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아르고] 미친 대탈출극? 톡 쏘는 정치 스릴러!
2012-10-29
글 : 안현진 (LA 통신원)
벤 애플렉 감독•주연, 조지 클루니 제작 프로젝트 <아르고>

<아르고>는 텔룰라이드영화제, 토론토국제영화제,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를 거쳐 지난 10월12일 미국에서 개봉했다. 첫주 성적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각종 영화제에 공개된 이래 2013년 오스카 후보로 강력하게 언급되는 중이다. <곤 베이비 곤> <타운>에 이어 안정된 연출을 보여준 벤 애플렉과, 극중 토니 멘데즈의 상관을 연기한 배우 브라이언 크랜스턴을 9월의 마지막 날에 만났다. 각본을 쓴 크리스 테리오와 <와이어드>에 기사를 쓴 조슈아 버먼과 가진 인터뷰도 전한다. 그리고 세편만으로 배우에서 감독으로 자리매김한 벤 애플렉에 대한 짧은 글도 함께 덧붙인다.

2007년 5월 조슈아 버먼이 <와이어드> 매거진에 기고한 ‘The Great Escape’라는 기사는, 어둠 속에 묻혀 있었던 30여년 전의 영화 같은 이야기를 전한다. 1979년 11월4일, 주 이란 미국대사관 직원들은 거리에서 들려오는 미국을 성토하는 구호 등을 들으며 그날이 여느 날과 다르리라는 걸 직감하고 있었다. 1979년 1월, 미국이 친미 독재정치를 펼친 팔레비 이란 국왕의 망명을 허락한 뒤로 시작된 시위는 날이 갈수록 거세지는 중이었다. 그날 아침, 테헤란의 미국대사관 앞을 가득 메웠던 시위대는 대사관 건물을 점령하고 대사관 직원과 미국인 52명을 인질로 붙잡았다. 이때 붙잡힌 인질들은 1981년 1월까지 444일 동안 억류됐다. 한데 그날 아침, 극적으로 대사관 건물을 탈출해 캐나다 대사관저에 10주 가까이 숨어 지낸 미국인 6명이 있었다. 이들은 이듬해인 1980년 1월27일, CIA가 ‘할리우드 작전’이라고 불렀고, 민간에는 ‘캐나디안 케이프’(Canadian Cape)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작전을 통해 혁명군의 감시망을 뚫고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당시 재임 중이던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이 작전에 대한 세부사항을 기밀로 분류했고, 여전히 이란에 억류되어 있던 52명의 인질들에 대한 염려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없었던 이 탈출 작전은 약 17년이 지난 1997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기밀해제했고, 그로부터 10년 뒤인 2007년 <와이어드>에서 기사화하여 세상에 알려졌다. 벤 애플렉의 세 번째 연출작이자 그가 주연을 맡은 영화 <아르고>는 30여년 전 일어났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옮긴 정치스릴러다.

이것은 실화다

워너브러더스가 1980년대에 실제로 사용했던 스튜디오 리더 필름으로 문을 여는 <아르고>는 1970년의 이란 정세가 기록된 다큐멘터리 영상과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조금은 교육적인 프롤로그를 통해 긴박했던 당시의 상황을 전달하며 시작한다. 사실 <아르고>의 프롤로그는 중동이 무대인 여느 정치 스릴러들의 오프닝을 떠올리면 비교적 자세하고 공정한 편인데, 특히 정도를 달리할 뿐 지속되어온 이란과 미국의 불화를 감안한다면 민감한 주제에 편파적으로 접근하지 않으려는 감독의 의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가까스로 대사관을 빠져나온 미국인들이 몸을 숨기는 11월4일 아침의 상황과 본국에서 상황을 전해 들은 CIA가 세우는 ‘할리우드 작전’, 그리고 작전의 실행이다.

‘할리우드 작전’이란 이렇다. 캐나다 대사관저에 숨어 지내는 6명에게 캐나다인 위장신분을 주고 이란 공항을 통해 미국으로 데려오는 것으로, 이들의 위장신분이 할리우드 스튜디오를 위해 일하는 제작팀이었기 때문에 ‘할리우드 작전’이라는 작전명이 붙었다. 영화에서 농담처럼 “나쁜 작전 중에서는 최고”(Best bad idea)라고 일컬어지는 이 작전의 중심에는 당시 38살이었던 14년차 CIA 요원 토니 멘데즈(벤 애플렉)가 있었다. 애초에 멘데즈가 제안한 이 위장작전은 고려대상이 아니었으나, 농작물이 자라지 않는 이란의 1월에 과학자의 신분을 줄 수도 없었고, 영어교사들이 그때까지 이란에 남아 있었다고 하기에도 의심의 구석이 많았다. 그렇게 실행할 수 없는 여러 아이디어들이 나오던 중 차악으로 선택한 것이 이 작전이었다. CIA에서 은퇴한 뒤에 <The Master of Disguise: My Secret Life in the CIA>라는 자서전을 쓰기도 한 토니 멘데즈는 이전까지 100명이 넘는 CIA 정보원들을 위험한 상황에서 구해낸 이력을 가진 ‘신분위장’과 ‘탈출’의 전문가였다.

CIA와 할리우드의 기상천외한 연합작전

영화 제목이기도 한 <아르고>는 영화 제작진이라는 위장신분을 뒷받침하기 위해 CIA와 할리우드가 함께 준비한 가짜 영화의 타이틀이다. 할리우드 스튜디오들로부터 채택받지 못해 돌고 돌던 영화 속 <아르고> 각본에 따르면, <아르고>라는 가짜 영화는 터키, 이란 등 중동이 연상되는 이국적인 풍광을 배경으로 하늘을 나는 카펫을 탄 에일리언들이 총격을 벌인다는 SF액션영화였고, CIA는 캐나다 필름 스탭으로 위장한 미국인들이 이란으로 로케이션 헌팅을 갔다고 이야기를 꾸며냈다. 7명의 목숨이 걸린 만큼 추호의 의심도 용납할 수 없었기에, 가짜 영화 <아르고>의 제작에는 걸출한 이름도 따라붙었다. <혹성탈출> 시리즈와 <미션 임파서블>의 분장을 담당한 할리우드의 메이크업 아티스트 존 체임버(존 굿맨)가 그 주인공이다. 준비기간은 짧았지만 준비는 철저했다. 단 4일 만에 제작사 사무실까지 차릴 정도였으니, 준비가 어느 정도로 철저했는지는 2012년인 지금에도 확인이 가능하다. 1980년 1월, <버라이어티>에는 가짜 영화 <아르고>에 대한 짤막한 기사가 보도됐고, <할리우드 리포터>에는 <아르고>에 대한 한 페이지짜리 지면광고가 실렸다. 그 광고는 “우주의 대화재”라는 태그라인을 달랑 한줄 달고 있을 뿐 감독이나 배우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영화의 판권을 사고 제작자의 명함을 찍고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기자회견을 여는 등 <아르고>는 실제로 제작되지 않을 뿐 철저하게 할리우드 홍보 공식을 따른다. 영화는 이같은 일련의 과정을 풍자함으로써 관객의 웃음을 자아낸다. 하루아침에 제작이 엎어지고, 뜬소문만으로도 취재가 몰리는 영화산업의 허와 실이 비밀스럽기 짝이 없는 미국 정부의 첩보기관과 연결돼 희화화된다. 특히 의도적으로 반복되거나 병치되는 이란과 미국, 이란과 할리우드의 비교 장면들은 당시 상황들을 효과적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이를테면 가짜 영화 <아르고>에 대한 입소문을 내기 위해 베벌리힐튼호텔에서 개최한 제작발표회와 테헤란에서 열리는 이란 혁명군의 방송, 이란의 인질 억류에 대한 미국의 성명발표 장면 등을 엮은 짧은 몽타주는 세 집단이 미디어를 이용하는 방법을 시각적으로 압축해 보여준다.

진지함 속에 유머와 아이러니가

실화에 바탕했다는 사실은 <아르고>가 가진 강점인 동시에 약점이다. 할리우드와 CIA의 협업이라는 믿어지지 않는 설정은 관객의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결말을 이미 알려진 이야기이기에 스릴러로서의 긴장이 흐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영화는 간단하다. 멘데즈가 이란에 들어가고 6명의 미국인들을 위장신분을 이용해 데리고 나오는 것이 전부다. 더욱이 영화 초반 대사관 점거장면에서 이미 긴장의 수위를 높여놓았기 때문에 나머지 상영시간 동안 긴장을 유지하는 데 따른 부담이 컸다. 하지만 영화는 실화에 없던 사건을 영화에 더함으로써 결말에 이르기까지 관객의 마음을 붙드는 데 성공한다. 이란인들을 묘사할 때 성난 폭도 혹은 서방에 순종적인순한 양이라는 흑백논리로 다가선 접근이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중동 지역을 무대로 펼쳤던 이전의 정치 스릴러와 비교하면 <아르고>는 미적지근하지만 공정한 태도를 취하려는 할리우드의 노력을 보여준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엔딩 크레딧까지 지켜볼 것을 권한다. 영화가 기반한 사실들을 이미지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잭 오도넬 역의 브라이언 크랜스턴
지금이 내 인생 최고의 순간

-배우로서 인기 TV시리즈에 출연하면서 블록버스터에 캐스팅되는 성공만 한 것도 없을 것이다. 지금이 당신의 전성기인가.
=56년 인생에서 최고의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처음 배우를 꿈꿨던 23살 무렵만 해도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동시에 먹고살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었다. 지금도 먹고사는 건 내게 가장 중요한 문제이지만 적어도 지금은 하고 싶은 일을 골라서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이 달라졌다. 이만한 즐거움이 없을 것이다.

-벤 애플렉이 당신을 첫 번째로 캐스팅했다고 하던데. 정말인가?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할리우드에서는 매 순간이 오디션이다. 그냥 만나보는 자리라고 해서 준비없이 나간다면 배역이 주어질 리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제작자에게 연락을 받고서는 스크립트를 읽었고 기사도 찾아 읽었다. 총 쏠 준비를 충분히 하고 나갔다. 에이전트는 그냥 한번 만나보라고 했지만 그냥 나갔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웃음)

-촬영현장에서 감독으로서 벤 애플렉은 어땠나.
=훌륭했다. 언제 어디서나 그가 해야 할 일을 다했다. 감독에게 연기 경험이 있다는 건 장점이다. 배우의 상황을 전적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연기 경험이 없는 감독에게 필요한 것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다. 벤의 경우 이번에 행운이었던 것은 영화로 만들고자 하는 이야기가 훌륭했고, 크리스 테리오가 훌륭한 각본을 썼다는 사실이다. 이야기가 흘러가는 경로가 명료했고, 애매한 상황에서 생기는 질문들도 없었다.

-조지 클루니가 제작자로 참여했다. 현장에서 그를 자주 볼 수 있었나.
=조지 클루니는 현장에 오는 걸 꺼려했다. 이유는 그가 나타나면 사람들의 태도가 바뀌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나타남으로써 누군가로부터 빼앗는 스포트라이트를 불편해했다.

-다음 작품을 준비하고 있나.
=눈먼 폴란드인 청부살인업자로 나오는 영화를 준비 중이다. 저예산이다. 제목이나 감독이 누구인지 밝힐 단계가 아니지만 무척 흥미로운 영화다.

각본 쓴 크리스 테리오와 사건을 기사화한 조슈아 버먼
혹시 모욕적일까봐 전전긍긍하기도

-처음 쓴 각본을 거의 고치지 않았다고 들었다. 어떻게 그리 쉽게 쓸 수 있었나.
=크리스 테리오_실화가 가진 탈출과 구조의 이야기 구조가 명확했기 때문이다. 위험에 빠진 6명을 탈출시키는 이야기 구조를 만들고 나서는 영웅에게 갖가지 시련과 과제를 안겨주면 됐다. 게다가 결말도 이미 정해져 있었다. 거의 건축적으로 완벽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영화의 분위기를 결정할 때는 결코 쉽지 않았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소재를 할리우드에 대한 풍자와 섞어내는 것이 혹시 모욕적일까봐 걱정을 많이 했다. 그것 때문에 중간에 세번인가 그만두려고도 했었다. 그러다가 1970년대에 만들어진 영화들을 떠올렸다. 진지한 동시에 유머와 아이러니를 잊지 않았던 영화들이었다. 그 톤을 이 영화에도 가져오려고 노력했다.

-영화적으로 꾸며낸 부분은 어느 장면인가.
=크리스 테리오_토니 멘데즈와 존 체임버 캐릭터는 진짜다. 앨런 아킨스 캐릭터는 존 체임버와 작전에 가담했던 로버트 사이델과 다른 제작자들을 섞어서 만든 가상의 캐릭터다. 멘데즈와 6명이 테헤란 시장에 가는 장면과 공항에서의 마지막 추격장면도 진짜가 아니다. 두려움으로 인한 피해망상을 영화에서 시각적으로 나타내기 위해서 꾸며낸 장면들이다. 하지만 공항에서 멘데즈와 일행이 준비한 3단계 체크 포인트는 진짜다.

-기사의 영화화는 어떻게 시작됐나.
=조슈아 버먼_워너브러더스의 프로듀서가 내가 쓴 기사를 읽었고, 영화로 만들고 싶어 했다. 당시 내게는 에이전시가 없었기 때문에 할리우드의 지인에게 관련된 일을 부탁했었다. 영화는 워너브러더스에서 영화화하기로 결정된 뒤 5년 반 정도 지나서 만들어졌다.

-영화의 바탕이 된 기사를 쓴 사람으로서 영화에 바란 점은 없었나.
=조슈아 버먼_기사의 영화화에 있어서 내가 원한 건 영화가 더 많은 재량을 가지는 거였다. 영화가 완성된 뒤에 영화가 내가 쓴 기사에 상당히 충실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마치 논픽션 서사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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