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배틀쉽] 외계 우주선과의 혈전, 최고의 비주얼에 도전한다
2012-04-16
글 : 손주연 (런던 통신원)
테일러 키치·리한나 출연하는 SF 블록버스터 <배틀쉽>의 배우들을 만나다

지난 3월27일, 런던의 중심가 소호에 자리한 한 호텔에서 오는 4월11일 개봉하는 영화 <배틀쉽>의 시사회가 열렸다. 영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를 반영이라도 하듯 유니버설픽처스가 기자 시사회에서부터 철통같은 보안 유지에 많은 공을 들이는 모습은 꽤 인상적이었다. 보안 유지를 위한 여러 절차들 때문에 영화의 시작이 다소 늦어졌음에도 시사회장은 불만보다는 기대와 취재 열기로 가득했다. 팝의 섹시디바 리한나의 첫 정극 데뷔작이자 2200억원이라는 제작비를 쏟아부은 압도적 스케일의 블록버스터라는 점 외에도 이 작품이 주목받을 이유는 충분했기 때문이다.

<지. 아이. 조: 전쟁의 서막>과 <트랜스포머> 등으로 유명한 하스브로사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SF 블록버스터 <배틀쉽>은 특이하게도 동명의 유명 인기 보드게임이 원작이다. 스토리 라인이 정교한 소설이나 만화가 원작이 아닌 까닭에 영화의 줄거리 역시 비교적 단순하다. 향후 미국을 넘어 세계를 구하게 될 알렉스 하퍼 대위(테일러 키치)는 젊은 시절 여자 때문에 온갖 위험한 일도 무릅쓴 대책없는 청춘이었다. 첫눈에 반한 여자 사만다(브루클린 데커)를 위해 근처 편의점에 몰래 들어가 음식을 훔치다 경찰에 쫓기기까지 한 그를 가만둘 수 없던 형은 그와 함께 해군에 입대한다.

해군에 입대해서도 알렉스는 지각을 밥 먹듯 하며 문제아로 낙인 찍힌다. 세계 해군들이 한데 모여 훈련하는 림팩 다국적 해상 훈련이 열리는 첫날에도 알렉스는 어김없이 지각을 하고, 쉐인 함장(리암 니슨)은 그를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다름 아닌 그가 바로 여자친구 사만다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쉐인은 태평양 한가운데서 발견된 정체불명의 물체에 대한 수색을 지시하고, 알렉스 팀이 괴물체에 접근해 손을 가져다대자, 괴물체는 엄청난 위력으로 보호장벽을 친 뒤 지구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다음은 뻔하다. 세계 각국이 정체 모를 괴물체의 공격으로 파괴되고, 인간들은 고통받는다. 괴물체에 형을 잃자 알렉스는 갑자기 불세출의 영웅으로 변해 함선을 진두지휘한다. 항해 초반 티격태격하던 일본인 동료와도 급하게 화해하며 함께 어려움을 이겨나가더니, 결국 외계인의 치명적인 약점까지 발견해 미국과 세계를 구하고 여자친구의 아버지에게도 인정받으면서 영화는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인기 보드게임이 원작, 현란한 특수효과에 눈길

유니버설픽처스가 동원한 엄청난 제작비와 현란한 특수효과는 빈약한 스토리 라인의 약점을 충분히 메우고도 남는다. 태평양 한가운데서 외계인들이 발사한 쉬레더가 홍콩까지 날아가 화려한 도시를 순식간에 파괴하는 장면이나 거리의 자동차, 하늘의 헬기들이 이 쉬레더에 의해 휴짓조각처럼 나뒹구는 모습, 진주만의 전설적인 미국 전함 USS 미주리호와 소금쟁이 모양의 독특한 외계 우주선이 벌이는 해전 등은 할리우드영화가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까닭을 유감없이 보여 준다.

TV시리즈 <프라이데이 나이트 라이츠>에서 까칠하지만 사실 상처를 갖고 있는 팀 리긴스 역을 맡으며 피터 버그 감독과의 인연을 시작한 테일러 키치나 첫 영화임에도 존재감을 제대로 과시한 리한나, 짧게 등장했지만 큰 여운을 남긴 리암 니슨의 연기 역시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하다. 테일러 키치는 3월28일 런던 만다린 호텔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피터 버그 감독과의 촬영이 얼마나 즐거웠고, 이 작품이 본인에게는 큰 도전이었는데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피터 버그 감독은 심지어 다음 작품에서도 테일러 키치와 함께 작업하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치기도 했다. 리한나는 본인이 비록 음악계에서는 유명한 편이라고 하더라도, 영화 작업은 처음이기에 신인의 자세로 촬영에 임했다고 후기를 전했다.

출연배우들의 작품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와 달리 이날 간담회에 참여한 기자들의 영화에 대한 평가는 썩 좋지 않았다. <배틀쉽>이 평단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얻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쉽게 범하는 전형성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웬만한 관객이면 바로 다음 장면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만큼 단순한 이야기 구성과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결말은 잠시 접어두더라도, 감독이 주장하는 침략자가 아닌 지구의 신호를 받고 지구를 방문한 외계인들이 인간이 먼저 자신들을 건드렸기 때문에 본의와 달리 인간을 공격하게 되었고, 그런 이유로 무장하지 않은 인간은 공격하지 않는다는 설정은 참신하다기보다는 개연성이 부족해 황당하기까지 하다. 원작인 보드게임이 본래 가지고 있던, 상대편의 배를 먼저 몰락시키기 위한 치열한 심리게임도 피터 버그 감독이 호언했던 만큼 정교하고 치열하지 않아 크게 몰입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영화에서는 전세계가 공격을 받았다고 하나 ‘미국 도시’가 산산조각나고 ‘미국인들’이 심하게 고통받는 모습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미 해군이 외계 생명체에 맞서 당당하게 싸우는 모습만 계속해서 조명될 뿐이다. 그리고 마지막, 하퍼 대위가 맞이하는 해피엔딩은 전형적인 미국식 패권주의를 보는 것 같아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다. 이 점이 바로 2012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서막을 알릴 <배틀쉽>이 개봉 전만큼의 호응을 얻으며, 영화사의 역사를 다시 쓸지에 대해 의문이 드는 가장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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