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부트다. 모든 걸 무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다. 마크 웹 버전에 대해서 분명한 건 지금껏 본 <스파이더맨> 시리즈 중 가장 서정적인 액션블록버스터란 점이다.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는 평가다. 피터 파커의 고교 시절을 중심으로, 그의 부모의 비밀, 그리고 첫사랑 그웬 스테이시와의 관계가 새롭게 부각된다. 좁은 마천루 사이를 횡단하는 스파이더맨의 몸놀림은 보다 유연해졌고, 마치 관객이 거미줄에 매달린 듯 고안된 시점숏은 시리즈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여지를 안겨준다. 감성과 액션 사이, 직접 만난 그는 좀더 장난기 많고 유머러스한 면모였다. 자신의 트위터에 한글로 ‘서울로 향하고 있습니다’라고 멘션을 올리더니,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아이폰을 꺼내 기자를 찍는다. 좀더 여유있고 쾌활해진 하이틴 피터 파커가 탄생한 이유를 알 것 같았던 그와의 만남이다.
-이름이 벌써 운명적으로 얽혀 있었다 싶다. 마크 웹(Webb)에서 철자 하나만 빼면 거미줄(Web)이다.
=스파이더맨을 제안받고 이름을 바꿨다. (웃음) 단지 이름뿐만 아니라 다른 것 때문에 나를 감독직에 고용했기를 바란다.
-<500일의 썸머> 같은 감성적인 멜로를 연출한 감독이 샘 레이미를 밀어낸 건 분명 팬들에겐 원성을 살 일이었다.
=샘 레이미 같은 멋진 감독을 잇는다는 건 굉장히 겁나는 일이다. <스파이더맨> 원작은 5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다른 작가, 다른 만화가, 삽화가들이 여러 가지 이야기를 창조해왔다. 영화 역시 그런 게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좋은 선례가 되리라 생각한다.
-리부트라고 하지만, 사실 새로움 측면에서는 파격적인 면모가 크진 않다.
=지금까지 보여지지 않았던 중요한 것들이 이번 시리즈에 전개된다. 피터 파커의 부모에 대한 이야기가 있고, 피터 파커의 첫사랑 그웬 스테이시가 등장한다. 21세기에 보여줄 수 있는 스파이더맨의 가장 컨템포러리한 버전이라고 생각한다.
-블록버스터 액션영화는 이제 엄청난 각축전의 세계다. 본인이 생각하는 도전지점과 강점은 어떤 것이었나.
=워낙 액션영화의 팬이었다. <500일의 썸머>는 소소한 감정을 다루는 영화라 촬영 때도 액션영화를 찍고 싶어 안달이 났었다. 사실 난 이 영화를 하는 게 경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조스 웨던이나 크리스토퍼 놀란 같은 감독은 나보다 더 잘생겼고 옷도 더 잘 입고 더 똑똑하다. 그 부분에선 내가 완전히 패배다. (웃음) 하지만 스파이더맨은 내가 잘 그릴 수 있는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한때 소년기를 거친 것처럼 그 역시 수줍음도 많고 숙모가 시키는 심부름도 해야 하는 평범한 아이다. 스파이더맨이 공중을 날고 악당들과 싸울 수 있는 자연스럽고 현실적인 토대를 만들어줄 때, 스파이더맨의 인간적 면모가 부각되고 공감이 더 커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더 강한 블록버스터가 대세인데, 사실적인 블록버스터라면 자칫 심심해질 위험도 고려해야 했겠다.
=내가 생각하는 액션은 스토리를 진행하거나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액션이어야 했다. 예를 들어 윌리엄스 버그교가 리자드에게 점령당한 장면 같은 경우, 단순히 액션 신이 아니라 이를 통해 피터가 자신의 힘에 더 큰 목적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게 액션의 역할이자 관객이 반응할 수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영화의 액션 신의 경우, 관객을 스파이더맨의 시점으로 보여주는 1인칭 시점숏을 시도함으로써 기존 시리즈와 차별화했다.
=스파이더맨이 보고 경험하는 것을 관객도 똑같이 느끼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스파이더맨의 머리에 카메라를 부착했다. 관객이 피터 파커와 스파이더맨에게 감정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영화를 보면서 신체적으로도 반응하길 바랐다.
-리자드는 악당이라기보다는 지킬 앤드 하이드 같은 고뇌하는 인물이다.
=피터 파커와 커트 코너스는 비슷한 면이 있다. 피터 파커가 도덕적인 면에서 코너스보다 좀더 강하다고 할 수 있고, 코너스는 그 부분에서 조금은 취약하다. 자기 자신만을 위해 힘을 사용할 때 어떤 비극을 맞이하게 되는지, 관객이 악당에 동정하고, 그가 왜 무너지게 되는지를 이해하길 바랐다.
-앤드루 가필드가 연기하는 피터 파커는 복잡다단한 청소년기를 잘 표현한다.
=어린 시절 부모와 헤어진 소년은 두려움과 좌절을 가질 수밖에 없는 복잡한 감정선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앤드루 가필드는 감정적인 부분의 무게를 잘 다룰 줄 아는 배우다. 게다가 그는 유머러스한 면도 갖추고 있다. 액션 신 역시 많은 부분 배우가 해내길 원했는데, 그 부분도 훌륭히 해내주었다.
-<500일의 썸머>에서 보여준 소소하고 디테일한 감정과 블록버스터의 결합으로 초특급 블록버스터연애물로서도 기능한다.
=(웃음) 정말 재밌는 해석이다. (웃음) 멜로는 <스파이더맨> 시리즈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스파이더맨을 정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작품은 스케일이 거대하고 액션 신도 많아서 전작과 다르거나 아예 상반되는 작품이라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나는 관객이 액션 신을 즐기기 위해서는 캐릭터와 더 공감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