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혹독한 선생님. 오디션 프로그램 <일요일이 좋다-K팝스타> 속 박진영의 모습이다. 다른 심사위원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을 때에도, 박진영은 ‘진심’을 지적하고 ‘공기 반, 목소리 반’을 강조하며 지원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오는 7월이면 그는 <5백만불의 사나이>의 신인배우로서 관객의 거침없는 심사평을 듣게 될 거다. 문득 짓궂은 질문이 떠올랐다. 박진영은 스스로의 연기에 어떤 점수를 매기고 있을까. “음… 75점? 어떤 친구가 무대 위에 올라와서 아직 실력은 부족하지만 진심을 다해 불렀을 때 75점을 줄 것 같다. 나도 아직 (연기에 대한) 기술적인 부분은 하나도 모르지만 절실하게 감정을 실어 연기했다.”
<5백만불의 사나이>의 최영인은 박진영의 반대말 같은 캐릭터다. 직장 상사에게 충성하고, 로비를 위해 국회의원들과 기자를 ‘모시며’, 가끔은 친구와 조촐하게 술잔을 기울이며 스트레스를 푸는 대기업 회사원. 자유와 즐거움을 모토 삼아 살아온 엔터테이너 박진영이 이제껏 의식적으로 피해온 길이다. 하지만 영인은 박진영이 “친구였거나 후배였거나 선배였다면 너무나 사랑했을” 인물이란다. “평소 굉장히 액티브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편이지만 내게도 혼자 생각을 많이 하고 감정을 온전히 드러내 보이지 못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에게 마음이 가고. 영인이 그렇다. <드림하이> 촬영과 겹쳐 걷기만 해도 몸이 아플 때였는데, 영인이만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렇다고 엔터테이너로서의 ‘끼’를 포기하는 건 아니다.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박진영을 염두에 뒀다는 천성일 작가는 막간의 장면 장면마다 대중이 잘 알고 있는 박진영의 모습을 실마리처럼 남겨놓았다. “인간 박진영을 어느 선까지 보여줄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 것 같더라. 내게도 의견을 물어보기에 한두번은 진짜 박진영이 떠오르는 행동을 해도 되겠다, 다만 내가 어떻게든 영인으로 다시 돌아오도록 열심히 연기하겠다고 했다.” 영인이 박진영으로 돌아올 때마다 현장이 웃음바다가 됐다니 유머의 기술은 이미 검증받은 셈이다.
곡을 쓸 때에도 “스토리와 영상을 먼저 구상해야 악상이 떠오르는” 박진영에게, 특정 상황과 감정에 몰입하는 연기의 프로세스는 음악과 비슷한 쾌감을 줬다. 그러나 진심을 담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진심처럼 연기해야 하는 건, 지금 막 배우로 한발을 내디딘 박진영의 장기 과제다. “스탭의 주먹을 보며 마치 사람을 대하는 양 연기해야 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노래할 땐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이니까. 날 도와주겠다고 혼자 있는 신에서 배우들이 카메라 뒤나 시선 자리에 서주었는데, 얼마나 미안하고 고맙던지.” 영하 18도의 날씨에도 얇은 의상을 입고 카메라 뒤에서 함께 연기한 조성하에 대한 미안함을 얘기하며 박진영은 “큰 민폐를 끼쳤다”고 했다. 신인배우라면 으레 경험하는 미안함과 고마움, 깨달음의 과정을 그는 지금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이벤트성으로 영화에 반짝출연한 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건 박진영식 스타일이 아니다. 드라마 <드림하이>와 영화 <5백만불의 사나이>로 영상 제작에 뛰어든 만큼 JYP엔터테인먼트의 수장으로서 그는 “스타일리시하고 리듬감이 좋은” 영화 아이템을 기획하거나 찾고 싶은 생각이 크다. 그의 이상향은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 1편과 강형철 감독의 <써니> 같은 작품이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영화의 ‘맛’을 보기 전에 그가 맛보고 싶은 전채 요리도 있는 것 같다. “<건축학개론>으로 올해 수지가 신인상을 다 타버려서… 나도 괜히 부담이 되더라. 나도 신인상 하나 정도는 타야 하는 거 아닐까? (웃음)” 이상이 수지와 경쟁하는 신인배우, 박진영의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