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그간 과잉이었다 싶어…이번엔 자제해야겠다 생각했다”
2011-12-27
글 : 강병진
사진 : 오계옥
강제규 감독 인터뷰

-실화에서 느낀 뜨거움은 어떤 거였나.
=어떻게 이토록 기구하고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실화로 존재할 수 있을까 충격을 받았다. 우리 어르신들이 이런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살아남았다면, 삶에 대한 그런 집념과 애착은 무엇이었을까 싶더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전율이 돋았다. 한편으론 나에게 이런 기회가 또 올 수 있을까 싶었다. 영화감독으로서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볼 수 있다는 게 의미있는 도전이었다.

-준식과 타츠오를 마라토너로 설정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사실 당시 징병된 사람들은 대부분 가장 밑바닥의 청년들이었을 거다. 그리고 이들은 각각 조선과 일본의 심정적 영웅이다.
=이들을 지탱하는 동력과 힘을 생각하다가 나온 설정이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동력은 회귀본능이었다. <마이웨이>의 자료조사를 하다 보니 그 시대에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손기정의 금메달 획득이더라. 또 그 당시에는 별다른 놀이문화가 없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마라톤 대회가 큰 행사였다.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의 꿈과 희망의 가치를 접목시킬 수 있는 매개가 마라톤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준식이 당시 한국 사람들의 대변인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준식의 여정에 왜 타츠오가 동행해야 했나. 실화도 그렇고 준식의 여정만을 따라도 충분히 울림이 큰 드라마가 됐을 것 같다.
=그렇게 가도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어떤 드라마를 녹여내야 더 근사한 이야기가 될지 고민했다. 한명의 캐릭터를 따르는 건 아무래도 다큐멘터리적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자료조사를 하다보니 당시 노몬한 전투나 노르망디에서 체포된 사람들 중에서 일본인이 많았을 거란 추정이 가능하더라. 단지 조선인이 아니라 가해자와 피해자 혹은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함께 엮이는 이야기가 더 흥미로울 것 같았다.

-실제 다큐멘터리만 봐도 상상력이 무한정 열리는 이야기다. 그만큼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상상한 이야기를 빼는 과정이 더 많았을 것 같다.
=두 가지 작업이 병행됐다. 지금 이야기한 대로, 너무나 장구한 이야기라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는 한편 이것이 드라마로서 가치를 갖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중요했다. 처음에는 조선인 중심의 이야기를 생각했다. 일본군 캐릭터는 조연으로 포진돼 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태극기 휘날리며>와 유사한 구조 같더라. 그보다는 더 민감하고 예민할 수 있지만 타츠오라는 상징적인 인물이 필요했다. 자연스럽게 조선인이 중심인 에피소드는 많이 걸러냈다.

-<태극기 휘날리며> 때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블랙 호크 다운>을 참조했고 <밴드 오브 브라더스>가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그런데 사실 그 이후로 레퍼런스로 삼을 만한 작품들이 업그레이드된 건 아니다.
=나도 당혹스럽더라. 게다가 노몬한 전투는 자료가 너무 없었다. 엄청난 패배를 했던 전투라 일본에서도 언급이 금기시된 이야기였다. 하지만 스탭들과 함께 준비하고 생각했던 부분이 현실화된다면 충분히 재밌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떤 영화와 비교해서 그렇다는 게 아니다. 사실 비교될 만한 영화가 없다. 군복을 세번이나 갈아입는 드라마틱한 상황이니까. 촬영 과정에서 내가 원하는 숏이 나오면서 어느 정도 안심이 됐다.

-전쟁장면 중에 무인헬기로 찍었을 법한 숏들이 눈에 띈다.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느낀 아쉬움을 풀어낸 건가.
=당연히 그런 게 있다. 동시에 <마이웨이>의 전체적인 그림을 생각할 때, 익스트림 롱숏이 아니고는 서사의 구조와 스케일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30m나 50m 올라가서는 내가 원하는 그림이 나오지 않더라. 300m에서 500m가량 올라가야만 했다.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구상했던 것보다도 상당히 넓게 확장됐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다른 전투신보다 더 많이 신경을 썼을 것 같다. 아무래도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전투니까.
=부담이 컸다. 과연 지금의 기술력이 내가 표현하려는 지점에 얼마나 맞닿을 수 있을까가 걱정이었다. 또 예산은 한정돼 있고, 실질적으로 촬영할 수 있는 시간은 한달이 조금 넘었다. 전쟁이 인물들의 방향성을 차단하는 엄청나게 큰 방해요소로 존재하는 만큼 그러기 위해서는 이들은 정말 점처럼 보이는 대신 이들을 방해하는 요소는 엄청나게 광폭한 느낌으로 표현해야 했다. 그런 게 딜레마였다.

-<마이웨이>의 치열한 드라마는 포로수용소에서 벌어진다. 특히 종대라는 인물이 강렬했다.
=종대는 조선인을 괴롭히는 노다 때문에 탄생했다. 노다 같은 인물이 상황이 반전되면 어떻게 될까를 구상한 거다. 어떻게 보면 노다의 또 다른 모습이 종대일 수도 있겠다 싶더라. 물론 처음부터 준식과 함께 출발하는 인물을 생각한 거지만 그런 과정을 거쳐 좀더 구체적으로 생명을 가진 인물이 됐다.

-종대의 강렬함은 상대적으로 준식의 의지가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 같다. 그런 기구한 상황에서 살아남았다면 준식이 종대 같은 인물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 지점을 시나리오에서 고민했다. 어찌됐건 준식과 타츠오의 이야기니까, 종대가 지닌 입체적인 포인트를 준식에게 몰아주는 건 어떨까. 그래서 준식이 더 드라마틱하게 표현되는 게 재밌지 않을까. 실제로 그렇게 인물을 디벨롭하기도 했다. 하지만 준식과 타츠오가 서로 변화되면서 얽히는 게 맞지 않을까 싶더라. 일단 타츠오가 변화하는 동력을 제공할 때, 문제가 있었다. 만약 준식이 변해간다면 그를 보면서 타츠오가 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소련군으로 편입된 준식과 타츠오가 독일 군복을 입게 되는 과정은 영화에 없다. ‘3년 후’라는 자막이 대체한다. 그런데 사실 <마이웨이>가 다른 전쟁영화와 가장 뚜렷이 구별되는 지점이 여기가 아니었을까.
=그것도 많은 의견이 나왔던 부분이다. 사실은 그런 의문을 해소할 수 있는 장면을 찍기는 했다. 기술시사 뒤 편집에서 조정한 것도 그 부분에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일단 영화에 동방부대에 대한 설명이 나오기 때문에 이들이 어떻게 희생되고 있구나 하는 건 설명된다고 봤다.

-전작들과 비교하면 전체적으로 감정을 절제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공백기 동안 내 영화를 다시 봤다. 좀 많다는 생각이 들더라. 많다는 게 뭐냐면 표현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감정이 너무 많아서 관객에게 먹으라고 하고 있는 거다. 의지와 상관없이 내가 과잉되게 푸시하고 있다는 느낌이 살짝 들었다. 하지만 관객의 패턴은 바뀌고 있지 않나. 내가 과잉인 건 부담일 수 있겠구나 생각했고, 이제는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게 반영된 것 같다.

-<마이웨이>는 7년 만의 작품이다. 다음 계획은 어떻게 되나.
=회사에서 기획하는 게 있는데, 아직 말할 단계는 아니다. 일단 그동안 한국과 떨어져 지내면서 많이 외로웠다. 이제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 동료감독들과 부대끼면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회사 이름도 ‘디렉터스’라고 지었다. 그동안 자의든 타의든 영화를 못하면서 생긴 갈증이 있다. 물론 내 마음이 움직이는 영화를 만들겠지만 일단 좀더 극성스럽고 부지런해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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