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의 스타 게이트 신을 기억하는가. 우주비행사 보우먼이 인류의 기원에 대한 열쇠를 쥔 모노리스에 다가가는 순간, 스타 게이트가 열리면서 기이한 빛들이 우주의 암흑을 뚫고 뿜어져 나온다. 이 장면은 어떠한 인간도 경험해보지 못한, 시공을 넘어 미지의 공간으로 도약하는 찰나의 순간을 초월적인 영상미로 그려낸다. 이 전설적인 장면을 가능케 한 것은 감독 스탠리 큐브릭의 영감과 시각효과의 장인 더글러스 트럼블의 기술력이었다.
특수효과 전문가로서 더글러스 트럼블이 서 있는 지점은 앞서 소개된 여러 거장들의 위치와 사뭇 다르다. 레이 해리하우젠부터 스탠 윈스턴에 이르는 계보를 기계적 특수효과라고 부를 수 있다면, 더글러스 트럼블의 영역은 광학적 특수효과라고 칭하는 것이 옳다. 그는 피사체가 되는 사물의 정교한 연출은 물론, 빛을 이용한 카메라 본연의 마술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인 테크니션이다.
트럼블이 영화계에 들어서게 된 것은 1964년 뉴욕 월드 페어에 상영될 단편영상 작업에 참여하면서다. 이 작업을 통해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의 눈에 띈 그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컨셉아트와 일러스트 부문을 담당한다. 하지만 신참의 잠재력을 알아본 스탠리 큐브릭은 그를 다른 특수효과 부문에도 참가시켰고, 트럼블은 점차 이 거대한 프로젝트의 핵심인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3년에 걸친 작업 동안 그는 영화에 결정적인 아이디어들을 제공하며 결국 네명의 특수효과감독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스물다섯에 불과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블레이드 러너>의 영상혁명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제작하면서 그는 특수효과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기술 중의 하나로 여겨지는 모션 컨트롤 시스템(카메라와 피사체의 움직임을 제어하여 정밀 촬영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시스템)을 고안해냈다. 이 기법은 당시로서는 실험단계에 불과했지만,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특징짓는 우아하고 매끄러운 우주선 도킹 장면을 가능케 한 핵심 기술이었다. 또한 트럼블은 유명한 스타 게이트 신을 구현해낸 일등공신이기도 했다. 그가 제안했던 슬릿 스캔 시스템은 이동이 가능한 가림막에 약간의 틈을 내고, 그 틈의 위치를 움직이면서 장시간 셔터를 열어두는 기법이다. 피사체의 움직임이 한 화면에 담기기 때문에 피사체의 형상은 틈의 이동 방향을 따라 엿가락처럼 늘어지기도 또 짜부라지기도 한다. 트럼블은 이 기법을 응용하여 영화 사상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환상적인 빛의 오페라를 연출할 수 있었다.
비록 당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는 못했지만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영상혁명은 많은 영화인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자신감을 얻은 더글러스 트럼블은 곧 로버트 와이즈 감독의 <안드로메다>(1971)에 특수효과감독으로 참여한 뒤, 이듬해 자신이 총연출을 맡은 <사일런트 러닝>(1972)을 선보이며 SF영화감독으로서의 역량을 뽐냈다. 놀라울 만큼 적은 예산으로 제작된 <사일런트 러닝>은 미니멀한 설정에 최적화된 연출과 특수효과로 완성된 만만찮은 수작이었다. 주연을 맡았던 브루스 던은 창조가로서 더글러스 트럼블의 비전을 앨프리드 히치콕과 견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그는 히치콕의 1967년작 <가족 음모>에 출연한 바 있다). 또한 트럼블은 1977년에 스티븐 스필버그의 SF걸작 <미지와의 조우>의 특수효과감독을 맡아 그간 연구를 통해 개량한 모션 컨트롤 시스템을 최대한 활용,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그 뒤 1981년작 <블레이드 러너>에서 더글러스 트럼블은 자신이 갈고닦은 광학적 기교를 총동원했다. 저승을 다스리는 신의 이름을 따서 ‘하데스 랜드스케이프’라고 불린 미래도시의 비주얼은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회자될 만큼 압도적이다. 트럼블은 그가 이끄는 EEG팀과 함께 디스토피아적인 음울한 도시의 무드를 조성해내는 데 성공하며 최고의 특수효과 연출가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계속된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는 2년 뒤 <브레인스톰>(1983)을 끝으로 할리우드에 이별을 고해야만 했다. 야심찬 기획으로 출발했던 이 영화는 주연배우의 죽음, 상영 포맷에 관한 극장주와의 마찰, 투자자와의 법정 소송 등 악재가 겹치며 그의 커리어를 거의 절단내다시피한 프로젝트가 되고 말았다. 변호사와 소송서류에 넌더리가 난 그는 영화계를 떠나 자신이 십수년 동안 차근차근 연구해온 ‘쇼스캔’(Showscan)의 개량에 몰두했다. 70mm 필름과 초당 60프레임 이상의 영사속도로 선명한 입체영상을 제공하는 쇼스캔은 테마파크의 놀이기구용 영상으로 특히 각광을 받았다.
30년 만의 컴백작 <트리 오브 라이프>
할리우드를 떠난 지 근 30년이 지난 2011년, 트럼블을 할리우드로 다시 불러낸 것은 뜻밖에도 테렌스 맬릭 감독이었다. 신작 <트리 오브 라이프>에서 칼같이 계산된 CG 대신에 우연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광학적, 화학적 방식을 원했던 감독은 빛의 마술사 트럼블에게 SOS를 보냈다. 트럼블은 감독의 뜻대로 생명의 기원과 우주의 신비를 표현하는 아름다운 영상을 만들어내며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했다.
또한 그가 개발한 ‘쇼스캔’이 다시금 주목을 받으며 그의 영화계 복귀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그동안 디지털화된 극장의 상영 시스템에 의해 고속영사가 가능하게 된 것이 주요한 이유다. 게다가 2011년 제임스 카메론이 차기작을 ‘쇼스캔’의 디지털 포맷으로 제작한다고 발표했고, <호빗: 뜻밖의 여정>(2012)이 초당 48프레임 영사속도를 실현하며 소기의 결과물을 내놓았다. 아니나 다를까. 트럼블은 2012년 2월 한 인터뷰에서 “피터 잭슨이나 제임스 카메론이 해왔던 것과는 급이 다른 영화를 준비 중”이라고 밝히며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그가 총연출을 맡은 이 SF 대서사시는 무려 초당 120프레임으로 촬영한 3D영화라고 하니, 노익장의 새로운 마술을 손꼽아 기다릴 이유는 충분하다.
최고의 테크니션-아티스트
그의 동료 스탠리 큐브릭(1928∼1999), 영화감독
더글러스 트럼블과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함께한 스탠리 큐브릭은, 할리우드 특수효과의 발전을 논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이름이다. 그는 기술적 매체로서의 영화를 어느 누구보다 잘 이해했고, 거의 모든 작품에서 혁신을 거듭했던 최고의 테크니션-아티스트였다. 그는 <샤이닝>에서 대저택의 복도를 달리는 자전거의 뒤를 쫓아가기 위해 스테디캠을 개발했고, 18세기 유럽을 배경으로 한 시대극 <배리 린든>에서는 미약한 촛불빛을 잡아내기 위해 우주탐사용 렌즈를 영화 카메라에 접목시켰다. 스탠리 큐브릭은 단순한 몽상가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상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철저히 기술적 관점에서 사태를 파악하는 냉철한 리얼리스트였다. 카메라 기술이라면 둘째 가도 서러운 더글러스 트럼블 역시 그의 완벽주의에는 혀를 내둘렀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한 뒤로 한동안은 도저히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는 모든 사안에 완벽을 기한 진정한 천재였다.”