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마치 한장의 사진처럼 멈춰서다 / 연기를 안 하는 듯 하는 듯… / 스코시즈가 반한 사랑스러움
2012-03-20
글 : 이후경 (영화평론가)
글 : 남민영 (객원기자)

<토리노의 말>의 말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배우가 있고,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배우가 있다면 <토리노의 말>의 말은 전자다. 로베르 브레송의 <당나귀 발타자르>와 자웅을 겨룰 만한 신예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으로서의 배우를 발탁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벨라 타르 감독은 루마니아의 국경 근처에서 그를 찾아냈다. 그가 니체의 일화 속 말처럼 주인이 아무리 거세게 채찍을 휘둘러도 끄떡하지 않을 만큼 센 고집의 소유자임을 직감했던 것이다. 그에겐 별다른 훈련도 필요없었다. 깊은 우울증에 빠진 듯 “유독 슬픈 눈을 가진” 그를 타르는 그저 영화 속으로 끌고 들어오기만 하면 됐다. 그가 마구간에서 먹기를 거부하며 서 있는 것만으로도 마부와 마부의 딸이 빛도 소리도 없는 세계 속으로 가라앉기에 충분하리라. 마부가 집을 버리고 떠나려는 장면에서는 자연히 그를 대신해 마부의 딸이 짐수레를 끌게 됐다. 바람에 맞서기조차 힘겹다는 듯 게으르게 이끌려가는 그의 모습은 ‘연기’가 아니었다. 피난처를 찾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도 그는 반쯤 내리감은 눈으로 40초간 자신 앞에 굳게 버티고선 카메라를 마주한 채 어떤 미동도 하지 않았다. 급기야 화면이 정지된 것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 무기력함은 본성을 거스를 줄 모르는 그의 심리적 사실이었다. 그러니 그가 소멸의 과정을 그리고자 한 이 영화의 구심점이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의 버스터와 스파

배우의 존재감은 그가 지닌 아우라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아우라의 구성성분과 성분비는 배우마다 다를 것이다.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의 버스터가 지닌 아우라의 9할은 육체미다. 300kg에 육박하는 육중한 체격, 점도(粘度)가 평균치를 훨씬 웃도는 타액으로 흥건한 입술, 면적이 세숫대야만 한 발바닥과 둘레가 전봇대만 한 팔뚝, 휘두르는 순간 살상무기로 돌변하는 손발톱을 지닌 곰 버스터는 상대배우가 맷 데이먼이라 할지라도 기죽지 않는 초헤비급 신인임을 증명해 보였다. 그렇다고 그가 몸만 내세우는 육체파 배우라는 말은 아니다. 그는 금세 영화연기의 핵심이 반복성에 있다는 것을 간파했을 만큼 능란했다. LA의 한 거리에서 이루어진 촬영 중에는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을 때 땅바닥에 주저앉아 일광욕을 즐기는 여유도 발휘했다. 한편 벵골이 고향인 호랑이 스파는 영화연기의 정수를 절제미에서 찾았다. 출연진 중 최고령자이기도 한 스파는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발휘하는 연기가 어떤 것인지 아는 노회한 배우였다. 그는 그저 바위 위에 무심하게 앉아 있다가 한번 뛰어내리는 동작만으로도, 혹은 철창 안에서 쇠약해진 몸을 뉘인 채 맷 데이먼의 대사에 살짝 그르렁거리는 응대만으로도 플롯의 맺힌 혈을 뚫을 줄 알았다. 버스터의 연기가 ‘큰’ 연기라면 반대로 스파는 ‘작은’ 연기를 최대치로 밀어붙여 보인 것이었다.

<휴고>의 블래키

마틴 스코시즈의 첫 3D영화 <휴고>에서 단연 빛나는 것은 좌중을 압도하는 화려한 3D 효과였지만 시종일관 극에 긴장감을 더했던 블래키의 활약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아티스트>와 <비기너스>의 잭러셀테리어들이 ‘귀여움’을 무기로 관객의 가슴을 흔들어놨다면 도베르만 블래키는 날카로운 인상답게 타고난 용맹함과 사나움으로 관객을 불안에 떨게 한다. <휴고>에서 기차역 검사관(사샤 바론 코언)의 경비견으로 등장한 블래키는 특유의 날렵한 몸과 쭉 뻗은 긴 다리 그리고 윤기가 흐르는 검은 털이 돋보이는, 날 때부터 천생 배우다. 특히 그가 남다른 길이의 다리로 시계탑으로 몸을 숨기는 휴고의 뒤를 재빠르게 좇을 때의 긴장과 흥분, 쾌감은 우사인 볼트의 경기를 떠오르게 할 만큼 짜릿하다. 좁고 가파른 시계탑을 매섭게 뛰어오르는 블래키는 때때로 사샤 바론 코언의 카리스마마저 압도하며 극의 긴장감을 고무줄처럼 밀고 당긴다. 그러나 블래키는 아쉽게도 골든칼라어워즈의 톱 도그의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 이에 마틴 스코시즈 감독이 직접 “블래키가 후보에 없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칼럼을 기고하면서 뒤늦게 톱 도그의 후보에 오를 수 있었다. 거장의 마음마저 사로잡은 뛰어난 용모와 용맹함 그것이야말로 견공스타 대열에 뛰어든 신예 블래키의 아찔한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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