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라기 공원>처럼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 되길”
-피터 버그 감독 인터뷰
사진기자가 카리스마 있는 표정을 요구했다. 그러자 피터 버그 감독은 권투 선수처럼 몸 푸는 시늉을 하더니 멀찍이 떨어져 인터뷰 중인 테일러 키치를 향해 “헤이, 키치. 일어나보라고”라며 감독 행세를 했다(물론 테일러 키치는 인터뷰에 집중하느라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수천명의 스탭을 통솔해야 하는 블록버스터영화의 감독에게 카리스마와 리더십은 필수 덕목일 것이다. 여러 인터뷰에서 <배틀쉽>의 배우들은 피터 버그를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말을 전했다. 피터 버그는 어떻게 신뢰받는 함장이 되어 <배틀쉽>을 조종했을까. 두달 만에 다시 한국을 찾은 그를 식목일에 만났다.
-영화를 보고나니 당신은 참 욕심이 많은 사람이구나,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게 참 많았구나 싶더라.
=나는 단지 사람들이 즐겁게 즐길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심오한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배틀쉽>을 만든 건 아니다. <인디아나 존스>나 <쥬라기 공원>처럼 사람들이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
-비중이 작은 인물들도 모두 각자의 드라마를 가진다.
=액션영화라 할지라도 캐릭터가 재밌어야 한다. 관객의 흥미를 끌 수 있어야 하고, 유머도 있어야 하고, 감동도 시켜야 한다. 그래서 최대한 다양한 유형의 배우들을 캐스팅했고, 여러 감정을 영화에 녹이려고 했다. 액션영화라고 폭발장면만 반복되면 사람들이 지루해한다.
-미 해군의 전폭적인 지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프로젝트다. 미주리호에서의 촬영은 어떻게 성사될 수 있었나.
=미 해군을 비롯해 미군이 나를 아주 좋게 본 것 같다. 공개적으로 군인들을 존경하고 존중한다는 얘기를 해왔다. 그래서 다른 감독들보다 더 나에게 호의적으로 나온 게 아닐까 싶다.
-배우들도 감독님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말을 했다.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는 방법이 궁금하다.
=‘저 사람이 나를 존중하는구나, 나의 성공을 진심으로 원하고 있구나’ 하는 믿음을 상대방에게 줘야 한다. 상대가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내가 그를 아낀다는 걸 느끼게 할 수 있다면 사람들에게 신뢰를 받을 수 있다. 촬영현장에서뿐만 아니라 인생에도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엄청난 물량과 어마어마한 배우들이 투입된 영화다. 현장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처음 감독 일을 시작했을 때는 모든 걸 나 혼자서 해결하려고 했다. 그때는 젊었고 불안했기 때문에 누군가 내 말에 토를 달면 화를 내고 싸웠다. 겁이 났었다. 저 사람이 날 무시하는 건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성숙해지면서 자신감이 생겼고, 도움을 청하는 방법도 배우게 됐다. <배틀쉽>은 스케일이 무척 큰 영화다. 수천명의 스탭이 세트장에서 함께 움직 인다. 그런 상황에서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면 일을 제대로 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오랫동안 나와 작업해온 사람들을 채용했다. 그리고 카메라맨이 화면을 잘 찍어줄 거라는 믿음, 배우들도, 의상디자이너도 알아서 자기 역할을 잘해낼 거란 믿음을 가지고 일을 맡겼다. 그런 믿음으로 나는 지휘자가 되어, 도움이 필요할 땐 도움을 구하면서 현장을 이끌어나갔다.
-어린 시절부터 에일리언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했다. 어릴 때 좋아했고 또 영향받은 에일리언 영화는 뭔가.
=리들리 스콧의 <에이리언>! 이 영화 봤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다. 또 나는 <E.T.>의 팬이다. <에이리언>과 <E.T.> 사이 어디쯤 <배틀쉽>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과 외계인 과학자가 만나는 장면, 기억나나. 외계인이 인간을 보고 불안해하니까 괜찮다면서 진정시키는 장면이 있는데, 인간과 외계인 사이에 잠깐 평화로운 공기가 감도는 그 장면은 내가 <배틀쉽>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북한에 가본 적 있나? 북한 사람에게 남한 사람은, 남한 사람에게 북한 사람은 외계인처럼 느껴질까? 북한 사람을 한번 만나보고 싶다. (남북 대치 상황이) 굉장히 흥미롭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스토리 라인을 따와서, 북한 소년과 남한 소녀가 만나 사랑에 빠지는 내용의 영화를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
“두려움을 알아야 위험에 대처할 수 있다”
테일러 키치 인터뷰
신비의 행성 바숨에서 긴 머리를 휘날리던 존 카터가 <배틀쉽>의 해군 대위 알렉스 하퍼로 돌아왔다. SF 블록버스터 <배틀쉽>에서 괴생명체에 대항하는 이 남자의 이름은 테일러 키치. 할리우드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그가 <배틀쉽>의 개봉을 앞두고 4월5일 한국을 찾았다. 때로는 소년의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때로는 터프함으로 스크린을 누비는 테일러 키치의 이중적 매력이 한국의 관객 또한 쉽게 사로잡으리란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배틀쉽>의 알렉스 하퍼는 평범한 영웅이 아니어서 매력있다. 예를 들면 알렉스가 가진 특유의 유머러스한 부분인데 <존 카터: 바숨 전쟁의 서막>의 존 카터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부분들을 스스로 의식해서 연기한 것인가.
=항상 어떤 역할을 맡을 때 그 인물의 성격 모두를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관객의 입장에서 볼 때 그 인물에게 끌릴 수 있도록 혹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배우가 연기를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래서 존 카터나 알렉스 하퍼의 다양한 부분들을 보여주려고 했다.
-본인도 유머러스한 편인가.
=나는 드라이한 유머를 구사한다. (웃음)
-<배틀쉽>의 배경이 바다 위의 전함이다 보니 다른 액션장면보다 훨씬 더 위험했거나 낯선 경험들이 많았을 것 같다.
=그렇다. 하와이 연안에서 촬영을 했는데 와이어에 매달려 나 혼자 바다 한가운데 잠시 있어야 했던 적이 있다. 그때 조스가 나오진 않을까 하며 잠시 두려움에 떨었다. (웃음)
-알렉스 하퍼는 용감하지만 두려움도 많은 인물인데 어떻게 생각하나.
=관객은 알렉스라는 인물이 지극히 평범하기 때문에 공감하는 지점이 많을 것이다. 알렉스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살아가면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지 않나. 그때마다 그 상황에 도전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 고민하면서 살아가고. 알렉스는 대충 자신의 인생을 소비하다가 위험한 상황이 터져 그 안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는 인물이다. 그런 부분에 공감을 느껴 나 역시 알렉스란 캐릭터를 좋아한다.
-스스로도 도전하는 게 두려울 때가 있나.
=물론 그렇다. 하지만 약간의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게 좋은 것 같다. 보통 위험한 상황이 터지면 거기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방법을 찾지 않나. 그 방법을 찾아내는 과정 중 하나가 두려움을 갖는 것이라 생각한다.
-TV 드라마 <프라이데이 나이트 라이츠> 때부터 긴 머리를 고수해왔다. 알렉스 하퍼를 맡으면서 짧은 머리로 변신했는데 스스로 짧은 머리가 낯설지는 않았나.
=긴 머리를 12년 동안 고수했다. 사실 머리를 잘라야 할 때가 돼서 자른 것이다. 나는 변화를 좋아한다. 앞으로도 끝없이 변화할 것이다. 긴 머리가 내 트레이드 마크였지만 별로 아쉬울 것 없다. 머리는 다시 자라니까. (웃음)
-한국을 비롯해 전세계가 테일러 키치에 대한 관심이 높다. 배우로서 아주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되는데.
=<존 카터: 바숨 전쟁의 서막>과 <배틀쉽>이 전세계가 나를 알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두 영화가 내게는 굉장히 멋진 여정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멋진 여정이 되었으면 좋겠다.
-<배틀쉽>에서 동료로 등장하는 리한나, 아사노 다다노부와의 작업은 어땠나.
=서로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며 일했다. 특히 아사노 다다노부와는 영화 초반의 축구경기 장면을 찍을 때부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존 카터: 바숨 전쟁의 서막> <배틀쉽> 그리고 <세비지스>까지 짧은 시간 동안 세 감독과 작업을 했다. 다른 감독과 피터 버그 감독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프라이데이 나이트 라이츠> 때 처음으로 나에게 기회를 준 사람이 피터 버그 감독이다. 그 이후로 6년 동안 관계를 유지하며 우린 서로에게 신뢰가 생겼다. <배틀쉽> 세트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신뢰가 있기 때문에 촬영할 때 위험이 있어도 감수할 수 있었다.
-만약 다른 감독이 테일러 키치를 캐스팅하기 위해 피터 버그 감독에게 “테일러 키치라는 배우 어때?”라고 물어본다면 그가 어떻게 대답해주었으면 좋겠나.
=“이 배우는 인물의 잠재력을 살리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배우다”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