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그들 각자의 영화관
2011-11-22
글 : 송경원
김동호, 이창동, 심재명, 이동진, 이나영… 각 분야를 대표하는 영화인 5인의 추천작

그들은 어떤 영화로 인생을 채우고 있을까. 영화의 전당 개관을 맞이하여 영화인들에게 백지 위임장이 발행됐다. 알찬 영화들이 담겨져 돌아왔다. 배우 고현정·이나영·이선균, 감독 이창동·봉준호, 제작자 심재명, 미술감독 류성희, 영화평론가 이동진과 영화기자 김혜리,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 등 10명의 영화인이 각각 그들만의 주제 아래 그들이 사랑한 5편의 영화를 선정했고 관객과의 대화 시간도 가질 예정이다. 분야를 대표한다는 마음으로 5인의 목록에 관해 알아보자.

<렛미인>

배우 이나영은 우리에게 ‘낯설고 아름다운’이라는 주제의 선물을 보내왔다.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의 오리지널 버전 <렛미인>(2008)을 추천한 그녀의 선택은 아름다움과 신비를 함께 품은 그녀를 닮았다. 스웨덴의 시린 겨울을 배경으로 바늘처럼 꼭꼭 찌르며 감성을 자극하는 이 영화는 이제껏 만나본 적 없는 형식의 뱀파이어영화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아름답다. 생경함과 아름다움은 결코 충돌의 대상이 아니며 이것이 그녀의 선택이 ‘낯설지만’이 아닌 ‘낯설고’인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바그다드 카페>(1987)나 <부기 나이트>(1997)를 고른 그녀의 선택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기발하고 자극적인 전개보다는 은은하고 독특한 정서가 스크린을 메우는 이 영화들은 결정적 이미지와 음악으로 기억되는 미감(美感)의 영화들이다. 배우 이나영만큼이나 고혹적인 영화들이다.

<모니카의 여름>

이창동 감독의 추천작은 잉마르 베리만의 <모니카의 여름>(1953)이다. 쉼없는 질문으로 인간의 내면을 탐구했던 베리만 감독의 초기작인 이 영화는 순박한 시골처녀 모니카를 통해 삶과 죽음, 청춘과 파멸, 관객과 영화를 충돌시킨다. 이창동 감독이 선정한 주제인 ‘마음으로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절절히 느끼게 해주는 걸작이며 그의 영화적 근본이 어디에 있는지를 짐작게 한다. 그 밖에 허우샤오시엔의 <펑쿠이에서 온 소년>(1983)이나 왕가위의 <아비정전>, 존 카사베츠의 <그림자들>(1959) 역시 내면의 심리적 문제를 사회문화적 현실과 충돌시키며 개인의 성장 혹은 파멸로 이끌어나가는 수작이다. 감독마다 각기 다른 스타일과 연출을 선보였지만 근본에 자리한 것은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과 그에 따른 끊임없는 질문과 흩어진 대답들이다.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 김동호의 선택은 ‘다섯 가지 인생’이다. 찰리 채플린의 <시티라이트>(1931), 앨프리드 히치콕의 <현기증>(1958), 제인 캠피온의 <피아노>(1993),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1997), 두기봉의 <익사일>(2006). 선택된 다섯 감독과 영화들은 너무도 달라서 일견 접점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묘한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모두 긴 여정 끝에 스스로 영화가 된 사람들이며 그들의 영화에는 각자의 인생이 진하게 묻어난다. 영화와 함께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잘 아는 김동호 위원장의 선택답다. 특히 마지막 순간까지 웃고 긍정하는 <인생은 아름다워> 속 로베트로 베니니의 모습과 영화계를 위해 헌신하는 김동호 위원장의 그림자는 어딘가 겹쳐지며 흐뭇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한편 영화제작자 심재명의 선택은 그녀가 성실히 걸어왔던 길을 뒤돌아보는 것 같다. 클라크 게이블의 능청스런 연기를 맛볼 수 있는 <어느 날 밤에 생긴 일>(1934)을 첫 번째로 추천한 심재명 대표는 장르영화의 미덕에 관한 가치를 증명할 영화들을 줄줄이 뽑아왔다. 로맨틱코미디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이 영화만큼 ‘웃음과 멜로의 이중주’라는 주제에 어울리는 영화도 드물 것이다. 물론 사랑스런 오드리 헵번을 만날 수 있는 <로마의 휴일>(1953), 80년대 로맨틱코미디 붐을 일으킨 멕 라이언의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1989), 로맨틱코미디의 제왕 휴 그랜트의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1994) 역시 성공적인 로맨틱코미디영화로서 한치의 손색도 없다. 그야말로 성공적이고 안정적인 장르 상업영화의 총아들이다.

마지막으로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배우들의 배우, 할리우드의 왕 혹은 전설이 된 ‘한 남자, 말론 브랜도’를 데려왔다. 5편의 영화 중 <지옥의 묵시록>(1979)을 제외하고는 모두 그의 젊은 시절을 장식했던 영화들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테네시 윌리엄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51)는 천재배우의 풋풋했던 시절을 발견할 수 있는 명작이다. 제목만으로도 타오르는 이 작품은 퇴락한 항구도시 뉴올리언스를 배경으로 그의 야수적 에너지를 폭발시키며 말론 브랜도를 일약 스타덤에 올린다. 이후 말론 브랜도는 다시 한번 엘리야 카잔 감독과 호흡을 맞춘 <워터프론트>(1954)에서 한결 정제된 연기를 선보이며 메소드 연기의 바탕을 다진다. 이번 기회를 통해 눈빛만으로도 영화를 지배했던 할리우드의 전설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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