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이란 무섭다. 언제부터 그녀를 멜로의 여왕으로 생각하게 된 걸까. 하얗게 빛나는 피부, 긴 생머리, 사슴 같은 눈망울을 마주하는 순간 으레 그럴 거라고 짐작해버린 건지도 모른다. 청초함에 관한 한 한효주의 외모는 ‘압도적’이다. 하지만 그녀의 경력을 찬찬히 훑어보면 의외로, 아니 당연히 폭넓은 스펙트럼을 발견할 수 있다. “친근한 이미지 덕분이 아닐까 싶다. 다가가기 쉽고 편안한 매력? 뚜렷하게 예쁘다기보다는 자연스러우니까”라는 그녀의 겸손이 괜한 소리로 들리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똑같은 로맨틱코미디라도 한번도 똑같은 캐릭터를 반복한적 없는 그녀에게 연기 변신은 의도나 강박이 아닌 그저 자연스런 호흡이며 거스르지 않고 자신에게 솔직했던 결과다. “이렇게 해야지 하고 일부러 선택하는 건 아니다. ‘연기 변신을 할 거야!’라기보다는 그때그때 마음 가는 역할을 하는 편이다. 그러다보면 달라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거고. 그래도 이제까지 연기했던 역할들이 한번도 비슷하다고 생각한 적 없다. 나에게는 늘 다른 캐릭터, 다른 역할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반창꼬>의 열혈 뻔뻔 의사 고미수조차 파격은 아니다. 예쁘고 성격 좋고 돈도 많이 버는데 심지어 당신이 좋아서 열렬한 구애까지 하는, 자칭 로또 같은 여인 고미수 역시 배우 한효주 안에 숨겨진 또 다른 조각일 뿐이다. 물론 발랄함부터 단아함까지 다양한 매력을 선보이며 작품에 생기를 더해온 그녀에게도 고미수는 그리 녹록지 않은 도전이었다. 그러나 아마도 로맨틱코미디 역사상 <엽기적인 그녀>이후 가장 인상 깊은 여자 캐릭터가 될 가능성이 짙은 이 비현실적인 여인에게 생생한 숨결을 부여한 것은 오로지 한효주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는 강렬한 색깔로 인물을 도드라지게 하는 대신 아무리 개성 강한 역할도 작품에 풍경처럼 녹여낼 줄 아는 영리함을 지녔다. 한효주 하면 떠오르는 파스텔 톤의 이미지, 하늘거리면서도 어딘가 공허한 투명한 매력은 다만 그녀의 연기를 더욱 도드라지게 해주는 하얀 스케치북 바탕에 불과하다. “힘을 쫙 빼고 연기했다. 처음엔 이 정도까지 애착을 가지고 시작하진 않았는데 하다 보니 어느새 푹 빠져 있었다. 이렇게까지 몰입할 수 있구나 싶어 촬영이 끝나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무엇보다 현장 분위기가 좋았다. 촬영현장은 말 그대로 놀이터였다.”
그 덕분인지 <반창꼬>에서는 본인이 즐기지 않고서야 나올 수 없는 생동감이 묻어나는 장면이 곳곳에 눈에 띈다. “잠수교 장면에선 와이어 촬영을 했는데 나중에는 배가 땅겨서 우연히 복식호흡으로 굵은 목소리가 나왔고 그게 현장에서 빵 터졌다. (웃음) 결국엔 그걸로 가자고 하더라. 모든 의견이 자유롭게 오가고 반영되는, 즐겁게 즐길 수 있는 현장이었다.” 하지만 즐겁게 이어지는 웃음의 순간에도 그녀는 작품의 중심과 무게가 어디에 가 있어야 하는지 잊지 않았다. “웃음은 대개 이게 뭐지? 하는 순간에 미수에 의해 터져나오지만 사실 이 영화는 강일이(고수) 영화라고 생각한다. 강일이의 감정이 되어 따라와야 집중력을 잃지 않고 끝까지 따라올 수 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대사도 ‘오늘 보고 내일 죽어도 좋을 만큼’이다. 그 정서가 영화의 핵심이다.” 역대 최고의 발랄함을 보여주면서도 작품을 자신의 색으로 채우기보다는 함께 돋보일 수 있도록 북돋는 쪽을 선택한 한효주. 스스로를 자연스럽고 편한 것이 매력이라고 했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제야 이해가 간다. 빈말로도 평범하다 할 수 없는 자체발광 청순발랄 순수미녀는 그렇게 스스로 빛나기보다는 작품을 빛내는 쪽이 더 즐거운, 천생 배우다. “막 가볍지도 마냥 무겁지도 않게. 가족끼리 모두가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영화다. 내가 이 영화를 사랑하고 애착을 가졌던 만큼 많이 사랑 받았으면 좋겠다”는 그녀의 말이 진심으로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씨네21> SNS를 통해 받은 독자들의 질문
-스스로가 생각하는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인가요? _돼냥이(미투데이)
=가장 큰? 하나만? 고민이 많아지는데. (웃음) 무던한 거 아닌가 싶다. 이것저것 해봐도 무던하게 어울리는 자연스러움. 아마도? (웃음)
-이번 크리스마스 때 어떤 선물 받고 싶으세요? 혹시… 관객 1천만?^^_ jejuguy(미투데이)
=거 괜찮네! (웃음) 가족들, 친구들과 파티를 하고 싶다. 그런 걸 잘 챙기는 성격이 아니라서 소홀했었는데 점점 그런 게 소중해지는 걸 느낀다. 물론 영화도 잘됐으면 좋겠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