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스 메이크오버의 시작은 2009년 개봉한 가이 리치 감독의 <셜록 홈즈>였다. 물론 셜록 홈스 시리즈의 변용은 <셜록 홈즈>가 처음은 아니다. 이미 코난 도일이 활발하게 시리즈를 내놓던 1892년에 역사상 최초의 모작(模作) <페그람의 수수께끼>가 나왔으니까 말이다. 그로부터 끊임없이 쏟아져나온 모작을 모두 거론하는 건 거의 불가능할 정도다. 코난 도일의 가장 위대한 후배 중 한명인 엘러리 퀸 역시 모작들을 수록한 <셜록 홈스 앤솔로지>를 펴낸 바 있다. 가이 리치의 영화에서 홈스와 왓슨의 아슬아슬한 성적 긴장감이 영 거슬렸던 사람이라면 지금 당장 인터넷에 가서 검색해보시라. 홈스와 왓슨을 본격적인 동성애 커플로 만들어버린 모작이 얼마나 많은지 알면 깜짝 놀라게 될 거다.
사실 가이 리치의 홈스 시리즈는 그리 나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아니다. 이게 쓸모있는 비교인지는 모르겠으나 마이클 베이가 최근에 내놓은 블록버스터 시나리오와 비교하자면 가이 리치가 만든 두편의 홈스 영화는 셰익스피어극이나 마찬가지다. 어쨌거나 이 블록버스터 시리즈는 코난 도일이 100여년 전 완성한 끝내주는 이야기의 틀을 등에 업은 덕이다. 다만 한 가지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면 그건 셜록 홈스라는 캐릭터다. 주드 로가 연기하는 왓슨이 원작의 숨결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는 데 반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홈스는 프록코트를 입은 아이언맨에 가깝다. 다우니 주니어의 능글능글한 매력이 셜록 홈스라는 캐릭터의 고정적인 이미지와 맞부딪히는 걸 보는 것도 꽤 재미있는 일이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셜로키언, 혹은 셜로키언이 아니더라도 어린 시절부터 이 빅토리아 시대의 명탐정과 함께 자라온 사람들에게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홈스는 꽤 과격한 메이크오버다. 홈스를 개로 만들어버린 일본 애니메이션 <명탐정 번개>(원제는 <명탐정 홈스>(名探偵ホㅡムズ))를 명예혁명이라 부른다면, 다우니 주니어의 홈스는 프랑스혁명이라 부를 수 있으리라.
어떤 면에서 가장 진정하고 또 신실한 홈스 메이크오버는 코난 도일의 안마당인 영국에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2010년 처음 방영된 <BBC>의 미니시리즈 <셜록>에 대한 이야기다. 할리우드영화 <셜록 홈즈>와 <셜록 홈즈: 그림자 게임>이 시대적 배경을 그대로 두고 캐릭터와 설정을 현대화하는 모험에 뛰어들었다면, <BBC>의 <셜록>은 아예 현대의 런던으로 무대를 옮겨버렸다. 사실 이건 가이 리치의 <셜록 홈즈>보다 더 대담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홈스의 이미지는 프록코트를 입고 가스등이 켜진 런던을 누비고 다니는 빅토리아 시대의 산물이다. 수많은 현대적 홈스 영화들이 홈스를 지그문트 프로이트에게 정신분석을 받게 만들고(니콜라스 메이어의 소설을 각색한 1976년작 <명탐정 등장>), 홈스의 유년기를 <인디아나 존스> 스타일로 재구성해도(<1985년작 <피라미드의 공포>) 무대는 언제나 빅토리아 시대였다. 패러디와 패스티시의 자유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결코 특정한 시대 속 특정한 홈스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벗어나진 못했다.
<BBC>의 <셜록>은 보다 과감하다. 이 미니시리즈 속 홈스는 스마트폰으로 구글을 검색하며 범죄의 단서를 찾는다. 코난 도일의 홈스처럼 아이들로 구성된 ‘베이커 거리의 유격단’을 만들어 미행이나 염탐을 부탁할 필요도 없다. 스마트폰과 랩톱을 이용한 GPS 추적 기능을 이용하면 된다. 왓슨은 사건이 해결될 때마다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쓰고, 허드슨 부인은 더이상 푸근한 빅토리아 시대의 하숙집 여주인처럼 굴지 않는다. 홈스가 중독된 건 더이상 아편이 아니라 니코틴 패치, 그리고 범죄를 해결하면서 뿜어져나오는 아드레날린 그 자체다. 게다가 홈스 스스로 자신을 ‘소시오패스’(반사회성 인격장애)라고 부른다. 확실히 그러하다. 빅토리아 시대에 사람들이 홈스를 소시오패스라 부르지 않았던 건 순전히 그 시대에 소시오패스라는 단어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토록 과감한 현대적 업데이트에도 불구하고 <BBC>의 <셜록>은 코난 도일의 세계 속에 신실하게 몸을 담고 있다. 물론 가이 리치의 영화 역시 기본적인 바탕은 언제나 코난 도일의 소설이었다. 그런데 기본 뼈대만 가져온 채 원작을 거의 철저하게 재구성한 가이 리치의 영화와 달리, <셜록>은 원작의 신실한 팬들이 알아채고 즐겁게 웃어젖힐 만한 디테일로 가득하다. 이를테면 시즌1 첫 번째 에피소드의 제목은 ‘분홍색 연구’ 다. 1886년 출간된 최초의 홈스 소설 <주홍색 연구>를 살짝 비튼 이 에피소드에서 작가들은 원작의 대사나 캐릭터, 사건의 디테일을 깨알처럼 곳곳에 박아넣는다. 셜로키언들이라면 가이 리치의 <셜록 홈즈>보다는 <BBC>의 <셜록>을 훨씬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