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벤 애플렉] 당당하게! 감독 벤 애플렉
2012-10-29
글 : 김성훈

감독을 꿈꾸는 할리우드 배우들에게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교과서다. 조지 클루니는 또 어떤가? 지금의 그라면 쉽게 넘보기 힘든 산인 건 분명하다. 여기에 또 한명의 이름을 추가해도 될 것 같다. 연출 데뷔작 <곤 베이비 곤>(2007)을 시작으로 <타운>(2010)을 거쳐 곧 개봉을 앞둔 <아르고>를 만든 ‘감독’ 벤 애플렉 말이다. 1979년 이란 정세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마지막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아르고>를 보고 나면, 취미나 호기심 정도로 감독을 하려는 배우들은 메가폰 잡는 걸 포기해야 할 것이며, 진지하게 연출에 대한 꿈을 꾸는 배우들도 진로를 다시 한번 고민해야 할지도. 괜한 호들갑을 떠는 게 아니다. “다시 커리어의 정점으로 올라왔다”는 맷 데이먼의 확신처럼 <아르고>는 벤 애플렉이 배우에서 감독으로 자리매김한 작품이라 정의할 만하다.

단 세편만으로 감독으로 인정받는 동안 배우로서 벤 애플렉이 오랫동안 제자리를 맴돈 건 사실이다. 오랜 친구이고 같은 시기에 연기 생활을 시작한 동료이고 할리우드의 괴물 배우가 된 맷 데이먼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2004년 <엔터테인먼트 위클리>가 <갱스터 러버>(2003), <페이첵>(2003), <저지걸>(2004), <서바이빙 크리스마스>(2004) 등 관객과 평단의 외면을 받은 그의 출연작을 두고 ‘시나리오를 제대로 고를 것’, ‘친구 맷(데이먼)을 본받을 것’이라며 비아냥거렸을 정도니까.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다시는 절대, 결코 부끄러운 작업을 반복하지 않을 거라고 결심했다.” 그렇다면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2009)나 <컴퍼니 맨>(2010) 등 최근작은 또 어떤가. 솔직히 그의 연기가 끝내준다고까지 말하지는 못하겠다. 물론 마지막까지 신념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촉망받는 정치인(<스테이트 오브 플레이>)이나 젊은 나이에 실직한 회사원(<컴퍼니 맨>)은 매력적인 캐릭터였긴 했지만 말이다.

그의 연기력을 탓하자는 게 아니다. 가만히 생각해보자. 본인의 말마따나 한때 파티에 빠져 있었고, 작품의 선구안이 썩 좋지 않았지만, 단지 그게 배우로서 그의 성장을 가로막은 장애물의 전부였을까. 어느 순간 그는 좋은 배우가 아닌 좋은 감독이 되어야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그걸 성취하기 위해 에너지를 연기가 아닌 각본을 쓰고, 자신이 쓴 각본을 직접 연출하는 데 더 쏟아부은건 아닐까. 그 결과물이 위에서 언급한 세편의 연출작이라면 말이다.

<곤 베이비 곤> <타운> <아르고> 등 세편 모두 ‘납치’를 소재로 하는 작품이다. 두편은 그가 정체성을 확립하던 보스턴 시기에(<곤베이비 곤> <타운>), 또 다른 한편은 대학 시절 ‘중동사회 연구’를 전공한 까닭에 익히 알고 있는 이란을 배경으로 했다(<아르고>). 공통적인 것은 납치를 통해 ‘범인은 누구인가’를 밝히려 하지 않고, 당대의 사회현실과 현대사에 ‘왜?’라는 거대한 질문을 던진다는 것,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 장르적으로 집요하게 파고든다는 것. 각색과 감독만 참여한 <곤 베이비 곤>을 제외한 나머지 두편에는 본인이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워런 비티와 나눴던 대화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다. 그는 감독과 배우를 겸하는 게 자신을 긴장시킨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나 역시 배우를 겸하면 같은 장면이라도 다르게 만들 수 있다. 솔직히 배우라는 직업이 좋고, 그 커리어를 계속 이어나가고 싶다. 감독으로서의 커리어는 1년 혹은 2년 사이에 일자리를 얻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 집요함 덕분에 ‘감독 벤 애플렉’의 꽤 근사한 리스트가 만들어졌다.

‘중년’ 벤 애플렉. ‘감독 벤 애플렉’과 달리 꽤 어색하다. 얼마 전 그는 정확히 40살 생일을 맞았다.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청년에서 중년으로 넘어가는 나이잖은가. 이봐(시간), 기다려줘. 죽음까지 반세기밖에 남지 않았어.” 촬영을 마친 테렌스 맬릭 감독의 신작 <시간의 항해>, 후반작업 중인 브래드 퍼먼 감독의 <러너, 러너> 등 두편의 출연작을 비롯해 각본, 프로듀서, 감독으로 준비중인 프로젝트가 무려 8개나 된다고 하니 그가 시간을 원망할 법도 하다. 어쨌거나 그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감독 겸 배우 벤 애플렉의 왕성한 열정을 확인할 수 있는 건 지금부터인 것 같다. 그의 할리우드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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