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산타 가족은 행복한 X-MAS를 맞을 수 있을까?
2011-12-01
글 : 김도훈
점토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아드만 스튜디오의 야심찬 CG애니메이션 <아더 크리스마스>

도대체 산타는 어떻게 전세계 수억명의 아이들에게 하룻밤 사이에 선물을 나눠줄 수 있나요? 11월25일 개봉하는 아드만 스튜디오의 CG애니메이션 <아더 크리스마스>는 아이들이 마음속 한켠에 품을 만한 의문을 해결해주는 영화다. 그런데 이건 소박하기 짝이 없는 크리스마스 가족용 애니메이션만은 아니다. 어쩌면 여기에 아드만 스튜디오의 미래가 걸려 있을지도 모른다.

회심의 일격이다. <아더 크리스마스>는 점토애니메이션 제작사로 유명한 영국 아드만 스튜디오의 CG애니메이션이다. 그런데 잠깐. 아드만 스튜디오가 CG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고? 그것도 픽사나 드림웍스 스타일의 대자본 CG애니메이션을? 일단 아드만 스튜디오의 지난 몇년을 한번 돌아보자. 가내 수공업 애니메이션 제작사 아드만 스튜디오는 <윌레스와 그로밋>(1995), <치킨 런>(2000) 같은 점토애니메이션의 명가였다. CG애니메이션이 세상을 휩쓸고 있는 와중에도 아드만 스튜디오의 점토애니메이션은 시대의 저편으로 사라지지 않았다. 아드만의 독특한 매력을 알아차린 드림웍스는 손을 잡고 <치킨 런>을 만들었고, 영화는 1억달러가 넘는 박스오피스 성적을 거두었다. 여기까지가 아드만 스튜디오의 성공 신화다. 신화의 정점이자 종점이다.

아드만 스튜디오는 어느 순간 고유의 매력과 대중적인 활력을 조금 잃어버렸다. 장편 점토애니메이션 <윌레스와 그로밋: 거대 토끼의 저주>(2005)가 흥행에 실패하자 아드만 스튜디오는 (아마도 드림웍스의 조언에 따라) 첫 번째 CG애니메이션 <플러쉬>(2006)를 만들었다. 점토애니메이션으로는 불가능한 액션을 CG로 창조한 뒤 드림웍스 스타일의 온갖 패러디를 결합하고, 거기에 아드만 스튜디오 특유의 시니컬한 유머를 살짝 끼얹는다면 끝내주는 오락거리가 나올 것 같은데,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아드만 스튜디오의 소박한 유머와 CG애니메이션의 미끌거리는 미학은 어쩐지 아귀가 맞아떨어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결국 지난 2007년 드림웍스와 아드만은 7년간의 계약을 끝냈다. “야망이 달라서 헤어진다”는 그들의 입장은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말과 별로 다를 게 없는, 일종의 차가운 말장난처럼 들렸다. 그리고 아드만은 드림웍스와 헤어진 지 3개월 만에 소니픽처스와 3년간의 계약을 맺었다. 이토록 복잡한 계약과 변화와 실패의 점토 덩어리 속에서 마침내 선보이게 된 작품이 <아더 크리스마스>인 셈이다.

드림웍스·픽사의 전략과 영국식 유머의 결합

<아더 크리스마스>는 산타클로스 신화를 비틀어낸 모험극이다. 제20대 산타(짐 브로드벤트)는 크리스마스 선물 배송 사업을 지휘하는 일종의 CEO다. 그는 <스타트렉>의 엔터프라이즈호를 쏙 빼닮은 항공기 S-1을 타고 수천명의 엘프와 함께 2억명의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배송한다. 북극의 기지에 있는 상황실에서 이 모든 걸 지휘하는 건 과학적인 선물 배송 시스템을 만들어낸 큰아들 스티브(휴 로리)다. 주의력결핍장애가 분명한 작은아들 아더(제임스 맥어보이)는 심성은 착하지만 도무지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는 젊은이다. 그러던 어느 날 선물 하나가 배송되지 못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산타와 스티브는 대충 넘어가려고 하지만 아더는 할아버지(빌 나이), 선물 포장의 달인인 엘프 브라이오니(애슐리 젠슨)와 함께 오래된 산타 썰매를 타고 몰래 길을 나선다. 과연 그들은 크리스마스 아침이 오기 전 영국의 소녀에게 선물을 배달할 수 있을까.

사실 <아더 크리스마스>의 이야기가 딱히 아드만스러운 건 아니다. NASA와 택배회사 FedEx를 통합한 듯 기업화된 산타 제국의 묘사와 낡은 썰매를 타고 벌이는 비행 장면은 드림웍스나 픽사 애니메이션의 전략(패러디+스펙터클!)을 그대로 닮아 있다. 미학적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다. 점토애니메이션 시절 아드만 캐릭터의 외양을 최대한 보존하긴 했지만 <아더 크리스마스>의 전반적인 프로덕션 디자인은 할리우드 애니메이션과 크게 달라 보이진 않는다. 사실 아드만 스튜디오는 여기서 완벽하게 새로운 것을 보여줄 야심은 없어 보인다. 대신 그들은 픽사와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의 스펙터클한 즐거움을 복제한 다음, 영국적으로 비틀린 유머감각을 부여하는 것으로 스튜디오의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듯하다.

당연히 <아더 크리스마스>는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성인 취향이다. 특히 캐릭터를 묘사하는 방식에서 그러하다. 산타는 은퇴 뒤 삶이 두려워서 자식들에게 지위를 물려주기를 꺼리는 인물이고, 큰아들인 스티브는 명석하지만 권력욕에 사로잡힌 인물이다. 주인공 아더가 산타의 후계자로 딱히 걸맞은 인물인 것도 아니다.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이라면 아더를 크리스마스를 구원한 영웅으로 만들었겠지만 아드만은 그를 산타 가문의 마음씨 좋은(그리고 약간의 주의력결핍장애가 있는) 둘째아들 이상으로 만들 생각은 없어 보인다. 결함으로 가득한 존재들의 모험을 통해 크리스마스 정신을 되새기는 <아더 크리스마스>는 아드만 스튜디오가 할리우드로부터 CG와 자본의 화력을 빌려왔음에도 불구하고 고유의 향취를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증거다. 어쩌면 우리는 이른 시일 내에 아드만 스튜디오가 픽사의 진정한 경쟁자로 치솟아오르는 걸 보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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