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유해진] Mr. 판타스틱
2012-11-26
글 : 이영진
사진 : 백종헌
부활절 토끼 버니, 유해진

유해진이 애니메이션 목소리 연기가 처음이라고? 의아해할지 모르겠지만 정말이다. 유해진은 <가디언즈>로 애니메이션 더빙 작업을 처음 경험했다. 느닷없이 착각이 작동했다면 십중팔구 <전우치>(2009)의 초랭이 때문일 것이다. “내레이션을 해본 적은 있다. 몇년 전에 다큐멘터리 <MBC 스페셜 공룡의 땅>에서 ‘나는 티라노 사우루스다∼’(웃음), 그 정도가 전부다.” 목소리 연기는 그야말로 ‘생초짜’라고 뒤로 물러서지만, 알고 보니 배우 유해진이 아니라 성우 유해진이 될 뻔한 전력도 있다. 캐묻다 보니 서울예술대학 재학 시절 한 방송사의 성우 시험에 응시한 기억도 털어놓는다. “친구들이 본다고 해서 따라갔다. 성우 하면 목소리가 낭랑하고 청아해야 한다고 생각하잖나. 내 목소리는 탁하니까 아예 기대도 안 했는데 합격은 못했어도 운 좋게 최종 면접까지 올랐다.”

그렇다고 해도 <가디언즈>의 부활절 토끼 버니를 흔쾌히 받아들인 건 목소리 연기 자체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애니메이션에 대한 오랜 관심때문이었을 것이다. 유년 시절부터 <은하철도 999> <모래요정 바람돌이> <미래소년 코난>의 팬이었다는 유해진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붉은 돼지>를 지금까지 수백번은 돌려봤다. “어렸을 때 영향 때문인지 치즈처럼 말랑말랑한 할리우드 스튜디오 애니메이션보다는 아날로그 냄새가 물씬 나는 재패니메이션에 좀더 끌리는 편이다. 지금도 술 한잔 마시면 <붉은 돼지>를 틀어놓는다. 술집에서 마담이 샹송을 부를 때 노을 진 하늘을 배경으로 낡은 비행기가 쫙 지나가는 그 장면이 정말 좋다. <가디언즈>도 제작발표회 때 28분짜리 하이라이트를 3D안경 쓰고 처음봤는데 ‘인간의 상상력은 정말 끝이 없구나’ 싶더라.”

버니는 히어로가 존재한다고 믿는 아이들의 믿음을 먹고사는, 가디언즈의 ‘넘버2’다. 유해진이 맡았다고 해서 단순한 코믹 캐릭터라고 넘겨짚으면 안된다. “버니는 ‘마초 토끼’다. 부활절 토끼라는 자부심이 굉장히 세다. 산타클로스 놀스에게 항상 경쟁심을 갖고 있다. 새로 가디언즈가 된 초능력자 잭 프로스트(이제훈)와 마찰을 빚는 것도 그래서다.” 버니가 완력만 앞세우는 캐릭터였다면 재미는 반감됐을 게 분명하다. 태극권의 고수이자 부메랑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버니지만 소심한 겁쟁이의 면모도 지니고 있다. “썰매 타는 걸 질색한다. 액션장면에서 버니의 감탄사는 대부분 겁에 질린 비명이다. 버니가 좀더 까불었으면 어땠을까 싶은 대목이 꽤 있었는데, 조금 더 가볼까 할 때마다 연출하는 분이 영어 더빙한 휴 잭맨의 목소리를 들려줬다. 휴 잭맨은 마초 캐릭터에 초점을 맞춰서인지 너무 목소리를 깔고 연기했더라.”

정해진 캐릭터의 선을 넘어선 안된다는 제한만이 자유로운 표현을 막아선 건 아니었다. “녹음 때 흑백 화면을 사용한다. 복사 방지를 위해 스튜디오 로고도 박혀 있다. 영상도 또렷하지 않아서 버니가 입을 벌리고 있는 건지 아닌 건지조차 구분하기 어려운 대목도 있었다. 모니터를 했지만 재녹음이 필요한지 아닌지 판단을 잘못 내리겠더라.” 유해진의 볼멘소리는 불평이라기보다 아쉬움이다. “자신도 모르게 어느 순간 그림에 빠져드는” 쾌감을 몸소 체험했다는 그는 “최민식, 박철민 두 선배가 목소리 연기한 <마당을 나온 암탉>처럼 배우가 처음부터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꼭 해보고 싶다”고 덧붙인다. <미쓰 GO> <간첩>의 개봉에 이어 최근 김성수 감독의 <감기> 촬영까지 끝낸 그는 당분간 휴식 모드. 순식간에 땅 밑 지하세계로 사라지는 버니와 달리 그는 “1주일에 서너번씩 북한산을 오르내리며” 숨을 고를 참이다.

부활절 토끼 버니

부활절에 아이들 몰래 색색깔의 달걀을 배달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가디언들 중 가장 자기 의견이 센 편이지만, 굽힐 때는 굽힐 줄도 안다. 자신의 존재를 믿는 아이들의 수가 감소하면 사이즈가 햄스터급으로 급격히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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