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영상원 선후배가 모여서 멀티플레이
2012-05-10
글 : 이영진
김동욱, 오만석, 김고은 등이 소속된 장인엔터테인먼트 장재용 대표

장재용 대표는 처음엔 인터뷰를 거절했다. 나설 자리가 아니라고 했다. 경험이 일천하고, 성과도 미미하다고 했다. 가까스로 설득해서 인터뷰를 성사시키긴 했지만 그의 첫마디는 여전히 ‘민망하다’였다. ‘아직 멀었’고, ‘이제 시작’이라는 말을 몇번이고 반복했다. 그의 겸손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다른 매니저들과 달리 그는 대형 매니지먼트 회사에서 일한 적이 없다. 2006년에 이선균, 이요원, 천정명, 박예진 등이 소속된 J&H필름에 몸담긴 했지만 1년6개월 만에 그만뒀다. 현재 A급 톱스타를 거느리고 있는 것도 아니다. 장 대표가 2008년에 만든 장인엔터테인먼트의 소속 배우는 모두 10명. 이중 이름이 알려진 배우는 김동욱, 오만석, 정찬, 박탐희, 이희준, 김고은 정도다. 장 대표는 “아직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에 소속된 상태도 아니”라면서 “누가 (인터뷰를 보고) 흉볼까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굳이 왜?

배우와 매니지먼트는 상리공생한다고 하나 이해관계가 한번 뒤틀리면 철천지한이다. 장인엔터테인먼트는 그런 점에서 특이한 곳이다. 전속 관계가 아닌 배우들까지 챙기는 매니지먼트사가 있을까. 다른 둥지를 찾아 떠났던 배우가 심지어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가끔 회사 맞나 싶을 때가 있다. 그게 우리 장점이자 단점이다. (웃음)” 장인엔터테인먼트 소속 배우들 대부분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 출신이다. 장 대표 역시 같은 과에서 연기를 전공했다. 회사라기보다 동아리처럼 느껴지는 것도 그래서다. “연극원 내에 사조직이 하나 있었다. 노페이먼트(No Payment)라고, 이선균, 오만석 선배가 주축이었다. 술모임이었냐고? 틀린 말은 아니다. (웃음) 처음엔 서로의 연기를 모니터해주기 위해 만들었다. 배우가 필요한 영상원 학생들이 구내식당에서 서성일 때 우리가 앞장서서 다리를 놔주기도 했다. 주먹구구였지만 일종의 매니지먼트였다.”

장 대표가 곧장 매니저로 변신한 건 아니다. 허종호 감독(<카운트다운>)의 단편 <승부>(2002)에서 권투선수 홍수환 역할을 맡았던(<씨네21> 318호 씨네스코프) 그가 배우에서 매니저로, 꿈의 항로를 선회하기까진 꽤 시간이 걸렸다. “졸업하고 교수님들이 연극하라고 했을 때도 ‘저, 영화하겠습니다’ 그랬다. 마침 출연하기로 한 장편영화도 있었고. 그렇게 몇년을 기다렸는데 결국 영화가 엎어졌다. 중간에 오디션을 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조금씩 깨달았다. 난 멍석 깔아주면 잘 못하는 스타일이구나. 배우하면 안되겠구나. (웃음)” 선후배들 데리고 매니지먼트사를 해보라는 권유를 여러 차례 받은 것도 이 무렵이다. 하지만 가진 건 인맥뿐이었다. 이선균의 제안으로 J&H필름에 들어가 체계적으로 매니저 일을 배우려고 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회사가 와해됐다. “(김)동욱이랑 나랑 덩그러니 남았는데 별수 있나. 직접 회사를 차리는 수밖에.”

처음 사무실을 차린 곳은 성수동에 있는 한 원룸이었다. 말이 사무실이지, 실은 장 대표의 숙소였다. 당시 장 대표와 함께했던 김동욱의 말에 따르면, 사무실엔 “책상 3개가 전부”였다. 휴식을 취하기도 뭣한 공간이었지만 한예종 연극원의 후배들은 코딱지만한 원룸을 아지트 삼았고, 장 대표 역시 졸업한 학교를 수시로 들락거리며 무대 위에 선 재능을 발견하는 데 몰두했다. 최근 <은교>의 은교 역으로 주목을 받으며 데뷔한 김고은 역시 부지런을 떨지 않았다면 놓쳤을 재목이다. “학기 말 공연 때 연기하는 걸 보게 됐는데, 여리고 연약해 보이는 이미지와 달리 굉장히 센 밑바닥 여자 역할을 잘해내더라. 아직 2학년이라 어설픈 구석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집중력을 발휘해 잘 넘어가고. <은교>의 스탭으로 일했던 후배가 마땅한 배우가 없다며 은교 역에 어울릴 만한 배우들을 추천해달라고 했을 때 일단 김고은부터 보고 이야기하라고 했다.”

하지만 지난 4년을 돌이켜볼 때 장 대표는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고 잘라 말한다. “매니저의 역할이 뭔가. 배우를 서포트해야 하는데, 중요한 건 다른 위치에 서서 도와야 한다는 점이다.” 연기를 전공했다는 이력은 초기에는 외려 걸림돌이 됐다. “촬영장에 가면 배우들이 불편해했다. 특히 후배들이 그랬다. 회사 대표 이전에 학교 선배이다 보니 일일이 자신의 연기를 품평한다고 오해했다.” 이런 종류의 딜레마는 지금까지도 계속 진행 중이다. “한 배우가 어떤 작품으로 주목받았다고 치자. 다른 회사였다면 다음 작품을 정할 때 다각도로 따져볼 것이다. 그런데 난 배우를 포장하는 스킬이나 노하우가 부족했다. 주로 배우의 편에서 선택을 했고, 그래서 도약의 기회를 적절하게 제공하지 못했다.” 체질 개선은 이미 시작된 듯하다. 타 학교 출신 배우들에 대한 관심을 늘리고, 실력만큼이나 잠재력도 눈여겨보겠다는 다짐도 하고, 경험 많은 매니저들을 영입하는 걸 보면 말이다.

그렇다고 앞으론 깜짝스타 만드는 데 몰두하고, 수익만 좇겠다는 의지는 아닌 듯하다. “열린 배우들과 같이 일했으면 좋겠다. 눈앞의 이익을 안 볼 순 없다. 하지만 길게 내다볼 수 있는 여유가 없다면 그런 욕심은 결과적으로 독이 된다.” 그에게 연극무대는 단지 출발점이 아니다. 배우들의 산실이고, 모태다. “무대는 배우들에게 훈련의 장소일 수도 있고, 재충전의 장일 수도 있고, 새로운 수익창출의 장일 수도 있다.” 실제로 장인엔터테인먼트 소속 배우들은 “돈이 안된다”는 이유로 무대를 경원시하지 않는다. 소속 배우들끼리 뭉쳐 연극을 올릴 계획도 있다. “중심점은 이동할 수 있지만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앞으로 더욱 성장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매니지먼트 산업의 미래는 밝지만, 해결해야 할 숙제 역시 많다.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배우는 멀티플레이어다. 경계를 넘나들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를 길러낼 수 있는 내부 시스템을 고민 중이다.”

김동욱이 말하는 장재용 대표
“동문 축구 동아리에서 만났다. 대학 1학년 때 봤으니까 벌써 10년이 다 된 사이다. 그때도 지금처럼 붙임성 좋고 분위기를 이끄는 형이었다. 형이 아니었다면 영화쪽에 관심을 갖고 오디션을 보러 다니지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는 영화할 생각이 전혀 없었으니까. 실제로 배우가 하고 싶은 것 하게 해주고, 배우가 원치 않는 선택을 해야 할 때는 나서서 막아주고. 무슨 말을 하든지 소통이 되고 공감이 된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물론 배우로서 나도 그렇고 매니저로서의 형도 아직 완성형은 아니다. 그래서 때론 실수도 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서로 의지하고 갈 수 있다. 이 작품을 왜 해야 하고, 이 작품을 왜 해선 안되는지에 대한 형의 의견을 수긍할 수밖에 없는 것도 그런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바라는 거? 건강했으면 좋겠다. 형! 이참에 축구나 한번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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