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웨이>는 280억원짜리 전쟁영화이며 2010년 10월15일부터 2011년 6월12일까지 8개월간 156회차의 촬영을 했다. 1939년 노몬한 전투(일본군 대 몽골·소련의 전투), 1941년 독일 대 소련의 전투, 1944년 노르망디 전투(독일군 대 연합군) 등이 영화에서 재현되고 있다. 제작 당시의 현장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하는 사진들을 추렸고, 송민규 프로듀서, 이모개 촬영감독, 조근현 미술감독, 강제규 감독의 제작기를 듣고 모았다.
러시아 벌목장을 봉화에서
영화 속 당시 소련의 쿤그르스크 지역의 벌목장은 봉화 청옥산 자연휴양림에서 촬영했다. “중국이나 러시아 헌팅을 많이 했지만 우리가 원하는 장소를 찾기 어려웠다. 찾는다 해도 영하 45도까지 내려가는 곳들이어서 촬영을 할 수가 없었다. 수백명의 스탭들이 체류할 수 있는 시설도 없었다(강제규).” 대신 이 장면에서는 두 가지 기준을 세워두고 국내 헌팅을 했다. “첫째, 시베리아에서 자생하는 나무의 수종을 맞춘다. 둘째, 가능한 눈이 많이 오는 지역으로 한다. 그렇게 해서 연평균 강설량이 많은 지역을 찾아냈는데, 하필이면 눈이 적게 올게 뭔가. 그래서 그 넓은 땅의 눈을 전부 다시 세팅해야 했다(송민규).” 빽빽하게 우거진 나무들과 비탈진 경사면도 촬영을 고되게 만들었지만 방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눈밭에서 인물의 정면을 카메라가 내려와야 했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인력거 바퀴를 떼어버리고 거기에 보드를 달았다. 그렇게 해서 원하는 장면을 찍을 수 있었다(이모개).”
딱 한번만 찍을 수 있는 장면
이제는 일본군이 아니라 소련군으로 전장의 복판에 함께 서게 된 준식과 타츠오(오다기리 조). “약간 회색빛으로 힘과 힘이 부딪히는 정서적인 느낌을 강조(이모개)”한 이 장면에서 시선을 잡아끄는 건물 하나가 사진 후경에 보인다. 포탄에 맞아 무너진 커다란 건물. 실제로 벽돌로 지어 만든 다음 다시 무너뜨린 12m짜리 건물 모형이다. “유럽 헌팅 때 폐공장 지역을 간 적이 있다. 그 자체로 찍어도 좋을 정도였는데 아쉽게도 촬영 허가가 안 났고 너무 오래돼 건물들이 폭발음에 붕괴할 위험도 있었다. 잊고 지내다가 독일-소련 전투 장면을 준비하면서 감독님이 그 폐공장 이미지를 떠올리신 거다. 일단 짓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하중 때문에 땅속에 묻힌 높이만 1.5m다. 찍을 기회도 딱 한번이었다. 몇 군데 폭파 장치를 하고 카메라 각도를 여러 대로 놓은 다음 원하는 방향으로 무너질 수 있도록 포클레인 서너대에 와이어를 매달아서 폭약이 터지는 것과 동시에 잡아당겼다. 촬영하는 날 얼마나 다들 긴장했던지 끝나고는 저절로 다 박수를 쳤다(조근현).”
노르망디? 라트비아!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노르망디 전투다. 촬영은 라트비아 해안에서 이뤄졌다. 흑해 연안, 불가리아 등 10여개 국가의 정보를 검색하고 그중 6군데를 직접 2차 헌팅한 뒤에 내린 결정이었다. “노르망디 전담팀이 따로 있었다. 그들은 프리 프로덕션만 함께한 뒤 아예 라트비아에 상주하면서 일을 진행할 정도였다. 노르망디 해변과 유사한 지형구조가 라트비아에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 가야만 했다(강제규).” 연합군이 상륙작전을 펼치며 진격해 들어오는 적당한 모래사장의 너비, 그리고 그 뒤에 펼쳐질 초원 등이 감독의 마음을 한눈에 사로잡았다. 여기서 주인공 준식과 타츠오는 이제 다시 독일군으로 한편이 되어 있다.
‘페가수스’라는 이름의 헬기
영화 속 다른 전투신에 비교할 때 노르망디 전투만의 특징이라면 토치카(콘크리트로 구축된 포화기 진지) 장면과 항공촬영 장면을 들 수 있다. 준식이 뛰어다니는 토치카 내부는 “2차대전 당시의 사진을 참조하는 한편,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많이 참조했다. 하지만 개미굴처럼 서로 연결된 내부 디자인은 상상력을 더해 완성했다(조근현).” 항공촬영을 위해서는 ‘블루 스카이’라는 노르웨이 출신의 헬기 촬영팀이 라트비아 현지에 투입됐다. 데이비드 핀처의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의 항공촬영을 맡은 팀이었다. “헬기에 이모개 촬영감독과 강종익 CG감독 등이 동석했고, 그 촬영만 꼬박 3일을 했을 정도이니 항공촬영에 관한 한 거의 모든 걸 다 해봤다고 말할 수 있다(송민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