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하하하!” 피팅을 마치고 카메라 앞에 자리를 잡는 품새가 벌써 예사롭지 않다. 검은 오라를 풍기는 악령 피치의 이종혁과 촐랑 끼가 있는 부활절 토끼 버니 역의 유해진은 사진촬영 때만은 자못 점잖은 모습인 반면, 류승룡은 자신이 맡은 산타클로스 놀스를 스튜디오까지 끌고 온 듯했다.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가디언즈>의 놀스는 우리가 흔히 봐왔던 산타클로스가 아니다.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지켜준다는 수호신치고는 비주얼부터 좀 희한하다. 시꺼먼 눈썹과 부리부리한 눈에, 잔뜩 촉각을 곤두세운 똥배도 막강하고, 양팔에는 착한 아이들과 못된 아이들을 무려 문신으로 새겨놨다. 하지만 그 투박한 외피 안에 아주 말랑말랑한 무언가가 들어있다. 그 정체를 놀스는 영화 속 한 장면에서 마트로시카 인형을 가지고 친절하게 설명해 보인다. “내 겉모습은 이래, 그치? 몸집은 크고 우악스럽잖아. 하지만 자, 열어봐. 속마음은 아주 유쾌하다? 근데 그게 전부가 아냐. 신비로운 구석도 있고 또 거침없어. 그리고 여리디여려. 하지만 중심엔?” 인형을 들고 있던 잭 프로스트의 대답대로 “작은 아기”가 들었다. 상남자의 외모 속 중심에 작은 아기를 키우고 있는 산타클로스라니. 척 봐도 류승룡의 절묘한 아우라를 갈구하는 캐릭터다.
엄밀히 따지면 류승룡이 놀스에게 내준 것은 목소리뿐이다. 기본적인 액팅은 오리지널 버전에서 놀스를 맡은 알렉 볼드윈이 완성해놓은 것이다. 어순과 억양도 영어에 최적화해 있고, 애드리브도 절대 불가다. 그러므로 더빙판에서는 배우와 캐릭터가 만나는 지점이 캐릭터쪽에 훨씬 치우쳐져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점이 류승룡을 자극했다. “음색을 입히는 건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잖나. 실사연기가 액팅, 눈빛, 목소리, 세 가지로 이루어진다면 여기서는 목소리만 가지고 어떻게 다양하고 풍요로운 연기를 보여줄 것인가가 문제니까, 도전의식이 생기더라.” 그 도전은 그에게 실사연기와 또 다른 짜릿함도 안겼다. “내가 목소리로 그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때, 소리와 그림이 일체가 될 때 오는 쾌감이 있더라. 어느 순간에는 류승룡이 떠오르지 않고 내가 그림 속의 놀스가 되어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놀스로 빙의한 그는 목소리만으로 동화적인 플롯 위에서 능수능란하게 줄타기를 한다. 그 몸놀림, 아니 목놀림이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장성기 못지않다.
‘수호’를 전문으로 한다는 점에서 놀스는 류승룡이 최근 맡아왔던 역할들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최종병기 활>의) 쥬신타가 청나라 장수들을 지키려는 모습,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허균이 나라를 지키려는 모습, 뭐 그런 것들이 놀스에게도 녹아 있지 않을까.”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장성기도 여자들의 환상을 무너뜨리지 않으려 갖은 재주를 부렸던 남자다. 이렇듯 최근 그의 분신들은 자신이 예뻐하는 사람들의 마음속 불씨를 꺼트리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해왔다. 단지 이번에는 그 대상이 이 세상 아이들의 동심이 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반대로 차기작 <12월23일>에서는 딸의 수호를 받는 아버지로 분한다. 정신지체가 있는 아버지가 딸의 도움으로 누명을 벗는 이야기다. <각설탕> <챔프>의 이환경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만큼 “동화적인 것도 일부 녹아 있겠지만 그걸 표현하는 방식에 관해서는 치열하게 대화하면서 만들었다”고. 매번 다른 캐릭터로 변신, 아니 변태의 묘미를 알게 해주는 배우 류승룡. 그의 실사 변태는 <가디언즈> 이후에도 계속될 거다.
산타클로스 놀스
“아이들을 사랑하는 씩씩한 할아버지.” 류승룡은 놀스를 그렇게 설명했다. 가디언들을 이끄는 수장이기도 한 그는 겉으로는 다혈질이면서도 속마음은 아주 따뜻한 할아버지다. 그가 있어서 다섯 수호천사가 똘똘 뭉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