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라는 동네는 매년 희한한 사건이 많이 벌어지는 동네다. 만약 2012년 할리우드의 가장 희한한 사건을 선정해야 한다면 <지.아이.조2>의 개봉 연기 사태는 리스트의 상위권에 들어가야 마땅하리라. 영화사 파라마운트는 올해 6월29일 개봉예정이던 <지.아이.조2>의 개봉일을 개봉 한달 전 갑작스럽게 2013년 3월로 연기했다. 영화사는 3D 변환에 걸리는 시간 때문이라고 했지만 그 동네 언론들이 캐낸 진짜 이유는 다른 것이었다. 속편에서는 카메오 수준으로 출연한 1편의 주연 채닝 테이텀의 분량을 늘리기 위해서였다.
이쯤되면 우리는 파라마운트 중역들이 내부 시사를 마친 뒤 벌였을 법한 난상토론을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채닝 테이텀이 나오자마자 죽는 이유가 뭐지? 뭐, 2편의 주인공은 드웨인 존슨이랑 브루스 윌리스라고? 도대체 채닝 테이텀 분량을 왜 이렇게 축소한 거야? 2편을 기획할 땐 별로 유명한 배우가 아니었다고? 당신들 다 잘리고 싶어? 당장 채닝 테이텀 불러서 영화 다시 찍어!’ 생각해보시라. 2012년의 채닝 테이텀은 드웨인 존슨과 브루스 윌리스를 모두 합쳐도 당해낼 재간이 없는 스타다. 올해 초 개봉한 <서약>과 <21 점프 스트리트>가 각각 1억달러 이상의 블록버스터급 수익을 올렸다. 박스오피스 분석가들은 이게 다 채닝 테이텀 덕분이라고 했다. 스티븐 소더버그의 남자 스트리퍼 영화 <매직 마이크> 예고편이 등장하자 유튜브는 리비도와 페로몬으로 끓어올랐다. 그는 지금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 중 한명이다. 파라마운트가 어마어마한 광고비용을 허공에 뿌린 채 수천만달러짜리 블록버스터의 개봉을 1년이나 미룰 정도로 말이다.
크고 육중한, 미국적인 몸의 배우
사실 할리우드의 채닝 테이텀을 향한 호들갑은 한국 관객에게 조금 낯설지도 모르겠다. <지.아이.조: 전쟁의 서막>을 제외하면 그의 영화들은 한국시장에서 큰 빛을 발한 적이 없고, 올봄의 슬리퍼 히트작 <21 점프 스트리트>는 아직 개봉조차 하지 않았다. 게다가 채닝 테이텀의 가장 큰 매력인 ‘몸’은 한국 관객이 사랑하기에는 지나치게 크고 육중하다. 그는 미국인들이 사랑하는 비프케이크(Beefcake: 남자 핀업 모델들을 일컫는 말)의 전형이다. 하이틴 로맨틱코미디에 성질 나쁜 금발 치어리더의 머리 나쁜 쿼터백 남자친구로나 등장하면 딱 좋을 인상이랄까. 채닝 테이텀의 영화 데뷔작이 고등학교 농구팀 이야기인 <코치 카터>(2005)고, 처음으로 주연을 맡았던 <쉬즈 더 맨>(2006)이 고등학교 축구선수들의 이야기라는 건 또 얼마나 그럴싸한가 말이다. 채닝 테이텀을 스타로 밀어올린 <스텝업>(2006) 역시 오로지 테이텀의 몸과 몸의 움직임을 위해 만들어진 영화였다.
몸 하나로 배우가 되는 건 가능하다. 몸 하나로 일급 스타가 되는 건 불가능하다. 80년대라면 가능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채닝 테이텀이라는 배우의 진귀함은 얼굴과 몸의 불일치에서 나온다. 그는 이를테면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몸에 유약한 소년의 얼굴을 가진 남자다. 육중한 몸을 갖고서도 소녀들의 가슴을 찢어발기는 달콤한 로맨스영화의 주인공을 맡을 수 있는 이유도 그 덕분이다. <서약>에서 그는 교통사고로 결혼의 기억마저 잃어버린 아내의 마음을 되돌리려 애쓰는 남자를 연기하고, <디어존>에서는 여대생과 편지로 사랑을 주고받는 군인을 연기한다. 니콜라스 스파크스(<노트북> <워크 투 리멤버>)의 달달한 세계 속에 그는 더없이 잘 어울린다. 오히려 액션영화에서 그는 거대한 몸을 하고서도 이상할 정도로 유약해 보이고, 그 유약함은 채닝 테이텀이 근육질의 액션 배우 이상의 것을 할 수 있는 근사한 완충장치로 작용한다.
게다가 채닝 테이텀에게는 근육처럼 활발하게 움직이는 두뇌가 있다. 그는 전략적으로 <디어존>과 <서약> 같은 영화를 선택했다고 말한다. “내가 최고의 배우가 아니라는 건 잘 안다. 나는 연기 학교에 간 적이 없다. 그러니 이야기와 필름메이킹, 캐릭터에 대한 내 지식은 현장에서 나온다. 그래서 <서약>에서는 레이첼 맥애덤스에게 배우고 싶었고, <디어존>에서는 라세 할스트롬에게 배우고 싶었다.” 액션영화와 로맨스영화 사이에 그는 (한국에는 전혀 소개되지 않은) 인디영화들에도 출연했는데, 그 리스트는 꽤 의미심장하다. 군복무 기간을 마친 병사들을 강제로 재복무시키는 미군의 조항을 다룬 킴벌리 피어스의 <스톱 로스>와 1999년 시애틀 WTO회의 반대 시위를 다룬 <시애틀 전투>(Battle in Seattle)는 채닝 테이텀이 정치적 소신을 위해 참여한 영화들이다. “내가 너무나도 일해보고 싶은 감독의 영화가 아니라면, 직접 제작하지 않는 영화들에는 더이상 출연하고 싶지 않다. 시작단계부터 함께 창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더이상 흥미가 없다”고 말하는 채닝 테이텀은 아이언 호스 엔터테인먼트라는 제작사를 차려서 르완다 대통령 폴 카가메에 관한 다큐멘터리 <유리로 만든 땅>(Earth Made of Glass)을 만들기도 했다. 그의 두뇌는 그의 육체만큼 섹시하다.
영화적으로 말하자면 그는, 남자다
채닝 테이텀이 직접 제작하고 글을 쓰고 출연한 신작 <매직 마이크>는 19살의 나이로 남성 스트립 클럽에서 댄서로 일했던 실제 경험을 다룬 영화다. 그는 자신의 과거와 육체를 관음증의 대상으로 활용하는 게 거리낌이 없는 데다가 그 관음증의 향연을 스티븐 소더버그 같은 감독의 손에 맡길 줄도 안다. 소더버그는 테이텀을 “조지 클루니, 맷 데이먼, 브래드 피트와 같은 퀄리티를 가진 배우”라고 표현한다. “명확한 시각, 열정적 노력, 남성다움에 있어서 그러하다. 그는… 남자다. 이보다 더 나은 단어가 있으면 좋으련만 어쨌거나 영화적으로 말하자면 그는, 남자다.” 채닝 테이텀은 “누구도 나에게 변호사 역을 맡기려 하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증명해야 할 게 많다”고 말한다. 만약 지구상에서 가장 섹시한 변호사가 나오는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그건 당연히 채닝 테이텀이 몫이 되어야 한다. 그가 판사와 배심원의 마음을 얻기 위해 셔츠를 풀어헤치고 법정에서 허리를 흔든다 해도, 우리는 그것이 정당한 최후 변론의 방식이라고 믿어버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