 강연 ‘나의 인생, 나의 영화’다.

25살까지 카메라를 잡아본 적 없는 저는 동세대 감독에 비해 데뷔가 늦은 셈입니다. 처음에는 이 점이 콤플렉스였지만 여태 신선한 기분으로 영화를 맞이할 수 있는 원인인 듯도 싶어 이젠 괜찮습니다. 오늘 오신 여러분도 나이 따위 생각지 말고 영화를 시작하셨으면 합니다. 전 대학 진학 이전에 극장에도 자주 가는 편이 아니었습니다. 어릴 적 아버지와 종종 이케부쿠로역 근처 극장에서 오리지널 <플러버> 같은 디즈니 영화들을 동시상영으로 본 추억은 있습니다. 처녀 시절 은행원이었던 어머니는 퇴근 뒤 긴자 번화가에서 영화를 보는 멋진 생활을 누리셨는데 결혼 뒤에는 극장에 가기 어려워진 경우였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TV에서 영화를 방영하면 하던 일을 멈추고 저와 함께 영화를 보셨어요. 사실 그리 좋은 감상 환경은 아니었어요. 늘 “저치가 범인이란다. 저 사람은 결국 죽어”라고 미리 알려주셨거든요. (웃음) 어쨌거나 그것이 제가 작품이나 감독 이름보다 조안 폰테인 등 어머니가 좋아했던 배우 이름을 먼저 암기하게 된 경위입니다. 오늘 저와 함께 볼 영화 중에는 그때 제가 어머니와 같이 본 영화도 있습니다.

1. <새> 2. <쉘부르의 우산> 3. <자전거 도둑> 4. <졸업>

첫 번째 클립은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새>입니다. 극중에서 일어난 몇 차례에 걸친 새들의 습격은 결말에 이르러 해결되기는커녕 이유가 규명되지도 않습니다. 궁극적으로 평화를 회복해야 끝나는 통상의 재난영화와 사뭇 다릅니다. 이 영화를 본 이튿날 아침 등굣길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새들을 보고 흠칫하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이 영화가 일상의 의미를 변화시킬 수 있음을 가르쳐준 최초의 경험이었습니다. 최근 들어 뭔가 큰 영향을 미치는 영화가 아니라 일상의 소소한 것들이 달리 보이도록 만드는, 어딘가 신경쓰이게 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런 발상의 원점이 <새>가 아니었나, 문득 돌이켜보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보실 클립은 뮤지컬 <쉘부르의 우산>입니다. 중학생 때 누나가 사온 O.S.T로 먼저 접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결말에서는 남자가 전장에 나가 있는 동안 다른 남자와 결혼한 옛 연인이 역시 다른 여자와 결혼한 남자와 주유소에서 재회해 짧은 안부만 묻고 헤어지죠. 여러분은 이 엔딩이 슬퍼 보이나요, 행복해 보이나요? (청중 다수가 슬프다고 답하자) 왜 슬플까요? 음악 때문일까요? 제 생각에 둘은 아무 일 없었던 듯 각자의 가정으로 돌아갈 것 같습니다. 어떤 의미로는 해피엔딩이죠. 행복해 보이는 결말인데 음악은 비극적인 멜로디라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즉, 어떤 식으로든 연출이 신경쓰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남녀의 대화에서 “지금 행복해?”라는 질문 정도만 제외하면 극히 일상적인 대사인데 음악은 이율배반적이고 배우들의 살짝 떨어지는 시선은 다른 감정을 암시합니다. 이 섬세한 연출을 보고 있노라면 단순한 “따뜻하네”라는 말조차 숨은 의미가 있지 않나 싶어져요. 가족에게 돌아간다는 것은 안온한 결말이지만 옛 연인과 짧은 재회를 끝내고 처자식에게 돌아가 그들과 어울리는 남자의 과도하게 들뜬 분위기, 아이에게 붙여준 옛 애인의 이름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런 복잡한 부분이 이것이 바로 인생이구나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영화를 만들다보면 메시지가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곤란해지곤 하는데 그건 제 영화에 메시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제가 생각하는 메시지가, 영화가 관객에게 주는 메시지가 이처럼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음을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졸업>의 라스트신입니다. 더스틴 호프먼이 결혼식장에서 캐서린 로스를 끌고 도망치는데 저는 “식장에 남겨진 신랑의 심정은 어떨까” 궁금해졌어요. (웃음) 신부를 빼앗긴 남자의 드라마에 더 관심이 갔어요. <쉘부르의 우산>에서 그랬듯 영화가 끝난 이후의 인물들의 삶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배우의 연기에 대해서도 저는 영화가 보여주는 현재를 통해, 그 인물이 어제도 그 자리에서 살았고 내일도 그 자리에서 살 것이라는 일종의 계속성을 보여주는 연기가 좋은 연기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어차피 방대한 세계의 일부를 도려낸 것이니까요. 카메라 앞에서 대단한 무엇을 보여주는 연기도 있지만 제가 정말 좋아하는 건 그런 유의 연기입니다. <기적>에서 외조부모로 분한 기키 기린과 하지스메 이사오의 연기가 그렇습니다.

다음은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자전거 도둑>의 라스트신을 보시죠. 이 영화에 대한 저의 첫인상은 어둡구나, 가 전부였습니다. 자전거를 훔친 아버지가 다시 주인에게 돌려주고 용서받는 단순한 줄거리입니다. 이 영화를 처음 본 10대 후반에는 어린 아들이 등장해 군중으로부터 아버지의 절도가 용서받는 결말이 안일하다고 생각했어요. 로베르토 로셀리니를 좋아할 무렵이었거든요. 그러나 30년이 흘러 이 영화를 다시 보았을 때 아들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용서받았다는 것이 아버지에게 더 고통스러웠을지도 모른다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아들 앞에서 얻어맞는 것보다, 형무소에 가는 것보다, 아들의 존재로 인해 용서받는 것이 더 고통스럽지 않았을까. 지금의 제가 아버지의 심정을 알게 됐기 때문이겠죠. 이처럼 보는 연령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영화가 멋진 영화라고 생각하게 됐고 저 역시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부운>

마지막 함께 볼 영화는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부운>입니다. 10대에 이 영화를 보았을 때는 구로사와 아키라에 비하면 명쾌함이 없어 보였고 다카미네 히데코와 모리 마사유키가 계속 만났다 헤어지는 이야기구나, 정도로 이해했지만 20, 30대를 거치면서는 그 깊이를 알게 됐고 급기야 40대에는 이건 굉장한 영화라는 판단에 이르렀습니다. 영화 내내 두 남녀의 입장은 계속 변합니다. 곤궁해진 남자가 여자에게 돈을 빌리는 장면조차 있습니다. 마지막에는 여자는 일본 남부의 섬에서 폐렴으로 죽는데 이 장면에서 그때까지 책임감이라곤 없어 보였던 남자가 처음으로 눈물을 흘립니다. 페데리코 펠리니의 <길>에서 짐승 같은 남자 잠파노가 젤소미나의 죽음을 알고 인간으로 돌아와 오열하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여기서 저는 이야기의 결말과 별도로 한 인간의 성장을 보았다는 느낌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영화 연출자의 승부처는 바로 이 지점이 아닐까 합니다. 줄거리 이상 흘러넘치는 무엇을 어떻게 표현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이해하게 할 것인가가 영화감독의 과제가 아닐까요?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