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 호스>의 조이
집단지능을 연기론에 대입해보면 어떨까. 물론 영화란 집단노동의 산물이기에 어느 영화배우나 협업을 통해야만 최상의 연기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워 호스>의 조이는 14마리의 조이‘들’이 합심해 1마리의 조이를 탄생시켰다는 의미에서 진정으로 집단지능의 소산이다. 수석 조련사 바비 로브그렌이 서러브레드, 안달루시안, 웜블러드 혈통을 이어받은 배우들 중에서 외모가 비슷한 14마리를 선발했고, 분장팀이 동물에 무해한 페인트로 그들의 눈과 눈 사이에 다이아몬드를, 손목과 발목에 흰 띠를 똑같이 그려넣어 싱크로율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모든 장면에는 적합한 성품과 능력을 지닌 조이들이 둘씩 대기해 한 마리가 지치면 다른 한 마리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 결과 개별 조이들의 연기력의 합을 초월하는 ‘기적의 말’ 조이가 태어났다.
팀플레이의 센터는 로브그렌이 직접 에이전트를 맡고 있는 파인더였다. 2003년, 전설적인 경주마 이야기를 다룬 영화 <씨비스킷>에서 파인더를 보고 첫눈에 반해 그와 무기한 계약을 체결했다는 로브그렌에 따르면 감정의 파고가 높은 장면은 주로 파인더의 몫이었다고 한다. ‘노 맨스 랜드’에서 철조망 사이로 절망과 희망 사이를 가리키는 큰 눈망울도 파인더의 것이었다.
<워 호스>의 감동은 인간이 벌이는 크고 작은 전쟁에서 조이가 어떤 고귀한 몸짓으로 스스로를 구명해내는 순간들에 있는데, 그때마다 파인더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제스처로 정확히 관객의 양쪽 누선을 건드렸다. 다른 조이는 테드 내러콧(피터 뮬란)이 자신을 데리고 집에 들어설 때 화를 내는 아내 로즈(에밀리 왓슨)를 피해 테드의 어깨에 긴 콧날을 비비는 애드리브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을 감동시켰다. 스필버그는 동물적 감각으로 “요구하는 것 이상을 보여준” 조이들에 경탄을 감추지 못했다. 인간의 예측을 넘어 질주하는 14마리의 조이들이 소생시킨 하나의 조이는 그렇게 연기의 새로운 고지를 발견했다.
<아티스트>의 어기
무성영화 <아티스트>에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주연배우 장 뒤자르댕뿐만이 아니었다. 훌륭한 조연의 모든 것을 보여준 어기(Uggy)에게 전세계 영화인은 환호했다. 어기는 꽃미남과는 아니다. 대신 총명함으로 주위를 사로잡는다. <아티스트>에선 무성영화 시대의 스타, 조지(장 뒤자르댕)의 연기 파트너이자 생명의 은인으로 출연한다. 재치있는 행동으로 영화에 웃음을 불어넣는 건 기본이다. 조지가 아내와 식사하는 장면을 예로 들어보자. 그때 어기는 식탁 위에 자리잡고 앉아 있다. 아내는 조지의 스캔들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난 신문을 보고 있는데, 그 순간 어기는 조지의 심정을 완벽하게 대변하는 대변‘견’이 된다. 멋쩍으면서도 미안한 마음을 담아 고개를 숙이고, 따분하고 심드렁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한발을 들어 식기 위에 올 려놓는다. 이 장면은 한 배우의 개인기가 어떻게 유기적으로 상황 속에 녹아들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완벽하게 계산된 타이밍, 그러면서도 자연스럽기 그지없는 몸짓. 어기가 타고난 배우임을 증명하는 장면이다.
덧붙여 어기의 ‘발’연기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산소탱크 박지성도 울고 갈 만큼 그는 스크린 이곳저곳을 부지런히 뛰어다닌다. 마치 연기는 발로 하는 거라고 웅변하는 듯하다. 어기를 입양해 배우로 길러낸 오마 본 뮐러는 “촬영장의 조명이나 소음에도 겁먹지 않는 용감한 개”라고 어기를 소개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어기의 몸사리지 않는 연기는 더이상 볼 수 없다. <아티스트>는 어기의 은퇴작이다. 2002년생인 어기의 나이를 생각하면 그의 아름다운 퇴장에 박수를 보낼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