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버킨적 삶’을 살아가는 불멸의 연인
2012-03-29
글 : 김도훈
3월22일 내한공연 갖는 제인 버킨과의 독점 인터뷰

60년대의 얼굴. 프렌치팝의 여신. 세르주 갱스부르의 뮤즈. 샬롯 갱스부르의 어머니. 배우이자 가수, 영화감독이자 영원불멸의 시대적 아이콘. 제인 버킨이 3월22일 목요일 오후 8시 악스코리아에서 내한공연을 갖는다. 이번 공연은 세르주 갱스부르 사망 20주년과 앨범 ≪멜로디 넬슨≫(Histoire de Melody Nelson)의 40주년 기념 공연이자, 그녀의 말대로라면 제인 버킨 인생의 마지막 세계 투어다. 파리에 살고 있는 제인 버킨과의 전화 인터뷰를 싣는다.

버킨.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중에서는 버킨이라는 이름에서 뭔가 다른 걸 떠올리는 이도 있을지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가방. 심은하와 지금 한국의 대통령 부인이 공식석상에 나설 때마다 곱게 움켜쥐고 있는 부와 명성의 상징. 세상의 많은 여인들이 꿈꾸지만 그들 대부분이 평생 손에 쥐지 못할 어떤 판타지. 그렇다. 지금 에르메스의 버킨백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해보자는 거다.

제인 버킨의 신실한 팬이라면 그녀의 이름이 값비싼 가방과 동의어로 쓰인다는 사실에 속이 좀 쓰리리라. 왜 하필 제인 버킨은 1984년의 어느 날 에르메스 회장의 옆자리 항공권을 예매했던 걸까. 왜 하필 그녀는 에르메스 회장 앞에서 가방을 쏟으며 “에르메스는 왜 주머니 달린 가방을 만들지 않는 거냐”고 물어봤던 걸까. 결국 에르메스는 가방을 만들었고, ‘버킨’이라는 이름을 가방에 덧씌웠고, 제인 버킨의 이름은 어떤 레이블이 됐다. 아마도 버킨백 때문일 거다. 제인 버킨은 지금 한국에서 60년대 프랑스를 상징하는 패션의 아이콘으로 소비되는 중이다. 지금 당장 구글에서 제인 버킨이라는 이름을 쳐보시라. 버킨백과 제인 버킨의 패셔너블한 60년대적 삶에 대한 소녀들의 선망이 블로그와 블로그를 타고 넘실댄다.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버킨’이라는 이름을 형용사나 동사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버킨적 삶을 살고 싶어” 혹은 “그녀는 아주 버킨하지”. 이런 문장을 듣게 될 날이 오지 않으리라고 누가 확신할 수 있으랴. 지금 농담하냐고? 절반쯤은.

그러니까 도대체 제인 버킨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영국에서 태어나 프랑스의 연인이 된 여자라고 말하리라. 부유한 문화계 집안에서 태어난 버킨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욕망>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누드 모델로 출연해 세상을 뒤흔들며 배우로 데뷔했다. 10대 때 제임스 본드 시리즈 음악가 존 배리와 결혼한 그녀는 프랑스로 건너가 찍은 영화 <슬로건>에서 가수 겸 배우 세르주 갱스부르를 만나면서 진정한 예술적 화염에 휩싸였다. 시작은 <Je T’aime… Moi Non Plus>였다. 그건 노래라기보다는 분출하는 오르가슴의 기록물에 가까웠다. 수많은 국가에서 금지당했으나 모두가 그 노래를 들었고, 제인 버킨과 욕정어린 사랑에 빠졌다. 제인 버킨과 세르주 갱스부르는 ‘요동치는 60년대’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이후 제인 버킨의 생애를 이야기하려면 이 잡지 지면을 모조리 할애해도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도 한번 노력해보자. 제인 버킨의 가장 강렬한 영화적 이미지는 아마도 로제 바댕의 <돈후안 73>에서 브리지트 바르도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일 것이다. 그녀는 당대의 다른 프랑스 여배우들만큼 영화에 집중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장 뤽 고다르, 자크 리베트, 아녜스 바르다, 클라우드 지디의 뮤즈로서 버킨은 배우의 경력을 이어갔다. 그녀는 85년작 <더스트>로 베니스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2007년에는 첫 번째 연출작 <박스들>을 내놓으며 감독으로도 데뷔했다. 물론 영화보다 더 선명한 것은 가수로서의 경력이다. 첫 번째 솔로앨범 ≪Di Doo Dah≫ 이후 그녀는 세르주 갱스부르와 함께 불멸의 프렌치팝을 만들어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어머니에게 제인 버킨의 이름을 한번 내뱉어보시길. 모르긴 몰라도 <Yesterday Yes A Day>나 <Di Doo Dah> 선율쯤은 술술 흘러나올 것이 틀림없다.

영화와 음악, 그리고 제인 버킨에게는 사랑이 있었다. 그녀는 모두 세번 결혼했고(영화음악 작곡가 존 배리, 세르주 갱스부르, 그리고 프랑스 감독 자크 드와이옹), 각각의 남편에게서 세딸(사진작가인 케이트 배리, 영화배우인 샬롯 갱스부르, 그리고 패셔니스타로 유명한 가수 겸 배우 루 드와이옹)을 얻었다. 제인 버킨은 지금 예순다섯살이다. 여전히 노래를 하고 영화를 만드는 동시에 맹렬한 인권운동가로 활동하고, 무엇보다도 현명한 어머니로 살아간다. 수요일 밤의 서울에서 수요일 아침의 제인 버킨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인 버킨은 세르주 갱스부르, 샬롯 갱스부르, 이번 공연과 영화에 대해 헬륨가스를 들이마신 듯 유쾌한 목소리로 한 시간 동안 이야기를 쏟아냈다. 전화를 받은 그녀의 옆에 세계 최초의 버킨백이 놓여져 있었냐고? 미리 귀띔하자면, 버킨은 더이상 버킨 곁에 없다. 떠나보낼 때도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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