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마릴린 먼로] 죽어도 죽지 않는 20세기의 가장 기막힌 선물
2012-03-05
글 : 이화정
사망 50주기를 맞은 마릴린 먼로 여전히 유효한 섹스 심벌

마릴린 먼로 사망 50주년이다. 이미 박제가 되고도 남을 그 시간 동안, 마릴린 먼로라는 아이콘을 향한 뜨거운 관심은 식을 줄을 모른다. 불행한 유년기, 할리우드 배우로서의 성공, 그리고 미스터리한 죽음은 그녀 스스로의 삶에 국한되지 않고 거대한 연예산업의 상징으로 자리한다. 무수하게 쏟아져 나오는 책과 영화, 다큐멘터리가 마릴린 먼로를 주목하는 이유는 뭘까. 20세기의 여배우가 21세기에도 여전히 핫할 수 있는 이유를 먼로의 지난 삶을 통해 유추해본다.

이런 가정을 해보자. 지금까지 살아 있다면 올해로 마릴린 먼로의 나이는 85살이다. 죽기 전 마지막으로 출연했던 <섬싱스 갓 투 기브>(1962)를 촬영하다 해고된 사실도 잠깐 잊어보자. 그랬다면 마지막으로 그녀가 구원을 원했던 케네디가 남자들의 비극적 최후를 경험했을 거고, 그 충격으로 남자 따윈 잊고 새로운 다짐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항간에 떠도는 대로 타살설이 맞다면, 케네디의 죽음으로 그녀에게도 면죄부가 형성되었을지 또 누가 알겠는가. 아마 이 북새통 속에서도 충분히 그녀라면 다른 작품을 시도했을 게 뻔하다. 리 스트라스버그 버전의 메소드 연기 연마를 통해 섹스 심벌이 아닌 연기자의 반열에 오르고자 하는 욕심이 다분했다고 알려졌으니 말이다. 먼로를 세계적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은 이십세기 폭스사가 <클레오파트라> 같은 대작을 맡길 배우도 당연히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아닌 먼로였을 거다. 지금에서야 드는 생각이지만, 그랬다면 <클레오파트라>가 좀더 성공했을지도, 먼로가 이십세기 폭스사에 가장 많은 돈을 벌어다 준 배우로 각광받았을지도 모르겠다. 먼로의 자서전을 쓴 페미니스트 안드레아 드워킨은 “마릴린 먼로가 좀더 살았다면, 여성 팬과 여성감독, 여성제작자와 일할 기회도 가졌을 거”라고 말한다. 확실히 그 당시는 여성해방운동도 페미니즘의 개념도 채 확립되기 전이었고 여성들의 성이 소비되는 것에 대해 감히 이의를 제기할 사람도 없었다. 그러니 이 암흑의 시기만 지났더라면 그녀가 끔찍이 싫어했던 섹스 심벌로서의 이미지를 탈피할 기회가 마련됐을지 또 누가 알겠나. 드워킨의 가정은 여기서 더 나아간다. “그랬다면 그녀가 가난한 소녀들을 위한 장학재단을 만들거나, 구타당하는 여성들을 돕기 위해 노력했을지도 모른다.” 좀 후한 버전 같다고?

그럼 이건 어떤가. 아무래도 그녀가 약과 알코올을 끊는 건 쉽지 않았을 테니, 계속 그 상태로 휘청거리며 살고 있었을는지도. 조 디마지오, 아서 밀러 말고도 결혼을 더 했겠다. 잦은 결혼과 이혼 경력이 준 잡음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을 거고, 젊은 시절의 육감적인 육체가 더이상 유효하지 않았을 거라는 점은 엘리자베스 테일러와도 일맥상통한다. 어느 순간 스크린에서 더이상 소용이 없는 배우가 되고, 간간이 드라마의 단역으로 명맥을 유지하면서 그녀가 가졌을 자괴감이 눈덩이처럼 불어났을 것도 분명하다. 이 가정에 대해서라면 할리우드 영화평론가 데이비드 톰슨이 아주 신랄하게 헤집어놨다. “마릴린 먼로가 지금껏 살아 있다면, 이미 오래전에 자신의 커리어를 엉망으로 망쳐놨을 거다. 분명 자신이 중년이 되는 걸 받아들이지 못했을 테고. 설마 먼로가 캐서린 헵번이나 메릴 스트립 같은 연기파 배우가 될 리도 없지 않았겠나. 그러다 일정 나이가 돼서 죽음을 맞았겠지. 말하기 그렇지만 때이른 죽음이 그녀를 신화로 만들어주는 데는 오히려 큰 도움이 되었다.”

마돈나, 린제이 로한이 동경한 그녀

톰슨의 말은 가혹하지만 30대에 접어들면서 먼로가 늙는다는 것에 대해서, 육체의 변화에 대해서 두려움을 표했다는 점에서, 또 지금에 와서 그녀의 인기가 영속된다는 점에서 다소 일리가 있다. 먼로를 둘러싼 미스터리. 그 끝없는 관심과 열망은 신기하게도 21세기인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니까 말이다. 페이스북 같은 지금의 매체에서 먼로를 소비하는 건 그 당시를 회고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아니라 저스틴 비버에 열광하는 십대 소녀들이다. 그들은 미국 문화의 심장으로 살아남은 먼로의 사진이 등록되는 동시에 ‘좋아요’를 던질 준비가 되어 있는 유효한 팬층이다. 당장 아마존만 들어가봐라. 50주년을 앞둔 지금은 마릴린 먼로를 대상으로 상품화한 제품들이 줄잡아 1만7천건이 넘는다. 그녀의 행적을 다룬 전기가 끊임없이 다른 버전으로 해석되어 출간되고 있고, 그녀를 따라 만든 마릴린 먼로 바비인형이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 이런 상품들은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얼마 전엔 십대 시절 그녀가 해변에서 찍은 사진이 공개되어 고가에 거래되기도 했다. 놀랍게도 한번 본 적도 없는 그녀의 사진들이 끊임없이 어디선가 찾아내져 공개되고 있고, 이젠 먼로의 이혼 증명서, 호텔 영수증, 비행기 티켓 같은 것만 따로 모아서 출간하려는 시도도 있다고 하니 말 다 했다.

여배우들 역시 먼로의 확고부동한 신화에 일조했다. 그들이 할리우드의 섹시 아이콘으로 먼로를 따라하려는 건 이미 역사가 깊다. 1950~60년대에 할리우드는 그녀의 부재를 메우려는 듯 금발의 미녀들, 가슴은 크고 머리는 텅 빈 여배우들을 대거 양산해냈다. <달콤한 인생>의 아니타 에크베르그나 <그 여자는 어쩔 수가 없다>의 제인 맨스필드는 그들 중 다소 성공한 경우다. 맨스필드를 예로 들자면, 그녀는 금발의 섹시미로 요염하지만 머리 나쁜 역할을 소화해냈다. 물론 먼로가 섹시미를 넘어 가지고 있던 어떤 어두운 지점을 맨스필드는 갖고 있지 않았고, 그저 가슴만 소비되는 데 그쳐야 했지만. 마돈나가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1953)에서 힌트를 얻은 <머터리얼 걸>(Material Girl, 1985)의 뮤직비디오를 발표한 데는 먼로에 대한 무한한 동경이 뒷받침되어 있었다. “먼로가 했던 것처럼 강한 인상을 남기고 싶었던” 게 마돈나의 바람이었고, 결과적으로는 마돈나가 마릴린 먼로에 이은 제2의 섹스 심벌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메이크업이나 의상, 표정, 포즈를 재연해 먼로의 섹시함을 되살리려는 화보는 이후에도 셀 수가 없을 만큼 등장했고, 린제이 로한이나 스칼렛 요한슨은 그중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공공연하게 먼로의 팬임을 알린 린제이 로한은 “내 집에 가면 마릴린 먼로의 경매품이 한가득”이라고 자랑하기도 했다. 단순히 동경뿐만이 아니다. 먼로에 관한 전기라면 다 읽는다는 메간 폭스는 “혹시나 내가 마릴린 먼로처럼 경계성인격장애를 가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늘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할리우드라는 거대 시스템에서 여배우가 받는 압박이 있다면, 이미 그걸 가장 집약적으로 체험하고 온 생을 통해서 표본화한 건 먼로였으니까 말이다.

사진 R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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