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매니지먼트 숲(이하 숲)은 전도연을 영입했다. 아니, 전도연이 숲으로 행선지를 정했다. 계약금은 없다. 계약기간 역시 없다. 전도연이 떠나고 싶을 때 언제든지 계약 해지가 가능하다. 몸값 한푼이라도 더 받으려고 ‘밀당’하는 건 일도 아닌 이 바닥에서 대체 그런 게 가능하냐고? 공유, 공효진, 류승범, 정일우 등 소속 배우 전부 전도연과 같은 계약조건으로 숲에 들어갔다면 그건 또 믿어지는가. 이 배우들과 숲의 김장균 대표가 싸이더스HQ 시절부터 함께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해도 앞의 말들이 그리 설득력이 있어 보이진 않는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김장균 대표와 소속 배우들이 ‘돈’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맺어져 있다는 건 분명하다.
김 대표의 ‘사수’가 싸이더스HQ 매니지먼트 전 본부장 박성혜 이사였다. 2001년 “한국사회에서 학연, 지연 없이 능력만 있으면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시작한 일이지만 “술을 못하고 대인 관계가 미숙했던” 당시 그에게 배우들을 관리해야 하는 매니저는 생소함 그 자체였다. “시나리오의 무엇을 보고 무엇을 결정해야 할지도 몰랐다. 유독 예민한 배우들과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현장 매니저로서 처음 맡은 배우는 막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끝내고 <로드무비> 출연을 앞두고 있던 황정민. 김장균 대표는 사수 박성혜 이사로부터 하나부터 열까지 일을 배웠다. 하루 스케줄을 소화하고 집에 돌아와도 쉴 틈이 없었다. 쌓아둔 시나리오를 읽어야 했다. “누구를 알고, 어떤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도 중요하지만 매니저 일의 기본이자 중요한 임무는 결국 작품 결정이다.” 배우들과 작품에 관한 최소한의 대화를 나누기 위해 그는 사무실에 온 시나리오를 닥치는 대로 읽었고, 어떤 작품인지, 어떤 배우에게 어울리는지를 항상 고민했다. 주경야독이었다. 이 습관 역시 박성혜 이사에게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박성혜 이사님은 끊임없이 내게 자극을 주셨다. ‘이거 해!’가 아니라 ‘나는 이렇다고 생각하는데 네 생각은 어떠니’ 같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대화 방법도 그에게서 배웠다. 때로는 내게 결정권을 주기도 하셨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자신의 배우가 무엇을 고민하고 있고, 어떤 성향을 가졌는지 매니저가 알고 있어야 하는 것도 이때 안 사실이다. 황정민 이후 그는 김혜수, 임수정 등 여러 소속 배우들을 성실하게 맡았다. 이때 현재 소속 배우인 공유, 공효진을 만났다.
성급한 감이 없진 않지만 김장균 대표의 지금까지 매니지먼트 생활을 세 시기로 분류해보면 첫 번째 시기가 싸이더스HQ, 두 번째가 N.O.A 때다. 현재 하정우, 지진희 등이 소속해 있는 판타지오의 전신인 N.O.A는 당시 40~50명의 배우를 관리하던 대형 매니지먼트사 중 하나였다. 나병준 대표가 경영을, 김장균 대표가 본부장으로 배우들을 관리했다. 김장균 대표는 당시를 이렇게 추억한다. “모든 게 좋았다. 훌륭한 배우들도 많았고. 다만 스스로 아쉬웠던 게 있다. 배우들이 많다보니 그들의 고민을 일일이 들어주기가 힘들더라.” 배우 한명을 관리할 때와 달리 십수명이나 되는 배우의 말에 모두 귀기울이기는 쉽지 않았다. 월급쟁이처럼 쉽게 갈 수 있었겠지만 꼼꼼한 성격의 그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대로 있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다”고 생각한 김장균 대표는 회사를 나가기로 결심했다. 그 얘기를 들은 공유, 공효진, 정일우가 김 대표를 따라 나와 숲에 합류했다. 그게 지난해 4월이었다. “고마웠다. 줄 수 있는 계약금도 한푼 없는데 배우들이 왜 따라 나온 것 같냐고? 음…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이 친구들에게 거짓말을 한번도 안 한 것 같다.” 비슷한 시기에 오랫동안 소속사가 없던 류승범도 합류했다. “N.O.A 때 (류)승범이의 에이전트를 한 적 있다. 숲을 차렸다는 소식을 듣고 승범이가 함께하기로 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지만 모든 것을 일일이 결정해야 하는 대표의 자리에 오른 김장균 대표는 “특별히 변한 건 없다”고 한다. 숲은 당분간 5명의 배우만 관리할 계획이다. 대형 매니지먼트사에 있으면서 배우들이 많은 게 결코 효율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양보다 질을 추구한다. 5명은 배우들의 고민을 직접 귀기울일 수 있고, 해결할 수 있는 숫자다. 당분간 5명으로 운영해본 뒤 자리가 잡히면 1~2명 정도 추가 영입할 것이다. 6~7명 선이 가장 적당한 것 같다. 가족처럼 운영하고 싶다.” 몸집을 키우고, 시스템화되어가고 있는 산업 분위기에 역행하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김장균 대표는 이렇게 대답한다. “매니저의 본분에 집중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숲은 그걸 충실히 할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잘하는지 잘 안다.” 진정 배우를 아끼고 기본에 충실한 대답이다.
배우들이 말하는 김장균 대표
“자신을 더도 덜도 없이 내놓을 줄 아는 자신감과 정직함 때문에 주저없이 그를 선택했다. 그냥 그를 존중하고 지지하고 믿을 것이다.”(전도연) “적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이 필드에서 그를 싫어하는 사람을 본 적 없다. 매사가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지만 안경 너머로 보이는 웃음 띤 매서운 눈빛은 기분파인 나를 종종 긴장하게 한다.”(공효진) “어떤 매니저가 <도가니>를 쉽게 허락하겠는가. 지나치게 상업적인 걸 좇기보다 배우의 감성을 이해하려고 한다. 그게 장점이자 단점인데, 요즘 내가 바쁜 걸 보면 없던 돈 욕심이 생긴 것인지도. 하하.”(공유) “때로는 친형 같고, 때로는 인생의 선배 같다. 덕분에 장균이 형으로부터 많이 배운다.”(정일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