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모그, 한국 영화음악의 새로운 힘
2013-02-28
글 : 김성훈
사진 : 오계옥
<악마를 보았다> <도가니> <광해, 왕이 된 남자> <라스트 스탠드>… 장르 불문하고 필모그래피 쌓아가는 영화음악감독 모그 스토리

김지운 감독의 할리우드 데뷔작 <라스트 스탠드>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10분만 자리를 지키자. 김지운 감독, 김지용 촬영감독과 함께 한국인 스탭으로 이름을 올린 음악감독 모그의 음악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웨스턴 장르의 범주에 있는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모그 특유의 애잔한 감성이 가슴을 건드린다. 모그의 음악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라스트 스탠드>뿐만이 아니다. 2월14일 개봉한 이원석 감독의 로맨틱코미디 <남자사용설명서>와 2월21일 개봉예정인 이재용 감독의 <뒷담화: 감독이 미쳤어요> 역시 그가 음악을 맡았다. 이쯤 되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지지 않는가. 현재 충무로에서 가장 ‘핫’한 영화음악감독 모그의 이야기가 지금부터 펼쳐진다.

모그 주요 필모그래피

<뒷담화: 감독이 미쳤어요> 2013 <라스트 스탠드> 2013 <남자사용설명서> 2013 <회사원> 2012 <광해, 왕이 된 남자> 2012 <인류멸망보고서> 2012 <도가니> 2011 <인플루언스> 2010 <악마를 보았다> 2010 <카멜리아> 2010

야구에서 마무리 투수의 팔자는 변덕스럽기가 이를 데 없다. 주자 없이 한두점 차이를 지키기 위해 마운드에 오르는 건 다반사다. 무사 만루에 한점 차이의 위기는 상상만으로도 고약하다. 실투는 곧 패배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 어떤 심리적 압박감도 이겨낼 수 있는 강심장을 특급 마무리 투수의 자질 중 으뜸으로 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변덕스럽기로는 영화도 만만치가 않다. 현장에서 가편집본을 미리 확인할 수 있다지만 CG니 음악이니 마지막 공정이 끝날 때까지는 알 수 없는 것이 영화다. 후반작업 중 거의 막바지에 투입된다는 이유로 모그는 영화음악감독을 마무리 투수(클로저)에 비유한다. “많은 감독님들이 촬영이 끝난 뒤 불안해하며 음악 작업을 맡긴다. 그게 마치 7, 8회까지 던진 뒤 마무리 투수에게 마운드를 넘겨주는 선발 투수의 심정 같다고나 할까.”

영화 공정의 마무리 투수로서 음악감독 모그는 어떤 선수일까. 2010년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로 혜성처럼 등장해 2011년 청룡영화제 음악상을 수상한 <도가니>, 지난해 1천만 관객을 동원한 <광해, 왕이 된 남자> 등 지난 3년 동안 일곱편의 상업영화에서 음악을 맡아온 그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무려 세편의 영화가 개봉을 했거나(<남자사용설명서>(2월14일 개봉)) 앞두고 있다(<라스트 스탠드>(2월21일 개봉), <뒷담화: 감독이 미쳤어요>(2월28일 개봉)). 그리고 현재 <화이>(감독 장준환)의 음악을 작업하고 있는 중이다. 필모그래피만 보면 장르를 가리지 않는 배짱과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고루 갖췄다. 무엇보다 음악감독으로서 그리 길지 않은 경력임에도 불구하고 충무로의 내로라하는 감독들이 자신의 영화에 모그를 수호신으로 믿고 기용하는 이유는 따로 있는 게 분명하다.

럭비와 음악 사이에서

모그를 만난 건 <남자사용설명서>의 파이널 믹싱이 있던 지난 1월22일이었다. <라스트 스탠드>가 북미 개봉한 뒤 나흘이 지난 날이기도 했다. <남자사용설명서>의 이원석 감독에게서 “영화에 들어가는 음악이 그 어떤 할리우드영화보다 더 많다”는 얘기를 들었던 차였다. 그간 <악마를 보았다> <도가니> 같은 음울하고 어두운 영화나 <광해, 왕이 된 남자> 같은 사극을 해왔던 그에게 B급 정서가 충만한 로맨틱코미디 <남자사용설명서>는 또 다른 도전이었다. “마케팅 포인트 때문에 영화가 일반 관객에게는 로맨틱코미디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감독이 담고 싶어 하는 정서는 B급무비다. 예전부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보다 정서를 약간 비튼 B급무비가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웨스 앤더슨 영화나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 같은 영화 얘기를 감독과 함께 나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남자사용설명서>의 스코어는 그간 볼 수 없었던 모그의 B급 정서가 물씬 담긴 음악들로 빼곡했다. 이원석 감독 역시 “작업 만족도가 200%”라고. 따지고 보면 김지운 감독의 <라스트 스탠드>나 이재용 감독의 <뒷담화: 감독이 미쳤어요> 역시 새롭기로는 매한가지인데, 모그가 매 작품 각기 다른 장르와 정서의 영화를 소화할 수 있는 비결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도 감독들이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내놓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 비결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게 곧 지금의 모그이기 때문이다.

모그(Mowg, 본명은 이성현). 들리는 얘기에 따르면 뉴욕에서 보낸 20대 시절 <정글북>의 모글리를 닮았다는 동료 뮤지션들의 농담으로 인해 붙여진 이름이다. 새까만 얼굴과 온몸에서 풍겨져나오는 자유분방한 에너지를 보면 모글리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라고 한다. “어릴 때부터 미국에서 여러 연주자들과 공연을 떠돌며 녹음실 작업을 하고 베이시스트로 활동했다. 당시 다국적 아티스트들과 함께 활동하기 위해 이름을 간소화하는 경향이 있었다. 요즘 한국 가요시장도 그렇잖나. (빅뱅의) ‘TOP’처럼. (웃음)” 무척 자유로워 보이는 이름을 그는 영화음악감독이 된 지금까지도 계속 쓰고 있다. “어릴 때부터 특정 장르나 스타일에 치중하지 않는 음악가가 되고 싶었다. 내 마음을 표현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다. 그러다보니 독특한 이름을 가지고 활동하는 게 그 무언가를 표현하기에 좋았다.”

독특하게 붙여진(혹은 지은) 이름과 달리 모그는 특별한 계기로 음악을 처음 접한 건 아니다. 맞벌이하는 부모님 때문에 다니게 된 피아노 학원은 음악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제공했다. <토요명화>에서 방영된 영화는 그에게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태어난 뒤 최초로 본 영화 <대야망>을 비롯한 수많은 영화를 접할 수 있었으니까. <토요명화>의 시그널 음악인 호아킨 로드리고의 <아랑후에즈 협주곡>과 ‘주말의 명화’ <엑소더스>를 아직도 흥얼거릴 정도로 생생한 추억이다. 영화와 음악에 대한 그의 잡식성 탐닉은 라디오 프로그램으로까지 옮겨갔다. <러브 스토리> <록키>의 O.S.T는 물론이고, 재즈, 블루스, 팝, 록, 뉴컨트리, 뉴웨이브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공테이프에 녹음해 늘어질 때까지 들었으며, 음악에 얽힌 사연이란 사연은 전부 달달 외웠다. 손에 닿는 대로, 눈에 보이는 대로 접한 영화와 음악은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를 버티게 해준 힘이었다.

그러나 그의 잡식성 취미를 바라보는 부모님의 시선은 달갑지 않았다. 럭비선수 출신인 아버지는 급기야 아들을 학교 럭비부에 가입시켰다. “럭비를 하면 몸이 피곤해서 음악을 들을 수 없다거나, 통제가 잘되면 나의 감성적인 사고가 없어지지 않을까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웃음)” 몸을 키우기 위해 매일 아침 두부를 2모씩 먹어야 했으며, 의지와 상관없이 운동장에서 모래바람을 일으킬 정도로 몸을 굴렸고, 합숙이라는 사육생활을 수시로 하면서 그의 몸은 점차 럭비선수처럼 거대해져 갔다. 극적으로 대비되는 지금의 성격도 사춘기 시절 형성된 것이다. “어떨 때는 되게 조용하고 말이 없다가 또 어떨 때는 정말 활달하고. 조울증 환자들이 가진 성향을 그대로 가졌다.”

음악에 대한 멈출 수 없는 열망과 그것을 반대하는 보수적인 가족의 분위기가 충돌하면서 그는 결국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다. 고등학교 졸업 무렵 그는 이태원의 ‘올 댓 재즈’에서 가끔 세션을 하며 재즈에 심취해 있었다. 당시 ‘올 댓 재즈’ 간판스타였던 재즈 피아니스트 이영경이 그를 불러 이렇게 말해주었다. “‘올 댓 재즈’의 형들과 지금은 연주를 하는 것도 좋지만 아직 나이가 어리니까 서둘러 뉴욕 같은 큰물로 가는 건 어떠냐. 그러면 훨씬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당연하게도 집에서는 반대가 심했지만 모그의 결심은 확고했다. “(음악을 반대하는) 체제와 시스템 속에서 살 수가 없겠더라. 나를 버리든가 가족을 버리든가 해야 할 상황에서 결국 가족을 버리는 쪽을 선택했다.”

처음부터 영화음악이 목표인 건 아니었다

뉴욕은 모그에게도 자유의 상징이었다. 합법적으로 미국에 체류하기 위해 학교 등록은 했지만 정작 그가 흥미를 보인 건 학교가 아니었다. “가족도 버리고 미국에 왔는데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었겠는가. 지금 되돌아보면 제멋대로 사는 인생이었지만 그때는 자유를 무척 갈망했다. 당시 소통 불가능한 성향이었던 점도 한몫한 것 같다.” 사춘기 시절의 음악이 꿈과 동경의 대상이었다면 뉴욕 시절의 음악은 꿈보다는 생존의 문제였다.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부대끼며 본격적으로 연주를 한 것도 그때다. 재즈와 크래즈머는 물론이고, 브로드웨이의 갈라쇼, 클럽, 미국 전국 투어, 음악 페스티벌 등 설 수 있는 무대는 전부 섰다. 주종목인 베이스를 비롯한 기타, 건반, 드럼 등 종목을 가리지 않고 전부 연주했다. 살아남기 위해 전투적으로 연주를 한 경험, 소득 수준이 다른 거주지에 비해 낮은 할렘에서 살면서 보고 듣고 느낀 다국적 문화는 어쩌면 지금의 모그 음악을 형성한 자양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작곡한 영화의 스코어는 장르와 분위기는 제각각이지만 애잔하고 서글픈 느낌을 내는 게 공통점이다. 아마도 그가 그런 정서에 익숙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보헤미안 기질이 강한 까닭일까. 서울과 뉴욕, LA를 수시로 오가며 베이스 세션 연주자, 프로듀서로 활동하던 중 그가 처음으로 영화음악을 맡게 된 건 <인류멸망보고서>(개봉은 2011년에 했지만 2006년에 제작된 영화)였다. 24살 때 처음 만난 친구 임필성 감독에게 제안을 받은 것이다. 현재 가장 많은 작품을 함께한 김지운 감독을 비롯한 봉준호, 박찬욱 등 여러 감독을 소개받은 것도 그쯤이다. 임필성 감독이 그를 충무로에 소개시켜준 에이전트였다면 김지운 감독은 그를 “어른으로 만들어준 사람”이다.

<악마를 보았다>는 충무로와 영화 팬들에게 ‘영화음악감독 모그’ 를 본격적으로 인식시킨 작품이었다. “<악마를 보았다>는 시나리오를 읽는 내내 슬펐다. 나를 알릴 수 있는 기회였다. 모그의 색깔을 최대한 지키는 선에서 다문화적인 선율과 음악의 클래식함을 최대한 어울리게끔 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영화의 스코어는 무척 애잔하고, 매혹적인 보사노바풍인데, 그게 영화의 하드코어 액션과 극명하게 대비되면서 아름다웠다.

이후 충무로는 그를 영화음악감독으로 인정하고, 그를 찾기 시작했다. 그중 한편이 <도가니>였다. <악마를 보았다>를 끝낸 뒤 자기 검열을 하면서 얻은 깨달음을 그는 <도가니> 작업에 고스란히 반영했다. 영화음악은 음악 자체보다 감독과 영화의 힘을 더욱 배가할 때 존재의 의미가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원작 소설이 그렇듯 <도가니> 시나리오는 암울했다. 분노도 분노지만 슬픔을 이야기 전체에 무겁게 깔자는 컨셉으로 작업했다.” 사회의 추악하고 어두운 이면을 알아가면서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그와 같이 작업했던 룸메이트 김지용 촬영감독이 말릴 정도로 그는 치열했다. “김지용 촬영감독이 그러더라. ‘형, 이거 블록버스터 같은 영화 아니야. 무슨 필생대작 만드는 것처럼 밤새우며 작업하지 마’라고. (웃음)” 어쨌거나 모그의 말대로 <도가니>의 음악 스코어는 음울하고, 어두운 내러티브를 정서적으로 든든하게 지탱했다.

<도가니>는 466만여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의 관객을 불러모은 흥행작이 됐고, 모그는 이 영화로 청룡영화상 영화음악상을 수상했다. 시상대에 오른 그는 수상소감으로 “황동혁 감독을 흥행감독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마치 경기 MVP로 선정된 마무리 투수가 “오늘만큼은 선발 투수에게 꼭 승리를 안겨주고 싶었다”고 말한 것처럼.

“뮤직 에디터 시스템을 시도하겠다”

불과 4년 만에 모그가 충무로에서 가장 ‘핫’한 음악감독으로 올라선 건 우연이 아니다.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소화할 수 있는 것 말고도 다른 비결이 있을 것이다. 그와 함께 작업한 감독과 제작자들이 한목소리로 꼽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들은 “모그는 시나리오 작업에 영감을 많이 준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모그는 “그리 거창한 건 아니”라고 한다. “남들보다 다양한 삶을 경험해서인지 시나리오를 읽고 난 뒤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얘기하는데, 감독님들이 그걸 좋아해주는 것 같다.” 시나리오에 적지 않은 영감을 주는 것도 그의 능력이겠지만 그가 이끄는 팀이 모토로 삼는 말에 더욱 눈길이 간다. “어떤 팀보다 작업 속도가 빨라야 하고, 많은 음악을 준비해야 한다.” 참으로 독한 말인데, 불펜이 강한 팀이 우승할 수 있다는 그의 철학에서 비롯된 모토라고 한다. 다른 팀 마무리 투수가 20개의 공밖에 던질 수 없다면 자신은 50개를 던져야 하고, 남들보다 공이 빠르거나 다양한 구질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철학이다. 그만큼 전투적으로 작업하다보니 어떤 감독은 모그를 “운동선수처럼 경쟁적으로 작업하는 음악감독”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라스트 스탠드>로 할리우드 시스템을 처음 경험한 그는 요즘 충무로의 영화음악 작업 시스템과 관련한 고민을 하고 있다. 뮤직 에디터의 필요성이다. “충무로의 경우 계약을 하면 곡 작업부터 들어간다. 반면 할리우드의 경우, 뮤직 에디터가 작업해야 할 영화와 비슷한 컨셉의 리허설 곡을 다양하게 준비해서 들려준다. 그게 감독과 대화로 서로의 견해를 좁혀가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다.” 삶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얻은 실력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전투적으로 작업하는 태도를 가진 모그, 어떤가. 충무로는 또 한명의 든든한 마무리 투수를 얻었다. 참, 모그가 가장 존경하는 마무리 투수는 누구일까. 그건 바로 마리아노 리베라다. 뉴욕 양키스의 수호신으로 군림하고 있는 최고의 클로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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