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사랑받고 싶어 미움받고 싶어
2011-11-17
글 : 김도훈
변태 감독, 소노 시온의 모든 것

일본영화의 변태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미이케 다카시는 지루해졌고 구로사와 기요시는 휴식 중이며 이시이 다카시는 지나치게 나이들었다. 지금 일본 영화계는 내수용 블록버스터와 나긋나긋한 슬로 무비만이 존재하는 듯하다. 그러나 변태는 아직 죽지 않았다. 그걸 확인하고 싶다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사랑의 죄>라는 제목으로 공개된 소노 시온 감독의 <길티 오브 로맨스: 욕정의 미스터리>(11월17일 개봉)를 보아야 한다. 지금 일본의 가장 근사한 변태 소노 시온은 일본 영화계의 미래를 짊어진 재능 중 하나로 진화하고 있다. 대체 어떻게?

소노 시온은 변태다. 잠깐. 사실 일본섬에서 ‘변태 감독’이라는 칭호를 하사받을 예술가가 어디 한두명이겠는가. 1960년대 핑크영화(혹은 로망 포르노) 시대 이후, 일본에서는 와카마쓰 고지와 오시마 나기사 같은 훌륭한 예술적 변태들이 쏟아져나왔다. 거기서 끝이었던가. 핑크영화의 유구한 전통은 이후 구로사와 기요시, 미이케 다카시 등 훌륭한 후배들에게 이어졌다. 일본영화의 한켠에 오즈 야스지로 대표되는 양(陽)의 예술가들이 있다면 다른 한켠에는 V시네마(비디오로만 출시되는 저예산 독립영화) 출신의 음(陰)의 예술가들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일본영화의 양과 음은 동시에 죽었다. 21세기 일본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은 대체 누가 있는가. 80년대에는 소마이 신지, 이시이 소고, 기타노 다케시가 있었다. 90년대에는 구로사와 기요시, 미이케 다카시, 이와이 순지가 있었다. 지금은? 단번에 이름을 내놓기가 쉽지 않다. 대중영화는 또 어떤가. 지금 일본에 남은 두 장르는 메이저의 ‘일본 내수용 블록버스터’와 독립영화계의 팬시상품 ‘슬로 무비’밖에 없는 것처럼 보일 때가 종종 있다. 물론 희망은 있게 마련이다. 지금 일본 영화계에서 두명의 이름을 꼽아야만 한다면 하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다른 하나는 소노 시온이 되어야 마땅하다. 전자가 21세기 일본영화의 양(陽)을 대변한다면 후자는 음(陰)을 대변한다고 봐도 좋다.

<자살클럽>

문제적 데뷔작 <자살클럽>

소노 시온은 여전히 한국 관객에게는 익숙한 이름이 아니다. 그의 영화 중 정식으로 개봉한 작품은 <노리코의 식탁>(2005), <기묘한 서커스>(2005), <헤저드>(2007)와 곧 개봉할 <길티 오브 로맨스: 욕정의 미스터리>(이하 <길티 오브 로맨스>, 2011)가 전부다. 일본에서 소노 시온은 감독인 동시에 일종의 멀티 예술가로 유명한 남자다. 그는 영화를 만들고 시를 쓰고 패션쇼를 연출하며 사진작가 아라키 노부요시 같은 남자들과 친분을 교류한다. 일종의 문화적 힙스터라고 해야 할까. 일단 소노 시온의 원류가 영화가 아니라는 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그는 1978년 17살에 홀로 도쿄에 상륙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천재 시인으로 활약하던 그는 1985년 호세이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했고, 8mm영화 <나는 소노 시온이다!>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화나거나 슬플 때는 손글씨가 달라진다. 하지만 인쇄된 책에서는 그 차이점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시를 쓸 때 느낀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도록 하기 위해서는, 일단 나의 시를 카메라로 촬영해야만 했다.”

소노 시온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건 2002년작 <자살클럽>부터다. <자살클럽>은 센세이셔널한 영화였다. 특히 신주쿠 전철역에서 54명의 여고생이 손에 손을 잡고 달려드는 전철로 뛰어들어 자살하는 오프닝 시퀀스는 부천영화제를 통해 공개되자마자 한국 영화광 사이에서도 열광을 불러일으켰다. 버블경제 이후 끝없이 경제, 문화적으로 침체기에 빠져든 일본에서는 자살이 신드롬처럼 번져나갔다. 소노 시온은 자살의 원인을 일본인이 자기 자신, 그리고 타인과 맺고 있는 관계가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자살클럽>은 일본사회와 영화계를 향한 그의 문제제기였다.

형식적으로 보자면 소노 시온의 영화들은 B무비와 V시네마의 어떤 결합에 가깝다. 미국 B무비의 잔혹극으로서의 전통과 일본 V시네마의 노골적인 성적 기운은 소노 시온의 영화에 극단적으로 버무려져 있다. 그는 “버클리에서 공부하던 유학 시절에 비로소 B무비에 빠졌다”고 말한다. “나는 전형적인 영화학교 학생이었다. 트뤼포, 고다르, 누벨바그를 공부하고 달달 외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 버클리에서, 일본에서 보지 못했던 저질스럽고 추접스러운 영화들을 볼 기회가 생겼다. 그거야말로 내가 원하는 영화라는 걸 알아차린 순간, 오로지 그것만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했다.” B무비가 미국의 영향력 아래서 다급하게 습득된 요소라면 V시네마의 전통은 소노 시온의 아랫도리 깊은 곳에 오랫동안 축적되어온 요소다. “닛카쓰의 로망 포르노는 사춘기의 나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로망 포르노의 본질은 아주 자연스럽게 내 속에 자리잡고 있다.” 두 영향력을 처음으로 스크린에 합사해낸 결과가 바로 <자살클럽>이었다. 그리고 시작부터 소노 시온의 꽤 두드러지는 반항아 정신이 태동했다. “나는 사람들이 혐오하는 데뷔작을 만들고 싶었다. 그들이 즐길 만한 영화 따위를 만들 생각이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자살클럽> 같은 영화를 만들고 있었다면 나는 아마도 로맨스영화를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저 다른 사람들과 반대되는 일을 하는 게 즐겁다.”

<노리코의 식탁>

그런데 <자살클럽> 이후에 내놓은 <기묘한 서커스> <노리코의 식탁>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기묘한 서커스>는 근친상간과 신체훼손의 미학을 끝까지 밀어붙인 데이비드 린치 영화의 아류 같았고, <자살클럽>의 속편 격인 <노리코의 식탁>은 보다 조용한 <자살클럽>의 동어반복처럼 보이는 데가 있었다. 무엇보다 <자살클럽> 이후의 영화들은 충분히 영화적이지가 않았다. 여전히 소노 시온은 시인이자 예술가로서의 자아를 실험하는 중이었다. 물론 두 영화가 소노 시온이 지속적으로 탐구하게 될 몇 가지 소재와 주제의식(가족의 붕괴와 사이비 종교의 창궐)의 연장선이라는 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노리코의 식탁>을 내놓을 당시 소노 시온은 “일본사회의 어디에서건 불안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일부러 영화에서 최악의 상황을 그리려는 건 아니다. 다만 곤란한 상황에 빠진 인물을 밑바닥까지 끌어내렸을 때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는 가족이라는 소사회의 극단적인 붕괴를 통해 일본사회의 썩은 웅덩이를 탐색하고, 관객에게 이렇게 묻는다. 서로를 믿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이후에도 우리는 삶을 다시 건축할 수 있을 것인가? 문제는 그걸 제대로 탐구하기 위한 영화적 언어를 소노 시온이 아직 찾지 못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차가운 열대어>

광폭한 실험의 장인

소노 시온이 연출자로서 한 단계 진화를 보여준 영화는 237분짜리 <러브 익스포져>(2008)다. 영화의 이야기를 최대한 간단하게 축약해보자. 주인공 청년 유의 가톨릭 신부 아버지는 사랑하던 여자가 떠나자 아들에게 그날 지은 죄를 고해하도록 만든다. 유는 매일매일 여러 가지 죄를 짓다가 여성들의 치마 속을 도촬하는 대가로 거듭난다. 그러다가 유는 이상형의 여자 요코를 만나고, 둘은 가족이 되어버리고, 가족은 모두 ‘제로교회’라는 사이비 종교의 먹이가 되고 만다. 소노 시온은 전작들에서 조심스레 탐색해온 모든 주제들을 237분 속에 버무려넣고 영화적 세계를 광폭하게 실험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소노 시온이 마침내 하나의 영화를 장악하는 법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어딘지 모르게 싼티나는 재기와 일본 만화의 영향력을 압도적으로 흡수한 유머감각은 <러브 익스포져>에서 폭렬적인 폭력, 섹스와 마구잡이로 뒤섞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브 익스포져>의 이야기와 영상은 단단하게 영화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이는 소노 시온이 자신만의 영화적인 리듬을 찾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러브 익스포져> 이후, 소노 시온의 영화는 결코 리듬을 늦추거나 멈춰 서는 일이 없다. 이전의 소노 시온 영화가 일종의 예술적 자위행위였다면 <러브 익스포져>부터 그의 영화는 마침내 ‘보여주기 위한 대중예술’로서의 지위를 획득한 것 같다.

<러브 익스포져>

또한 소노 시온은 <러브 익스포져>에서 사이비 종교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본격적으로 파고든다. “일본에서 모든 종류의 관계는 산산이 부서지고 있다. 가족도 마찬가지다. 부모도 믿을 수 없다. 그렇다면 대체 누굴 믿을 것인가. 당신은 뭔가 믿을 것이 필요하고, 그 틈을 사이비 종교가 비집고 들어온다.” <자살클럽>과 <노리코의 식탁>의 자살클럽, <러브 익스포져>의 제로교회는 물론이거니와 2009년작인 <차가운 열대어>의 살인마가 경영하는 거대한 열대어 가게나 2011년 신작 <길티 오브 로맨스>의 가족 역시 거의 유사 사이비 종교에 가깝다. 소노 시온은 각 영화의 사이비 종교를 가족주의와 종교의 극단적인 혼성물처럼 그려낸다. 수많은 문제를 짊어진 캐릭터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최후의 방법으로 사이비 종교를 선택하고, 그 속에서 무너지거나, 빠져나와 뭔가 새로운 미래를 보거나, 혹은 파멸한다. 그런데 종종 소노 시온은 종잡을 수 없다. <러브 익스포져>가 이전의 소노 시온 영화와 감정적으로 가장 다른 점은 파멸의 종착역에서 거의 감동적일 정도의 희망을 건져올리는 엔딩이었다. 그 희망의 이름은 낯간지럽지만 아름답게도 ‘사랑’이었다. 그런데 뒤이어 만든 스릴러 <차가운 열대어>에서 소노 시온은 다시 방향을 어둠 속으로 틀어버린다. <차가운 열대어>는 끔찍한 실제 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이며, 소노 시온 영화 역사상 가장 잔혹하고 희망없는 괴물이다.

<차가운 열대어>의 차가운 정조는 <길티 오브 로맨스>로 이어진다. 이 괴이한 일종의 로망 포르노-스릴러는 <러브 익스포져> <차가운 열대어>에 이어지는 ‘증오 3부작’의 마지막 영화다. 도쿄 중심가 시부야의 싸구려 러브모텔 거리에서 절단된 여자의 시체 조각들이 마네킹과 조립되어 있는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영화는 곧 네개로 분리된 챕터를 통해 살인사건의 과거와 현재를 추적한다. 첫 번째 챕터는 ‘이즈미’다. 유명 소설가의 아내인 이즈미는 결벽증적인 남편에게 속박되어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인형의 집에서 살아간다. 돌파구를 찾아보고자 그녀는 남편 몰래 모델 일을 시작하는데, 모델 일은 점점 AV 촬영으로 변질되어간다. 두 번째 챕터는 ‘성’(成)이다. 이즈미는 낮에는 대학의 문학 교수로 일하고 밤에는 몸 파는 여자로 일하는 미츠코를 만난 뒤 기이하고 파괴적인 섹스의 세계에 빠져든다. 세 번째 챕터 ‘요시다’는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여형사 요시다의 이야기고, 마지막 챕터 ‘매혹의 클럽’에서는 주인공들이 결국 파국으로 달려간다(칸영화제에서는 143분짜리 버전으로 공개됐으나 부산국제영화제와 개봉판은 109분이다. 특히 여형사 요시다의 이야기가 축약된 것으로 알려졌다).

<길티 오브 로맨스>, 소노 시온의 모든 것

<길티 오브 로맨스>에는 소노 시온의 모든 것이 있다. 억압적인 가족으로부터의 탈출을 원하는 사람들, 그리고 모든 것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극단적인 행위를 저지르고 마는 사람들. 그런데 어떤 면에서 <길티 오브 로맨스>는 소노 시온의 가장 로맨틱한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건 이 영화가 극단적인 증오의 근원이 극단적인 사랑이라는 걸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노 시온 역시 “증오는 사랑을 포함하고 있는 감정”이라고 말한다. “증오는 사랑의 본질이다. 이를테면 악마주의자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더 강렬하게 신을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신을 더욱 증오하는 것이다. <길티 오브 로맨스>는 아주 개인적인 영화이며, 사랑을 향한 나의 고백이다.” <길티 오브 로맨스>에서 소노 시온은 이전작들에서 사이비 종교를 다루는 것처럼 섹스를 그려낸다. 재미있는 건 이러한 특징이 소노 시온을 와카마쓰 고지 같은 60년대 로망 포르노의 선배들과 구분짓는 선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길티 오브 로맨스>에서 섹스는 (선배들의 영화와 달리) 무정부주의의 육체적 표현이 아니다. 오히려 따라야 할 규칙이 있는 종교적 행위에 가깝다. 그는 “무정부주의 철학을 설법하기 위해 만들어진 섹스영화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소노 시온의 영화는 어떤 면에서는 선배들보다 훨씬 개인적인 영화에 가까운 것일 수도 있다. 그는 파멸과 붕괴에 집착하지만 상처받은 개인의 문제, 그들의 마음속 공허에 보다 집요하게 파고든다. “나는 상처받은 인간이야말로 더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인간이라고 여긴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자유롭다. 만약 그들이 불안정해 보인다면 그건 그들이 지금도 자유를 찾아헤매는 중이기 때문이다.” 미래가 없는 일본의 징후를 탐색하면서도 소노 시온은 어쨌거나 인간을 사랑한다. 가족과 사회와 종교의 지옥 속에서 무너져내리는 인간을 다루면서도 사랑을 제창하는 그의 영화는 일종의 모순인 걸까?

소노 시온의 사랑이 모순이 아니라는 가장 명료한 증거는 올해 부산영화제에서 공개된 신작 <두더지>(2011)다. <이나중 탁구부>의 만화가 후루야 미노루의 동명 원작을 각색한 <두더지>는 중학생 스미다와 차자와가 흔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된 가족을 극복하고 한줌의 미래를 건져올리는 과정을 그리는 영화다. 그런데 원작과 달리 소노 시온은 3·11 동북부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에서 촬영한 장면들을 영화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삽입한다. 자연스럽게 <두더지>는 아예 국가와 사회제도가 통째로 무너져버린 폐허 속에서도 어쨌거나 희망을 찾아야 한다는 절규로 막을 내리고, 소노 시온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앞으로 포스트 3·11 시대의 일본영화를 이야기하게 된다면 그 시작은 분명 <두더지>가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두더지>

“나는 잔인한 영화감독이다”

<노리코의 식탁>을 만들었을 당시 소노 시온은 말했다. “나는 잔인한 영화감독이다. 사랑받고 싶다. 그러나 나는 전세계로부터 미움받고 싶다는 열망도 갖고 있다. 어떻든 간에 나는 변태적인 놈이다.” 또한 그는 일본과 일본 바깥의 모든 사람이 그토록 존경해 마지않는, 그리고 동세대 작가인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끝없이 경배를 바치는 오즈 야스지로에 대한 적의를 자주 드러냈다. “오즈 야스지로는 일본영화의 역사에서 지나치게 신격화됐다. 일본영화의 역사는 우리가 반오즈주의자로 돌아서지 않는 이상 앞으로 나아가거나 새롭게 써나갈 수 없다.” 이처럼 소노 시온은 태생적으로 주류에 속할 수 없는 감독이며, 스스로 일본영화의 음(陰)을 자처하며 영화를 만들어왔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길티 오브 로맨스>가 소노 시온이 하나의 시기를 접는 영화가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길티 오브 로맨스>로 그는 ‘증오 3부작’을 마무리했고, 그의 영화사상 가장 희망적인 에너지로 가득한(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수입도 되지 못한) <두더지>를 만들었다. 어쩌면 소노 시온은 <길티 오브 로맨스>와 <두더지> 이후 다른 모양새로 변태할지도 모른다. 심지어 주류의 반열에 오를지도 모른다. 혹은 다시 한번 똑같은 길로 빠져들지도 모른다. “나는 변태다. 변태는 아메바나 물 같은 유동체다. 마치 비가 바다나 증기로 변하듯이 우리는 갑작스럽게 변하곤 한다.” 그러니까 중요한 사실은 이거다. 그는 어떻게 진화하건 간에 정말로 근사한 변태가 될 것이다. 소노 시온은 변태하고 있는 변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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