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사건이 아니라 ‘모험’에 뛰어드는 탐정
2012-01-19
글 : 김도훈

<셜록 홈즈: 실크 하우스의 비밀>(황금가지 펴냄)은 문학계에서 찾아온 홈스 메이크오버다. 물론 세상에는 수많은 홈스 시리즈의 외전이 존재한다. 이 책이 조금 특별해 보이는 건 ‘아서 코난 도일 재단’이 공식적으로 선정한 작가 앤서니 호로비츠가 쓴 책이라는 사실 덕분이다. 후손들이 공식적으로 선정했든 아니든 좋은 외전은 좋은 외전이고 나쁜 외전은 나쁜 외전이다. 다만 <셜록 홈즈: 실크 하우스의 비밀>이 ‘좋은 홈스 소설’이라는 건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는 앤서니 호로비츠의 소설이 마치 코난 도일이 쓴 것처럼 원전 시리즈의 문체와 에센스를 거의 그대로 살려냈기 때문이다. <셜록 홈즈: 실크 하우스의 비밀>은 왓슨 박사의 서문과 함께 시작된다. “여기서 공개하려는 사건이 너무 잔인하고 충격적이라 출간할 수가 없었다. 집필이 끝나면 원고를 봉투에 넣어 금고에 넣어달라고 할 것이다. 향후 100년 동안 봉투를 개봉하면 안된다는 지시 사항도 첨부할 것이다.” 홈스와 왓슨은 미국 갱단의 위협을 받고 있는 미술품 거래상 카스테어즈를 만난다. 곧 카스테어즈의 집은 절도를 당하고, 범인은 베이커 거리의 소년 유격단에 의해 신상이 털리지만 곧 시체로 발견된다. 그런데 소년 유격단의 한 멤버가 뼈가 모조리 부러진 채 죽는다. 이때부터 <셜록 홈즈: 실크 하우스의 비밀>은 무시무시한 런던 암흑가의 비밀 속으로 굴러들어간다.

앤서니 호로비츠는 오로지 코난 도일의 유산을 잇겠다는 일념으로 가득하다. 호로비츠는 “내가 홈스 팬이 아니었다면 이 책에 뛰어들 진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세상에는 홈스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많습니다. 그들의 중요한 무언가를 무너뜨리는 책을 쓸 수는 없었습니다. 신화와 전설을 깨부수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셜록 홈즈: 실크 하우스의 비밀>이 나태한 모작이라고 말하는 건 불가능하다. 중요한 건 이 책이 다루는 사건이 왓슨의 서문에서 눈치챌 수 있듯이 지독하게 현대적으로 끔찍한 범죄의 일각이라는 점이다. 이 소설을 한마디로 축약하자면 ‘홈스가 CSI 사건을 만났을 때’다.

셜록 홈스가 지금 할리우드를 비롯한 팝문화, 그리고 문학계의 새로운 상품으로 되살아난 이유는 뭘까.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셜록 홈스의 명성이다. 홈스라는 이름은 미키 마우스나 다스 베이더 같은 새로운 팝문화 아이콘들에 결코 뒤지지 않는 명성을 갖고 있다. 한국에서 제대로 된 홈스 전집이 나온 건 지난 2002년이었지만 이미 70~80년대 가정집에는 아동용 홈스전집이 외판원들의 강매로 구입한 백과사전 세트 옆에 항상 꽂혀 있었다. 우리가 ‘탐정’이라는 단어를 입으로 내뱉는 순간 두뇌는 프록코트를 입은 베이커가의 명탐정을 떠올리게 된다. 게다가 코난 도일 이후에 등장한 많은 명탐정 캐릭터들은 거의 모두 홈스의 그늘 아래 놓여 있다. 홈스 없이 레이먼드 챈들러가 필립 말로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비록 레이먼드 챈들러가 “명대사 몇줄과 애티튜드밖에 없는 인물”이라고 홈스를 평가절하한 적이 있긴 하지만, 그건 어떤 면에서 챈들러다운 똥고집으로 보인다. 괴팍한 바이러스 전문의 ‘닥터 하우스’는 어떤가. 사실 TV시리즈 <하우스>는 셜록 홈스 시리즈에 대한 현대적 오마주나 다름없지 않은가. 홈즈는 세상 모든 탐정 캐릭터의 원형이다. 그리고 원형은 현대적인 변용이 가장 유리하다.

또한 셜록 홈스는 같은 장르의 경쟁자들, 그러니까 또 다른 역사적 명탐정 캐릭터인 엘러리 퀸, 에르큘 포와르 등에 비해 현대적인 활극 시리즈로 만드는 게 가장 손쉬운 캐릭터다. 추리소설의 고전들을 영화화하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고전적 명탐정들은 행동하기보다는 탁월한 두뇌 용량을 이용해서 사건을 해결한다. 홈스는 다르다. 그는 뛰어난 육체적 능력을 이 용해서 직접 사건의 현장에서 액션을 펼치며 사건을 해결한다. <BBC>의 <셜록>을 창조한 작가 스티븐 모팻은 말한다. “다른 명탐정 캐릭터들은 사건들을 해결합니다. 그런데 셜록 홈스는 (사건이 아니라) 모험에 뛰어들죠. 그게 가장 중요한 차이점입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시대를 넘어서서 액션블록버스터로 재창조될 수 있는 셜록 홈스의 비밀일 것이다. 원체 코난 도일의 원작이 21세기 미국 TV시리즈, 혹은 블록버스터 프랜차이즈의 형식과 쏙 빼닮은 점이 있다는 것도 지적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코난 도일은 한명의 메인 캐릭터가 연속적으로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활극에 대한 빅토리아 시대 대중의 허기를 채웠고, 그건 지금 대중이 미국식 TV시리즈나 블록버스터를 소비하는 방식과도 비슷한 데가 있다. 셜록 홈스는 현대적으로 업데이트하기가 손쉬운 드문 탐정 캐릭터다.

홈스는 우리를 안심시킨다!

골수 셜로키언들도 지금의 극단적 홈스 메이크오버의 물결을 환영하는 눈치다. <더 셜로키언>의 작가 그레이엄 무어는 누구나 홈스를 재창조할 수 있다고 말한다. “홈스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여전히 어떤 문화적 토양으로 남아 있습니다. 누구든지 홈스를 만들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독보적인 셜로키언인 학자 레스 크링거 역시 홈스의 극단적인 메이크오버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그는 심지어 가이 리치의 셜록 홈스 영화에 기술 고문으로 참여했고, <셜록 홈즈: 실크 하우스의 비밀>에 대해서도 “완벽할 정도로 만족스럽다”고 칭찬한다. “저는 모작을 잘 읽지 않습니다. 누구도 원전의 위대함에 다가갈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홈스에 대해서 무언가를 쓰거나 만드는 누구라도, 코난 도일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는 건 사실일 겁니다.”

동시에 레스 크링거는 새로운 홈스 열풍에 대해 한 가지 이유를 덧붙인다. “홈스에 대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더 있다면, 그가 세상을 바로잡는 캐릭터라는 겁니다. 그가 등장하는 순간 우리는 모든 사건이 해결될 거란 걸 압니다. 지금 서점가를 돌아보세요. 범죄소설과 미스터리, 스릴러가 베스트셀러 목록을 채우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는 역사상 가장 불명확하고 위험한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셜록 홈스는 당신을 안심시킵니다.” 그렇다면, 혹시 셜록 홈스가 21세기의 팝문화 속에서 다시 생을 얻은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그를 다시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일까. 지금 할리우드와 TV 속 영웅들은 까탈스럽고 섬세하고 복잡하다. 히어로와 안티히어로의 경계는 더이상 과도로 자른 듯 선명하게 나뉘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 대중이 더 필요로 하는 건 선과 악의 경계가 지금보다 훨씬 간결하던 시절을 무대로, 건강한 육체와 비상한 두뇌로 악에 맞서면서 도 우아함을 잃지 않는 고전적인 영웅일지도 모른다. 바로 셜록 홈스 같은 남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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