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 다다쇼는 연상호 감독이 만든 애니메이션 제작사인데, 사업자 등록증만 달랑 가진 유령회사다. 연상호 감독은 <돼지의 왕>을 제작하면서 스튜디오 다다쇼를 폐쇄했다. 한달에 인건비만 1천만원이 넘는 상황에서 더이상 스튜디오를 유지할 재간이 없었다. 인건비를 확보하려면 외주 일을 해야 하고, 외주 일을 하면 작업에 집중할 수 없고, 결국 그는 함께 작업했던 동료들을 떠나보내야 했다.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 제작사 문을 닫아야만 하는 요상한 상황. “스튜디오를 접으면서 한 스탭이 그랬다. 스탭들의 출퇴근 시간 보장, 월급제 등을 시행한 것이 자기만족 아니었냐고. 더 착취를 해서라도 스튜디오를 더 길게 운영하는 게 맞는 것 아니냐고.” 연상호 감독의 말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도 <마녀배달부 키키> 이전까지는 직원들에게 월급을 챙겨주지 못했다면서, 그는 스튜디오를 언젠가 다시 차리겠지만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문제라고 덧붙인다. 장편애니메이션 개봉이 그 자체로 화제가 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스튜디오는 절실하지만 아직 요원한 꿈이다.
모두가 스튜디오를 떠났다면 <돼지의 왕>은 좌초됐을 것이다. 연상호 감독의 우군 중 첫손에 꼽아야 할 이는 만화가 최규석이다. <돼지의 왕>의 철이 캐릭터를 그려낸 최규석 작가는 연상호 감독이 아이디어를 맨 먼저 풀어놓는 동료다. “내 아이디어를 논리적으로 풀어주는 친구다. 작업하는 것보다 책 보는 것을 더 좋아하는 친구라서 아이템을 흘리면 알아서 취재까지 해준다.” 연상호 감독의 차기작 역시 최규석 작가가 참여하고 있다. 김창수 원화감독 역시 연상호 감독이 잊지 못하는 선배다. <사랑은 단백질> 때 만난 김창수 원화감독은 스튜디오 다다쇼의 해체 소식을 듣고서도 “묵묵히 컷 작업을 했고”, 회사에서 나간 뒤 한달 동안 자신에게 주어진 컷을 완성하는 열의를 보여줬다. 프랑스 베르사유공립미술학교에서 컴퓨터그래픽을 전공한 ‘유학파’ 우제근 미술감독도 빼놓을 수 없는 스탭이다. 연상호 감독에 따르면, “대개 배경미술은 기존의 소스로 짜깁기하는데” 우 감독은 직접 그린 그림으로 깊이있는 공간을 만들어줬다. 그리고 연상호 감독의 동생이자 상명대 서양화과 후배이기도 한 연찬흠 기술감독. 원래 게임에 심취해 있었던 연찬흠 기술감독은 심각할 정도로 건강이 나빠 형 곁에 머물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콘티부터 마무리까지 총괄하는” 일꾼이다.
사람만 있다고 다 되는 게 아니다. 제작환경에 적합한 솔루션이 필요하다. 연상호 감독이 <지옥: 두개의 삶>을 혼자서 제작할 수 있었던 건 로토스코핑 덕분이었다. 로토스코핑이란 “실사영상을 디지털 캠 등으로 찍은 뒤 컴퓨터그래픽으로 라인을 만들어 이를 바탕으로 원화와 동화를 만드는” 방식이다. <돼지의 왕>에선 ‘3D 더미애니메이션’ 방식을 썼다. 이는 “전체의 레이아웃과 애니메이팅을 3D로 잡은 다음에 그것을 바탕으로 2D 작화를 하는” 방법이다. 다만 “옷 구김이나 바람의 방향, 연기 등과 같은 디테일한 연출”이 필요할 때는 2D 방식으로 처리했다. 연상호 감독은 “적은 예산과 촉박한 시간에서도 결과물들이 적정 퀄리티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서 3D 더미애니메이션 방식은 아주 유용했다”고 말한다. 청강문화산업대학 애니메이션과 학생들과 함께 5만여장의 작화 작업을 5개월 내에 끝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3D 더미애니메이션 방식이라는 솔루션이 있었다 .
<돼지의 왕>은 이 대신 잇몸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언제까지 잇몸으로 대신할 순 없다. 열악한 제작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는 것일까. 연상호 감독은 한해 5편의 저예산 장편애니메이션이 나와야만 애니메이션이 문화적으로 인정받고 보호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일정한 수의 작품이 관객과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1년에 1편 만들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5편씩이나 가능하겠는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글로벌 프로젝트에만 목매달면 안된다. 글로벌 프로젝트 1편만 줄여도 5억∼6억원짜리 저예산 장편애니메이션 5편은 만들 수 있다. <돼지의 왕>처럼 1억5천만원을 갖고서 장편을 만들려고 하는 이들은 없지만, 예산이 5억원 정도 되면 좋은 장편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는 인력은 한국에 많다.” 연상호 감독은 “크리에이티브는 있지만 산업이 없다는 것이 한국 애니메이션의 문제”라고 말한다. <소중한 날의 꿈> <마당을 나온 암탉> 등 올해를 두고 한국 애니메이션의 전환점이라고 부르지만, 진정한 도약을 이루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