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꾸미지 않은 짐승의 눈빛
2012-04-12
글 : 장영엽 (편집장)
사진 : 백종헌
유아인

유아인은 신기루의 배우가 아니다. 그는 당장 오늘 거리를 걷다가 마주칠 수 있는 구릿빛 피부의 남학생(<완득이>)이자 얼굴은 반듯한데 성격은 다혈질인 빵집 종업원(<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동대문에서 옷감을 들고 달음박질할 법한 젊은 사장님(<패션왕>)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어쩐지 손을 뻗으면 잡힐 것만 같은 그의 생동감은 사극에서도 예외가 없다. 모든 학생들이 꼿꼿이 앉아 있는 성균관 내부에서도(<성균관 스캔들>) 유아인의 걸오는 책상 밑에 일자로 눕거나 담장을 타고 한숨을 돌리는 ‘리얼’한 꼼수를 부린다. 기억 속 한 시절에 존재할 것만 같은, 때로는 소심했고 때로는 호락호락하지 않았으며 말보다는 행동이 앞섰던, 좌충우돌 남자아이의 이미지가 유아인의 트레이드 마크 같은 모습이다(물론 유아인처럼 귀여운 마스크에 시원시원한 몸매를 장착한 기억 속 ‘그 남자아이’는 없을 테지만). 하지만 그에겐 캐릭터에 현실의 활기를 불어넣는 것 너머의 무언가가 있다. 완득이가 피부색 다른 엄마를 말없이 다독일 때, 걸오가 공허한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할 때, 우리는 유아인이라는 배우의 ‘연기’가 아니라 삶의 일부를 들여다본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한다. 마음 한켠엔 나이에 비해 너무 많은 것을 겪은 듯한 성숙함을, 다른 한켠엔 언제라도 깨져버릴 것 같은 불안함을 지닌 유아인은 닿을 수 있을 것 같지만 결국은 완전히 닿을 수 없는 내면을 가진 배우다. 그가 우리 모두의 기억 속 남자아이가 될 수 있으면서도, 결국은 그가 직접 지은 이름처럼 오직 ‘하나’(아인(ein). 독일어로 ‘하나’라는 뜻이다)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관전 포인트 ◆ 말하지 않아도 그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성균관 스캔들>을 보며 ‘걸오앓이’를 해본 낭자들이라면 모두 동감할 것이다. 걸오 사형이 분노했는지, 부끄러운지, 사랑에 빠졌는지 우리는 유아인의 눈빛만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산짐승처럼 축축한 눈빛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다가도 정인에겐 한없이 깊은 눈매를 보여준 유아인은, 이로써 대한민국에서 눈동자 근육(?)을 가장 자유자재로 사용할 줄 아는 청춘스타임을 보여줬다.

절대유형 ◆ 마음껏 들판에서 광합성을 한 듯한 구릿빛 피부, 손으로 쓱싹쓱싹 5분 만에 손질한 것 같은 머리. 유아인은 자연스럽게 건강해 보이는 배우다. 그리고 요즘 우리는 이런 타입의 배우들을 ‘짐승남’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유아인은 가슴에 힘 주고 핏줄 서린 눈매를 자랑하는 ‘인공적인’ 짐승남들과 거리를 둔다. 피곤하면 자고, 화나면 소리지르고, 노숙자 차림으로 뉴욕 한복판에서 빵을 우걱우걱 뜯어먹던 <패션왕>의 영걸을 생각해보라. 이렇듯 수더분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전국 여인들의 마음을 도둑질하는 건 아무 짐승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캡처하고 싶은 순간 ◆ 두눈을 동그랗게 뜨고 콩글리시로(“우쥬 플리스 렌탈?”) 미국인에게 면도기를 빌리던 <패션왕>의 영걸, “사형은 분명 좋은 남편이 되실 겁니다”라는 윤식의 말에 “내가 무슨!” 하다 돌아서서 배시시 웃는 <성균관 스캔들>의 걸오 등 주옥같은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가지만 한 장면을 뽑으라면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를 말할 수밖에 없다. 영화의 엔딩 신. 절망과 고통의 터널에서 빠져나온 직후, “훌륭한 소년이 될 거예요?”라는 동행 소년의 질문에 유아인이 분한 종대는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 미소는, 어쩌면 종대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유아인이 스스로의 미래에 던지는 대답이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6년이 흐른 지금, 유아인은 그 자신의 대답대로 훌륭한 청년이 되었다.

공략 포인트 ◆ “나 너 이제 안 보고도 그릴 수 있어”라고 말하던 <반올림>의 아인 오빠나 “넌 우주에서 제일 나쁜 년이야! 하지만 난 앞으로 너만을 위해 살 거야”라고 고백하던 <좋지 아니한가>의 용태를 떠올려보라. 이 남자에게 중요한 건 여성 타입이 아니라, 누군가를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이다. 좋아하는 마음을 툭 하고 상대방에게 던진 다음, 별다른 조치가 없어 다른 놈팡이가 유유히 채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아픔이 많은 남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 유아인에게 공략 포인트 같은 건 없다. ‘아는 여자’로 그의 주변을 빙빙 돌다보면 언젠가 그가 돌아봐주는 날이 올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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