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민효린] 욕심쟁이 우후훗, 민효린
2012-06-18
글 : 이주현
사진 : 최성열

<써니>의 촬영장에서 민효린을 만난 적이 있다. 붓으로 그린 듯 오똑한 콧날 때문일까. 새침한 듯 무심한 표정에 틈틈이 끼어드는 천진한 웃음 때문일까. 그녀에겐 주위의 시선을 오래도록 붙잡아두는 매력이 있었다. <써니>의 수지가 그런 인물이었다. 민효린은 그저 강형철 감독이 시키는 대로 수지가 되었다. 그런데 그날 촬영장에서 민효린은 눈물을 흘렸다. 연기가 아니었다. 신기하게도 꼭 1년 반이 지나서, 그 울음의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써니>의 수지는 연기를 못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캐릭터였어요. 강형철 감독님은 수지에게서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그게 너무 어려웠어요. 저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울기도 했고. 그때 그 현장에서.” <써니>는 민효린의 첫 영화다. 첫 영화의 기억이 민효린에겐 아직도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써니>로 자신감을 얻은 그녀는 1년 반 동안 쉴 틈 없이 세편의 작품을 찍었다. 드라마 <로맨스 타운>에선 똑 부러지는 가사도우미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2012년 개봉예정)에선 서빙고털이의 일원인 해녀로, <5백만불의 사나이>에선 깡패들에게 쫓기는 불량소녀 미리로 분한다. 미리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갈 때 필요한 악기를 사기 위해 원조교제를 시도하고, 원조교제에서 만난 어른의 소지품을 털고, 결국 그것이 화근이 돼 영인(박진영)과 함께 도망자 신세가 되는 인물이다. “미리에겐 수지의 모습이 반쯤 섞여 있어요. 수지가 고급스러운 느낌이 나는 날라리 학생이라면 미리는 정말 순수한 날라리예요. 좀더 날티난달까. (웃음)” 민효린의 목소리는 ‘날티나는’ 미리 캐릭터를 돋보이게 만드는 훌륭한 도구였다. “소리를 지를 때 목소리가 한번씩 갈라지는데, 감독님이 그 목소리를 좋아하셨어요. 보통 여배우들은 목소리를 곱게 내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면서.” 민효린은 자신의 앳된 목소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적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작품을 거치면서 “캐릭터에 따라 목소리가 이렇게 변할 수도 있구나” 하는 걸 터득했단다.

영화 속 유일한 홍일점인 그녀에게 김익로 감독은 “무조건 예뻤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는데, 민효린은 자신에게 주어진 몫 그 이상을 소화해내려고 부단히 애썼다. “대본 리딩 때 미리가 어떤 인물이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하잖아요. 그런데 전 1/3은 촬영 전에 얘기하고, 2/3는 현장에서 얘기해요. 현장에서 내가 직접 걸어보고 누워보고 굴러본 다음에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본인 촬영이 없는 날에는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대본 얘기를 좀더 했으면 좋겠습니다” 하고 감독을 괴롭히기 일쑤였다. 아이디어 뱅크로서 장면장면 재밌는 대사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연기 파트너 박진영도 이런 민효린의 모습이 사랑스럽지 않았을까. “박진영 선배님이 엄청 챙겨주셨어요. 제가 사교성이 없는데, 저의 성격적 결함을 고쳐주려고 애쓰셨죠. 유기농 과일도 챙겨주시고. 뭔가 관리받는 느낌? (웃음)” 재밌게도 민효린은 데뷔 전 JYP의 연습생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보면서 가수의 꿈을 품었고, 데뷔 준비를 하면서 연기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광고 모델로 얼굴을 알리고, RinZ라는 이름으로 음반을 내고, 드라마 <트리플>로 주위의 부러움을 사며 배우 신고식을 치르게 된 과정은 언뜻 노력이 아닌 ‘행운’으로 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민효린은 넘치는 끼와 근성으로 차곡차곡 팔방미인 민효린의 모습을 다져가고 있었다.

스스로도 욕심이 많다고 했다. “뮤지션으로서의 모습, 배우로서의 모습, 다 보여주고 싶어요.” 그러나 음반을 내는 게 “작은 소망”이라면 연기는 “메인”이다. “영화에선 민효린 하면 떠올릴 수 있는 뻔한 역할 말고 과감한 역할에 도전하고 싶어요.” “서른살의 민효린”이 기다려진다는 그녀, 자유롭고 과감하게 행동반경을 넓히고 싶다는 이 배우의 미래가 궁금하다.

스타일리스트 고민정·헤어 한수화·메이크업 장혜정·의상협찬 bebe, 블랙뮤즈, 살바토레 페라가모, 뮈샤, 브랜드 애비뉴, 슈즈윈, 아이잘 컬렉션, NOHKE.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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