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더 이상 돼지로 살지 않기 위하여
2011-11-08
글 : 이영진
<돼지의 왕>이 지닌 잔혹함과 힘을 만나다

흐느낌이 새어나온다. 한 남자가 울고 있다. 그는 나체 상태로 샤워기 앞에 서 있다. 거실에는 그의 아내로 보이는 여자가 목졸린 채 몸을 축 늘어뜨리고 죽어 있다. 방 안은 온통 빨간 딱지투성이다. 아마도 그는 파산했으며 아내를 죽인 뒤 자신 또한 죽으려고 맘먹었던 것 같다. 그때 남자의 이름을 부르는 음산한 목소리가 들린다. 돼지의 탈을 쓴 누군가가 거실에 앉아 남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놀고 먹어도 잘 먹고 잘 사는 그놈들은 애완견 같은 놈들이야. 개 같은 놈들이라고. 그놈들 먹이가 되는 우리는 돼지들이고. 우리는 죽어서 팔다리가 찢겨나가야 가치가 생긴단 말이야. 돼지가 그 정도 가치밖에 없는 동물이냐. 경민아, 너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응?”

도덕을 질병이라고 치부했던 철학자의 말을 빌리자면 경민이라는 남자는 환각 속에서 이렇게 생각하는 듯하다. “만일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너의 잘못이다. 만일 내가 인생에서 실패한다면 그것은 너의 잘못이다. 그리고 만일 그대가 그대의 인생에서 실패한다면 그것 또한 그대의 잘못이다. 그대의 불행들과 나의 불행들은 똑같이 그대의 잘못이다.” 환청은 죽음을 실행하려던 경민의 마음을 잠시 돌려놓는다. 경민은 죽음을 미뤄두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전화를 받은 누군가가 경민의 불행을 빚어낸 장본인일까. <돼지의 왕>은 원한과 분노의 복수극이다. 경민의 복수가 어디로 향하는지 깨닫게 될 때 우리는 심장을 둔기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착하게 살면 될까, 아니야”의 세계로부터

종석(양익준)은 글로 ‘빌어먹고’ 산다. 소설을 쓰고 싶지만 대필작가로 살고 있다. 대필작가로서의 입지도 변변찮다. 그가 밥벌이로 쓰는 자서전은 출판사에서 매번 퇴짜를 맞는다. 열패감에 휩싸이면 종석은 이성을 잃고 여자친구인 명미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그렇게 살아가는 종석이 어느 날 경민(오정세)의 전화를 받는다. 불쑥 종석을 찾아온 경민은 예전의 ‘울보 경민’이 아니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경민은 회사 대표라고 했다. 경민은 종석에게 철이(김혜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술잔을 앞에 두고 종석과 경민은 중학교 시절의 기억을 번갈아 하나씩 꺼내놓는데, 그들이 안주삼는 과거는 끔찍한 폭력의 기억들뿐이다.

15년 전, 어린 종석(김꽃비)과 어린 경민(박희본)은 돼지들이었다. 관리당하고, 사육당하는 돼지들이었다. 그들 위엔 무슨 짓을 해도 용서받는 강민(조영빈) 패거리가 있었다. 경민의 아랫도리는 그들의 장난감이었다. 그들이 아랫도리를 주물럭대도 경민은 “아무렇지도 않은 채 어색하게 웃었”다. 그것이야말로 경민이 자존심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종석은 그런 경민이 싫었다. 하지만 종석 역시 경민처럼 그저 밑바닥 돼지들에 불과했다. 누나의 비싼 청바지를 학교에 입고 간 날, 강민 패거리는 종석의 청바지를 찢었다. 호모라고 놀렸다. 하지만 종석은 그들에게 욕 한마디 못했다. 강민 패거리 위엔 옆반의 송석응이, 송석응 뒤엔 완력 좋은 선배들이 있다는 사실을 종석은 모르지 않았다.

<돼지의 왕>은 후일담이다. 경민과 종석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친구 철이에 대한 후일담이다. 경민과 종석이 기억하는 첫 번째 철이는 영웅으로서의 철이다. “그전까지 교실에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철이는 영웅으로 경민과 종석 앞에 등장했다. 학생회장 선거 유세 때 밀린 숙제 하다가 강민 패거리에 걸려 경민이 폭행당하던 날, 철이는 두 주먹으로 강민의 얼굴을 곤죽으로 만든다. “걔네들 싫지. 그럼 나랑 놀자. 그럼 앞으로 절대 울 일 없을 거야”라고 말을 걸어오는 철이는 경민에게 수호신이었다. 과거를 곱씹으면서 경민은 “난 그때 철이가 뭔가를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앞으로 3년은 지금까지 살아왔던 거랑 다르게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거든”이라고 말한다.

경민과 종석의 기억 속 두 번째 철이는 괴물이다. 철이는 영웅 대신 괴물이 되고 싶어 했다. 경민과 종석을 자신의 아지트인 빈집으로 데려간 철이는 그들에게 악인이 되는 법을 가르친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건 악이지. 착하게 살면 될까. 아니야. 힘을 가지려면 악해져야 해. 계속 병신처럼 살고 싶지 않으면 괴물이 돼야 해.” 철이는 종석과 경민에게 칼로 고양이를 난도질하라고 강요하기도 하고, 두 사람이 보는 앞에서 강민 패거리를 허리띠로 매질하기도 한다. 경민은 그 일이 있은 뒤 철이를 멀리하며 강민 패거리에 기죽지 않는 전학생 찬영에게 이끌리고, 철이 곁에 남은 종석 역시 철이에게서 안도감 대신 두려움을 느낀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연상호 감독의 첫 장편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은 학교폭력을 소재로 삼았다. 종석의 게스 청바지, 찬영의 오줌 세례 등과 같은 에피소드들은 연상호 감독이 학창 시절 직접 곁에서 본 경험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데, 이런 에피소드들에서 <친구> <품행제로> <말죽거리 잔혹사> 등과 같은 비슷한 소재의 영화들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별 볼일 없는 녀석이 ‘짠’ 하고 나타나 이미 짜여진 폭력의 위계를 뒤흔드는 식의 내러티브 역시 유사하다. 교실을 빌려 권력과 폭력의 상관관계를 따져보려 한다는 점에서는 전상국의 <우상의 눈물>(1980)이나 영화로도 제작된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87) 등의 소설이 연상되기도 한다.

권력 혹은 폭력에 대한 관심은 연상호 감독에겐 낯설지 않다. 전작 <지옥: 두개의 삶>(2004)은 갑자기 죽음을 선고받은 남자와 여자가 주인공이다. 그들은 신이 정해놓은 룰을 어기고 도망치려 하지만 결국 신의 법에 따라 선고받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결국 신이 정한 ‘선과 악’ 게임판 위에 놓인 하찮은 말들에 불과함을 뒤늦게 깨닫는다. 최규석 작가가 원안을 쓰고 연상호 감독이 연출한 단편애니메이션 <사랑은 단백질>(2008)은 세명의 자취생이 통닭 한 마리를 배달시켜 먹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황당하고 우스꽝스러운 상황으로 도배되어 있지만 그 안을 뜯어보면 폭력의 씨앗들이 촘촘히 박혀 있고, 권력의 줄기들이 어지럽게 들어서 있다.

연상호 감독은 악몽을 꾸고, 악몽은 언제나 그를 깨운다. <지옥: 두개의 삶>은 “누구한테 쫓기는데 잡혀서도 안될 것 같고 도망치면 상대의 화를 돋울 것 같고 그래서 어쩌지 못하는” 꿈에서 비롯됐다. <돼지의 왕>은 “누군가에게 복수를 하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에 처한” 꿈에서 시작됐다. 악몽이 각성으로 그치지 않고, 그의 창작욕까지 불지르는 건 악몽이 현실이고, 현실이 악몽이어서다. 그런 그가 폭력으로 점철된 과거의 기억을 낭만이나 향수라는 이름으로 뭉개버리거나 뒤덮을 리 없다. “어른이 됐을 때 지금을 생각하면서 ‘야 그때 참 좋았지 않냐. 그때가 그립다’ 이딴 소리를 할까 너무 무섭다.” 극중 철이의 말은 연상호 감독의 말이기도 하다.

이쯤에서 다시 종석과 경민의 악몽으로 되돌아가보자. 두 사람이 털어놓지 않은, 세 번째 철이가 있다. <돼지의 왕>은 경민과 종석의 시점으로 철이에 대한 기억을 번갈아 토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두 사람의 기억에 의지하지 않고, <돼지의 왕>은 철이가 처한 상황을 설명한다. 그 설명 안에서 철이는 영웅도, 괴물도 아니다. 영웅은 누구와 싸우더라도 아무런 해를 입지 않고 살아남아야 한다. 괴물은 어떤 해를 당하더라도 살아남아야 한다. 하지만 철이는 결국 그렇게 하지 못한다. “돼지는 살 찌우는 것이 행복이라고 믿지만 그 살들은 그들의 것이 아니야. 돼지가 될 순 없어”라고 철이는 말하지만 철이는 자신이 돼지임을 잘 알고 있다. 철이에겐 ‘돼지들의 왕’이라는 왕관만이 허락될 뿐이다.

철이는 고작해야 ‘돼지들의 왕’으로 불려야 할까. 경민은 왜 기어코 종석의 팔을 잡아끌고 그들이 다녔던 학교의 옥상으로 끌고 올라가는 것일까. 굉장히 빠른 속도로 과거를 뒤쫓다가 어느 순간 그들이 현실로 돌아왔을 때, 보는 이들은 벼랑의 끝에서 발을 헛디딘 듯한 철렁함을 맛보게 될지도 모른다. 15년 전 그곳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가. 분명한 건 경민과 종석이가 기대하는 세 번째 철이는 ‘돼지의 왕’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돼지의 왕>의 잔혹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칼로 오려낸 듯한 날카로운 삽화체의 인물들도, 비명과 절규의 강도를 높이는 섬뜩한 사건들도 관객 앞에 던져진 잔혹한 엔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울음에서 울음으로…

<돼지의 왕>이 다루는 진짜 갈등은 강자와 약자의 대립이 아니라 약자와 약자의 다툼이다. 먹이사슬 안에서 불안과 공포의 하중을 가장 많이 견뎌내야 하는 이들은 맨 아래 위치한 계급이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전략을 수시로 바꿔야 한다. 그들은 동반자가 아니라 경쟁자다. 좋은 리더십을 갖춘 것처럼 보이는 찬영을 대하는 방식을 보라. 철이가 학교를 떠난 뒤 린치를 당하는 경민과 종석의 반응을 보라. 둘은 상대를 의식하며 생존을 위해 매번 서로 다른 선택을 한다. 학교에서 쫓겨난 철이가 학교로 돌아오기 위해 옥상 위에 섰던 문제의 그날도, 경민과 종석은 같은 자리에서 그를 바라보지 않았다.

이제 털어놓을 때가 됐다. 종석과 경민의 세 번째 철이는 희생양이다. 철이가 원치 않는 세 번째 철이를 완성하기 위해 종석과 경민이 공모한다. 그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성스러운 희생양으로서 철이를 폭력의 제단으로 내모는 순간, 우리의 뇌리엔 멀지 않은 역사의 풍경들이 펼쳐질 것이다. 한때는 영웅으로 여겨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괴물로 불렸으며, 결국엔 희생양으로 사라졌던 이들의 얼굴을 기억하는가. 그때 우리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과거를 자책하는 듯 보이는 경민은 실은 복수를 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거를 후회하는 듯 보이는 종석은 실은 안심하는 것은 아닐까. 의심의 끝에서 폭력의 진짜 가해자가 누구인지 밝혀진다.

“이곳은 얼음처럼 차가운 아스팔트와 그보다 더 차가운 육신이 뒹구는… 세상이다.” <돼지의 왕>의 마지막에 흘러나오는 내레이션을 엘리아스 카네티(<군중과 권력>)의 말로 번역해보자. “살아남는 순간은 권력의 순간이다. 죽음을 목격하며 느꼈던 공포감이 사라지고 서서히 만족감이 생겨나게 되는데, 그것은 죽은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자는 서 있는데, 죽은 사람은 땅바닥에 누워 있다. 마치 격투가 있었고 자기가 다른 사람을 쓰러뜨린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살아남기 위한 투쟁에서 모든 인간은 타인의 적이며, 어떠한 비통함도 이같은 본질적인 승리에 비한다면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 <돼지의 왕>은 그러니까 살아남은 돼지들에 대한 저주의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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